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런던 188번 버스에서, 인도행 인생이 출발했다

인도 시부모님과 아기 키웁니다만 #1 - 프롤로그

by 김민정

“나는 국적은 상관없어. 내가 사랑하고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면 돼.”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이 “너는 어떤 남자랑 결혼하고 싶어?”라고 물을 때마다 늘 그렇게 대답했다.
그럼 친구들은 으레 “그런 말 하는 애들이 꼭 외국인이랑 결혼하더라~” 하며 웃었다.


... 결국, 정말 그렇게 됐다. 그것도 인도인 남편과. 게다가 지금은 인도 시부모님과 함께 아기를 키우고 있다. 내 인생의 장르가 로맨틱 코미디에서 리얼리티 다큐멘터리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낯선 곳’과 인연이 깊었다. 역사 선생님이셨던 할아버지는 늘 “중국은 잠자는 사자다. 나중에 배워두면 분명 도움이 될 거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주입식 공교육에 불만이 많던 엄마는 그런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나를 중국으로 조기유학 시키기로 결심했다. 마침 퇴직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합류해, 우리 가족 넷은 통째로 중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연고 하나 없는 낯선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며, 처음엔 친구들과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지만, 몸짓과 감으로 소통하며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그래서였을까. 인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인도인과 결혼하기로 결심할 수 있었던 것도, 힌디어로만 대화하는 시부모님과 완벽한 언어 소통은 되지 않아도 함께 웃고 아이를 키우며 살아갈 수 있는 것도, 결국 ‘낯선 곳’에서 자라온 그 시절의 나 덕분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일본과 한국에서 보낸 7년여간 사회생활을 정리하고, 정치경제/정책 분야를 공부하고자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떠났다. 영국은 석사가 1년인데 짧기도 하고, 대출까지 받아 떠난 유학이었기에 ‘연애는 사치’라 다짐했다. 그러나 그 다짐은 런던에 도착한 지 세 달도 안 돼 무너졌다.




그날도 평소처럼 학교 가는 길이었다. 기숙사 앞 188번 버스 정류장에서, 나는 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대학교 1학년때 예고도 없이 돌아가셔서 그 이후로 할머니와 거의 매일 통화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할머니, 저는 학교에 가는 중이에요. 뭐 하고 계셨어요?"
“그림 그리고 있는 중이란다. 민정이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있다.”

"예 할머니.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요. 운동하세요 할머니."


할머니와 통화를 하고 있을 때 멀리서 어떤 남자가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학교 기숙사 복도에서 스친 얼굴이었다. 당시 버스 정류장에는 사람들도 몇 명 없었고 학교를 가는 것 같은 사람들도 우리 둘밖에 없었다. 할머니와 통화를 마치고 서로 인사를 했다.


“하이! 아유 고잉 투 더 캠퍼스?"


인도는 유교문화는 없지만 가족들과 관계가 매우 돈독하다. 그도 매일 인도에 계신 부모님께 매일 전화를 한다고 했다.


잠시 후 도착한 2층 버스에 우리는 나란히 올라타 앉았다. 붉은색 런던 버스 차 안에서는 우리 둘의 대화가 흘러가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거리 풍경 속에서 대화가 멈추지 않았다.


“너는 왜 영국에 왔어? 지금 전공은 왜 선택하게 된 거야? ”


단순한 질문을 시작으로 우리는 20-30여 분의 짧은 여정을 빌려 서로의 인생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 짧은 기다림 동안,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와 기숙사를 오가며 늘 탔던 버스 188번>


그는 인도에서 의사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치료조차 받지 못하는 환자들을 보며, 결국 ‘보건 정책’을 공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나는 비슷한 문제의식으로 영국에 왔다. 기본소득 같은 사회 안전망을 가능하게 하는 복지 재원을 연구하고 싶어서였다. 우리는 비슷한 이상을 품은 채, 같은 도시의 같은 시간 속에 있었다.


