2023 올해의 기록들
교보문고 어드벤트 캘린더를 장만했다. 12월 1일부터 25일까지 박스를 조금 뜯으면, 안에 달큰한 간식과 함께 지난 한 해를 돌아보는 질문을 받는다. 질문이 좋거나, 답변이 좋았던 날들을 글로 남겨보려고 한다.
떡볶이를 먹지 않았다면 몰랐을 카페였다. 안에 들어가보니 카페 주인장의 취향이 가득 담긴 소품들이 가득 했다. 1층에는 손때가 짙게 묻은 옛날 장난감이 많았다. 주인장은 2층에도 많으니 올라가보라고 했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갔다. 옛날 카메라, 가방, 거울 등 하나하나 모은 티를 숨기지 않는 물건들이 가득 했다. 실컷 구경하다가 음료를 받으러 내려갔다. 잠깐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에세이들에 한 눈이 팔렸다. 단연코 눈을 사로잡은 건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책 제목이었다.
책제목은 회사로 돌아가서도 자꾸 생각났다. 왠지 모르게 내게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재미와 안심을 줄 것 같았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그저 그런' 경험이 아닌, '이왕 할 거 좋은'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 역시 무언가의 질(quality)는 돈의 양과 비례했기에 한창 과소비로 걱정이 많았다. 이 책은 그런 내게 '지금 그래도 괜찮아.' 하는 위로를 줄 것 같았다. 제목에서부터 강하게 느껴지는 큰 웃음도 함께라면 금상첨화 아니겠는가! 결국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갈망을 누르지 못하고 교보문고에 책을 검색했다. 이 책의 매력은 부제에도 있었다. 먼슬리에세이 물욕1. 물욕은 보통 하지 말라고 많이들 말하는 주제다. 그런데 이 책은 당당히도 "거기에는 좋은 면도, 나쁜 면도 있지!" 라고 말해줄 것 같았다. 더 정확히는 다들 나쁘다고 할 때, '음, 아니? 난 이런 면은 좋던데.' 라고 말할 수 있는 소신이 있는 책일 거라고 생각했다.
책은 정말 순식간에 읽혔다. 자기 전에도 책을 못 덮은 게 얼마나 오랜만인지. 드라마도 웹툰도 아닌데 이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깔깔 웃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니, 이게 뭐라고 그렇게 웃기나 싶겠지만 읽어본 사람은 안다. 웬만한 코미디보다 작가의 사상은 기가 막히게 유쾌하다. 돈지랄을 실컷 펼치는 작가의 이야기는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일면은 나와 너무 맞닿아 있어서 나를 향해 웃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나를 살피며 '야, 너 진짜 정신 차려야겠다. 하지만? 지금 너도 꽤 괜찮아!' 하는 웃픈 다독임을 주는, 얼핏 보면 무해한데 얼핏 보면 그녀의 스토리에 뼈를 맞아 얼얼하게 아픈, 그런 책이다.
친구, 회사 동료 등 이 책을 굉장히 많이 추천했다. 한 동료는 '언젠가는 <일지랄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우리도 글을 써보자' 하는 다짐을 나누기도 했다. 우연히 발견한 책은 위로와 웃음뿐만 아니라 나중에 내 스토리도 위트 있게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