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데 자격증이나 따 보자.
결혼과 동시에 난 전업주부가 됐다.
조금은 무기력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똑같은 매일을 살다 보니 점점 나를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아이가 기관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조금씩 내 시간이라는 게 생겼다.
아이 하원은 오후 3시 30분.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을 하고 아이의 하원까지는 대략 6시간이다.
갑자기 너무 많은 시간이 생겨버렸다.
집 밖을 나가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향도 한몫하겠지만 밖에 나가서 돈과 시간을 쓰며 여유를 부릴만한 형편도 아니었다.
아이가 올 때까지 하루종일 티브이를 보거나 아이가 올 때까지 낮잠을 자기 일쑤였다.
이런 여유시간에 뭐라도 하지 않으면 나의 고질병인 무기력의 늪에서 허우적거릴게 뻔하다.
돈을 벌어볼까? 그렇지만 나는 결혼과 동시에 일을 놔버린 경력 단절녀다.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돈을 벌 수 없다면 뭐라도 배워볼까?
난 원래 공부에 취미가 있는 사람이 아니다.
대학도 전공도 점수에 맞춰 대충 선택할 만큼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다.
젊었을 때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일본이 떠올랐다.
'그래! 나 어릴 때 일본을 참 좋아했지.
이참에 어릴 때 노느라 못했던 일본어 공부나 해볼까?'
해외 경험 1년이면 말은 어느 정도 할 수 있다. 진정한 언어 실력은 1년간 해외에서든 한국에서든 공부를 열심히 했느냐 안했느냐의 차이다.
난 말만 조금 가능한 해외경험자였고 일본어는 문맹이었다.
나는 덜컥 일본어 능력시험반에 등록했다.
이왕이면 자격증이 나오는 게 좋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학원에는 나처럼 [심심해서 공부해요]라는 사람은 없었다. 일본 대학에 가야 하는데 급히 자격증을 따야 하는 고등학생, 취업을 위해 꼭 자격증이 필요한 취준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자격증 공부가 쉬운 게 아니구나..'
가벼운 마음에 등록한 학원이었지만 공부는 가볍지 않았다. 나는 몇 달을 그들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으로 살았다.
너무 열심히 했는지 거의 만점으로 합격을 했다.
자격증 공부가 끝나자 다시 또 심드렁한 생활이 이어져갔다.
[방송통신대 일본학과 학생 모집]
우연히 일본어 스터디 카페에서 접한 인터넷 광고에 나도 모르게 눈이 갔다.
'뭐야? 학기당 45만 원? 학원이 한 달에 15만 원인데.. 학원보다 싸잖아?
그래 남는 시간 싼 값에 교양 쌓는다 생각하고 한번 해보자.'
일본학과에 편입을 했다.
일본의 특성과 일본사람의 심리가 된 배경들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다. 공부라기보다는 내 상식이 아주 조금 넓어진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에 걸쳐 난 일본어 자격증과 일본학과 학사학위를 얻었다.
무기력하게 지내 온 시간 속에 스스로 돌파구를 찾아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 짜릿했다.
무엇보다 오직 나에게만 집중하며 뭔가를 해냈다는 건 아주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리고 관심 있는 분야를 이렇게라도 공부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는 몇 년 동안 두 개의 성과를 이룬 나는 마치 일본 전문가가 된 기분이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 학원비는 내손으로 벌고 싶다는 생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찾다가 내 눈에 띈 [한국어 강사]라는 단어.
'이거 이거 나한테 딱이잖아?'
이 일은 무조건 내가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일본인한테 한국어를 가르치는 건 워킹홀리데이 시절에도 종종 해본 일이다.
그때도 난 이 일을 계속하고 싶을 만큼 좋아했다.
전문적 지식이 없이 한국어를 가르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저 그 일이 재밌었다.
어차피 남는 게 시간인데 자격증에 또 도전해 볼까? 나중에 늙으면 해외봉사도 다닐 수 있다니 무조건 이 자격증은 따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격증을 써먹든 안 써먹든 어차피 난 시간이 많은 경단녀잖아?
뭐라도 하자.
한국어 교원 자격증은 국립국어원에서 발급하는 자격으로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학사 코스를 밟아야 취득할 수 있다.
수업을 듣고 실무 실습 과정을 거쳐 한국어 교원 2급 자격증이 내 손에 들어왔다.
1년 정도의 시간을 투자한 것 같다.
심심해서 공부를 몇 년 했더니 난 대학교 학위가 세 개나 된 30대 후반 아줌마가 되어있었다.
이제 슬슬 돈을 벌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