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전환
약속 시간이 되자 수수한 옷차림의 일본 여성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언어교환이라는 이름으로 만나기로 했지만 내 진짜 목적은 일본어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에 있다.
나이가 같았고 대화를 할수록 친구 같은 마음이 들어 우린 어색함 없이 차를 마시며 대화를 시작했다.
아직 아이가 없는 그녀는 미래에 출산을 할 것을 대비해 하루빨리 한국어를 고급 수준으로 올리고 한국 사회에 적응을 하고 싶어 했다.
일단 학습자의 정확한 수준파악을 해야 하니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그리고 개인적인 질문도 덧붙였다.
궁금했다.
한국어를 못하는 여자와 일본어를 못하는 남자가 한일부부라니.
"근데 남편 분하고는 어떻게 대화하세요?"
"파파고요"
순간 웃음이 새어 나왔다.
부부끼리 파파고로 이야기를 한다라....
레벨을 테스트하는 도중[설거지]라는 단어를 모른다고 했다.
하긴 설거지라는 단어는 초급에서는 배우지 않는다. 그녀는 매일 [그릇을 씻어요]라는 수준의 어린 아이 같은 말로 남편과 대화를 하고 있던 것이다.
"언어가 완벽하지 않으니까 성격도 변하는 것 같아요. 항상 움추러들게 되고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힘들어져요."
일본어로는 유창하게 말하는 그녀가 한국어로 말할 땐 3살 아기가 되어버린다.
'알죠 알죠. 저도 10년 전에 그랬거든요!'
그녀를 보고 10년 전 나의 모습이 비쳐 보였다.
10년 전 나도 일본어 쌩초보로 일본에서 고생했던 내가 느꼈던 감정을 그녀도 느끼고 있다.
나와 같은 실수록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며
함께 교재를 고르고 체계적으로 공부하기로 했다.
후로도 일주일에 한두 번 수업을 하며 만남을 이어갔다. 수업을 하면 할수록 일본어로 말하는 시간보다 한국어로 말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뿌듯했다. 그녀에게 점점 자신감이 붙었다.
물론 나의 강사로서의 자신감도 그녀의 자신감과 함께 상승했다.
이렇게 직접 학생들을 찾아 여러 수업을 경험한 나는, 개인수업, 그룹수업까지 모두 경험해 볼 수 있었고 이제는 한국어 학원에 취업을 해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한국어 학원은 생각보다 여러 군데 있었다.
사설 한국어 학원은 다국적 학생들이 모여 수업을 듣는다.
한국어 강사는 한국어로만 수업을 하는 게 원칙이다. 베테랑 강사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하지만 당시 나의 생각엔 내가 학생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한글의 자음 모음부터 가르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할 수 있는 언어인 일본어로 수업하는 수업만을 고집하는 건 어딘가 모자람이 있는 한국어 강사라는 느낌이 들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난 일본학과 출신 아닌가. 관심이 있고 잘 하는 분야에 집중하자.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강사가 되면 되잖아?!'
그렇다. 뭐든 생각의 차이다.
난 일본인에게 특화된 전문 한국어 강사를 목표로 하면 되는 것이다.
일본에 대해 다른 강사보다는 많이 알고 있으니 충분히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나는 방향을 바꿔 일본인에게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어 강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