그날 버스에서 나눈 대화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었다. 어쩌면 첫 문장부터 이미 공명이 시작됐던 것 같다. 공감은 생각보다 빠르게 우정을 만들었다. 우리는 90년대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이메일로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 사람, 멋지다. 좋은 친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마음속엔 여전히 ‘연애는 사치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세븐 시스터즈, 같이 가볼래?”


나는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좋다고 했다. 이른 아침, 기숙사 앞에서 만난 우리는 저녁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날의 대화는 처음 버스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길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연장선 같았다. 파도 소리와 바람 사이로, 우리는 서로의 문장에 귀를 기울였다.


<영국 세븐 시스터즈에서>


세븐 시스터즈에서 돌아온 이후 서로에 대한 감정은 어느새 ‘좋은 친구’의 경계를 슬그머니 넘어가고 있었다.


사실 나는 예전부터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기다리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중학생 때는 남자 사람 친구에게 “I like you, do you like me?”라고 고백했다가, 다음 날부터 서로 어색한 사이가 돼버린 흑역사가 있다. 그때 다짐했다. “다음엔 꼭, 상대가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리자.” 하지만 그런 다짐은 늘 내 성격보다 느렸다.


그와 나는 학교와 기숙사를 오가는 길을 거의 매일 함께 걸었다. 어느 저녁, 붉게 물든 템스강 옆을 나란히 걷고 있었다. 강 건너 세인트 폴 대성당의 종소리가 울리고, 바람은 적당히 선선했다. 로맨스 작가가 봤다면 ‘지금이야!’라고 외쳤을 완벽한 타이밍이었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


“나… 너한테 친구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있어. 너는 어때?”


순간, 그가 웃으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나의 마음을 해방시켜 줘서 고마워. 사실 나도 같은 마음이야. 너에 대한 감정을 일기로 쓰고 있었어.” 그는 평소 메모장에 새로 배운 단어나 떠오른 생각을 적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 속엔 내 이름이, 내 이야기가, 내 표정이 빼곡했다.


“오늘 그녀가 웃었다. 햇살 같다.”

“그녀가 내 이름을 불렀다.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그날, 우리는 서로의 문장을 한 장씩 읽으며 연애를 시작했다. 그 후로 나의 유학생활은 도서관과 기숙사 사이의 단조로운 회색빛에서, 핑크빛으로 살짝 물들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두 사람의 사랑은 조금 엉성했지만, 이상하게 리듬이 맞았다. 우리는 둘 다 ‘이상’을 품고 런던에 온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연애를 해도 일상의 패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낮에는 학교와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하고, 밤이 되면 기숙사로 돌아왔다.


대부분의 영국 유학생처럼, 우리는 ‘외식은 사치’라는 신념으로 살았다. 그래서 저녁마다 주방에서 한국, 인도, 그리고 이름 붙이기 힘든 퓨전 요리를 번갈아 해 먹었다. 김치국밥 옆에 카레, 그리고 그리고 그 사이에 마살라 향신료 냄새가 섞였다.

<한국과 인도식 저녁 식사>



영국 음식은 비싸고 맛이 없다. 그 덕분에 우리는 매일 같이 밥을 먹을 핑계를 얻었다. 처음엔 밤 10시, 11시에 저녁을 먹는 게 낯설었지만, 어느새 우리만의 ‘늦은 식사 루틴’이 되었다. 아기가 태어나고도 그 습관은 그대로였다.


신생아가 잠든 밤, 허겁지겁 밥을 먹으며 그는 말했다.


“이거 다 연습이었나 봐. 런던에서 미리 야식 훈련했잖아.”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엉성하지만 나름의 박자가 있었던, 우리만의 리듬이었다.


그렇게 그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을 뿐인데, 런던에서 시작된 사랑이 내 인생을 인도라는 나라와 영원히 이어 줄 줄은, 그땐 몰랐다. 188번 버스에서 시작된 그 짧은 인사가 인도 시댁에서 육아휴직 중인 지금의 나를 이끌 줄이야.




<사랑이라는 세계에서 새로 배운 것>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지금껏 살아왔던 생활습관까지 송두리째 바꿀 수도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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