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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씨 Jun 01. 2022

프롤로그 (@이미커피)

내 마음을 돌보는 디저트여행기 1편  by.OV5


"디저트는 모두 매진이고요. 커피는 가능합니다."


'아...'하는 탄식과 함께 솔구와 함께 바에 앉아 커피를 주문했다. 코로나에 걸렸던 솔구의 자가격리가 끝난 뒤 간만의 만남이었다. 솔구에게 처음 평양냉면을 소개해준 을밀대에서 평양냉면에 녹두전을 먹고, 근처에 봐두었던 '녹기전에'에서 3종 젤라또를 먹은 뒤 커피와 디저트 페어링을 해준다는 '이미커피'로 온 것인데, 아쉽게도 디저트는 다 판매된 것이었다. 바리스타 분이 에티오피아 아리차 게르시 원두로 정성스럽게 내려주는 드립커피를 바라보며 둘은 커피멍을 했다. "아... 진짜 좋다."




공간이, 그곳에서 함께 있는 사람이, 그와 함께 먹는 음식이 위로가 되어줄 때가 있는데 그때가 그러했다. 나는 나대로, 솔구는 솔구대로 각자가 견디어 온 시간들에 지쳐있는 상태였는데, 특히 나는 무작정 바쁘기만 한 하루를 반복하고 있었고, 솔구는 바쁘고 힘들었던 회사를 그만둔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래서 무조건 '맛있는 것'을 먹자며 세 군데의 가게를 들른 것인데, 배가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못먹은 케이크가 못내 아쉬웠다. 그날 우리의 목표는 밤으로 만든 마롱 무스 케이크를 먹는 것이었다. 달달하고 부드러운 밤크림을 먹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아쉬움에 젖어 한참동안 각자가 사랑하는 디저트에 대해 설파했다. 생크림 딸기 케이크, 밀푀유, 젤라또, 한과, 치즈 타르트까지. 그 생김새와 맛, 가게의 분위기를 세세히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아쉬웠던 현실을 잊고 금새 행복해졌다. 생각해보니 디저트만큼 우리에게 즉각적인 행복을 선사하는 것이 또 없었다. 혀에 닿는 순간 '맛있다'로 시작해서 '행복해'로 끝나는 행복의 묘약.



디저트들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딱딱하게 굳었던 마음이 말랑말랑해져 우리의 이야기는 더 내밀한 수준으로 뻗어갔다. 단순한 근황에서 시작해 작년에 겪었던 불안장애, 매일 새벽 2-3시까지 일해야 했던 회사, 각자 겪었던 심리상담…. 그저 아쉽고 부끄러운 과거와 이유 모르게 불안한 미래까지, 30대 중반의 고민들은 달랐지만 비슷했으며 사실 근원적으로는 거의 똑같았다. 바쁘고 외로운 날 가운데 스스로를 외면했던 우리, 지금에 이르러서는 눈부신 미래를 꿈 꿀 여력조차 없는 우리에게는 다른 무엇보다 멈춤이 필요했다. 멈추어서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안아주는 시간. 단단하고 행복해지기 위해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시간. 그러니까 내 마음을 돌보는 멈춤의 시간이.



그런 의미에서 내 마음을 돌보는 것과 디저트는 닮은 점이 있다. 나를 솔직하게 하고, 나를 행복하게 한다. 마음을 돌보는 순간, 디저트를 먹는 순간만큼은 남 신경쓸 것 없이 오로지 스스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다. 타인이 아닌 스스로에게 솔직해질 수 있다. 나에게 집중하고 솔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나에게 맞는 최적의 행복을 찾아 떠날 채비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나아가는 길에서 불행하지 않기 위해 죽도록 뛰어가기 보다는, 행복하기 위해 느리더라도 확실한 걸음을 옮기고 싶다는데 솔구와 결론을 모았다.



우리가 알고 지낸 그 어느 때보다 솔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앞으로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게 만들 맛있는 디저트 가게를 열심히 리스트업했다. 그러자 내 친구이자 솔구의 남편인 종구가 '합법적으로 디저트를 많이 먹기 위해서 아니냐'라고 했는데, 사실 그것도 맞다. 그만큼 마음을 돌보는 것은 워낙 낯설고 부끄러운 면이 있어서 그런 명분까지 필요한 새롭고 정말로 중요한 일이니까. 마음을 돌보는 게 명분인지 디저트를 먹는 게 명분인지 헛갈리지만, 어쨌든 앞으로의 여행기는 맛있는 디저트 집에서 나눈 30대 중반 두 여자들의 시시콜콜한 마음 이야기다. 30대 중반이 되도록 묵혀온 고민들이 남들이 가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우리의 여행기가 다른 이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빌고,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에게 치유와 성장의 과정이 되기를 빌면서 '내 마음을 돌보는 디저트 여행'을 시작한다.



추신. 디저트 여행은 매주 수요일 어두워지는 언젠가 연재됩니다.


위치 : 서울 마포구 동교로25길 7 1층 (동교동)

한 줄 소개 : 디저트를 선택하면 어울리는 커피를 페어링 해주는 카페

밍키평 : 바에 앉아 내려지는 커피를 보는 시간, 페어링된 커피와 디저트의 조합에 내 나름 해석을 붙이는 행위, 그 모두가 정돈된 힐링.

솔구평 : 인생커피집 순위가 바뀌었다. 커피 한모금에 눈이 동그랗게 떠질 정도로 맛있는데 디저트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



OV5 1st Project '내 마음을 돌보는 디저트 여행'

사진 : 솔구

글 : 밍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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