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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씨 Jun 08. 2022

밍키가 마음을 돌보게 된 계기 (@올레무스)

내 마음을 돌보는 디저트여행기 2편  by.OV5


한 번도 나를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돌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으니까 상대가 괜찮은 대로’, ‘상황이 어쩔 수 없으니까 나라도’라는 생각으로 주변에 나를 맞추며 30년을 넘게 살아왔고,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그래도 괜찮았을까? 정말 괜찮았다면, 2021년 봄 불안, 우울, 강박, 외로움 때문에 홀로 울던 긴 시간이 내 인생에 없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은 33년이 거센 성장통으로 몰아쳐 밑바닥까지 추락하고 나서야 나는 살아온 인생을 온전히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K장녀. 모두가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이 단어가 내게는 웃음기 하나 없는 현실이었다. 6남매의 첫째로 할아버지, 할머니, 다섯 동생들,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까지 챙기는 책임감 넘치는 엄마. 그 엄마의 딸 하나 아들 하나 중 첫째인 딸이 나였다. 어린 시절 건강이 좋지 않았던 남동생을 데리고 수많은 센터를 다니느라 엄마는 정신이 없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혼자서도 학교생활을 꽤 잘 했다. 학교에서 높은 성적을 받아 오는 나를 보며 모두가 엄마에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고, 나에게는 너라도 혼자서 잘해야 된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혼자서도 잘 ‘해야 하는’ 아이로 자랐다. 타인에게 폐 끼치거나 의지하지 않으며 스스로 잘하는 것에 집착하는 어른아이.



대학교를 서울에서 다니게 되며 집을 떠나오게 되었다. 스물 두살에 조금 늦은 첫 연애를 시작했는데, 상대방은 무척 착해 뭐든 다 받아주는 성격이었다. 부모에게도 온전히 의지하지 못했는데, 완벽하지 않은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이 생긴 것은 인생의 큰 전환이었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해도 다 받아줄 사람’이 있다는 믿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는 집착으로 꼬여갔다. 몇 번을 헤어졌다가도 ‘나를 사랑해주는,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에 대한 갈증 때문에 다시 되돌아갔다. 결국 7년간 연애를 마무리하고 나서도, 항상 외로웠다. 기댈 구석 없이 혼자서는 절대 행복해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 직후 시작한 연애에서 ‘남에게 기댈 생각 마라’는 일침과 함께 호되게 차이며 3개월 간 심한 우울감에 빠졌고, 그 때 처음으로 스스로를 돌아봤다. 따뜻한 위로와 애정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못났으면 상대가 그렇게 떠났을까.’하는 자기 비난으로써였다. 스스로를 한없이 미워하며 자책하다가 다시 상담을 시작했고, 시간이 흐르며 다시 혼자서도 괜찮은 일상을 차근차근 쌓아갔다. 그렇게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길 즈음 다시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그 기회를 좀 더 건강하게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다. 나와 1부터 10까지 맞지않는 상대방과의 관계가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혼자이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을 참았다. 불안한 관계를 이어가던 중에, 회사에서 인사발령이 나 부서를 옮기게 되었다. 전임자가 인수인계도 제대로 하지 않고 외국으로 떠난데다 새로 맡게 된 일들이 너무 많았다.



말도 안 되지만,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처음부터, 혼자, 완벽히, 빨리 일을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연락도 되지 않는 이전 담당자 대신 더 예전의 담당자들에게 연락을 돌리고 십 몇 년 전 자료들을 뒤지다보니,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다는 미안함과 죄책감, 빨리 일을 완벽하게 처리해야 된다는 압박감이 점점 커졌다. 어느 순간부터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속이 갑갑해졌다. 몸이 안 좋나 보다 하며 내시경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를 받은 후부터 목에 뭐가 걸린 듯 꽉 막힌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 생긴 건강염려증에 극도로 예민해져 불안, 우울과 공황발작이 겹쳤고, 후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불안장애’ 진단을 받았다. 몸과 정신이 아팠던 그 시기에 모든 것을 참아가며 유지하고자 했던 연인 관계는 파탄이 났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났고, 2022년 지금의 나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 이만큼 회복할 수 있게 된 데에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나를 솔직하게 돌보려 했던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사실 마음 때문에 아팠던 몸이었기 때문에, 여타 병원 대신 정신건강의학과를 가고 심리 상담을 받는 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나치게 불안하고 우울했던 내 마음을 돌보는데 집중했다.


처음에는 부족한 내가 미웠다. 마음이 약해서, 너무 예민해서, 강박이 심해서, 남에게 의지하려고만 해서 결국 이 상황이 일어난 게 아닐까 하는 자책감에 매일을 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를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차츰 달라졌다. 현재의 나를 괴롭히는 여러가지 성격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고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비난하고 외면했던 성격들을 애정 혹은 연민어린 시각으로 바라보니, 결국 지금의 상황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3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스스로를 돌보지 않은, 당연한 결과였다.


‘포기’나 ‘비난’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인정’과 ‘이해’의 시각이 스스로에게도 적용되었다. 완벽하지 않은, 사실 많이 부족한 나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싫었던 내 단점이 다른 한 편에서 떨어져 보자 장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해주는 것을 타인에게 바라지 않고 내가 스스로에게 해 주기로 결심했다. 살아온 시간으로 인한 관성 때문에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낯설어 부단히 흔들렸고 많이 외로웠지만 정말로 열심히 노력했다. 처음엔 죽고 싶지 않기 위해서였지만, 나중에는 살기 싶어서였다.



여전히 내 마음을 우선적으로 돌보는 것이 익숙치 않다. 하지만 부족해도, 혼자여도 괜찮은, 더 나아가 행복한 내가 되고 싶다면 항상 우선시되어야함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 과거가 어땠는지, 그로 비롯된 나의 성정이 어떠한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지금 당장 내 감정은 구체적으로 어떠한지를 섬세하게 인지하려 한다. 그런 순간들을 반복하면서 무채색이던, 사실 아무래도 상관없었던 나의 캔버스가 명확한 색깔들로서 조화롭게 형태를 갖추어 감이 느껴진다.


한편으로 ‘왜 여태껏 내 마음을 돌보아 주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들지만, 금새 툴툴 털어 넘긴다. 그리고 예전과는 다르게 그 아쉬움을 연민과 애정으로 바꾸어 낸다. 그래서 여태껏 못났던 내가, 짠했던 내가, 이제는 <나의 해방일지>에 나온 염미정이 그러하듯 사랑스러워지기까지 한다. 나의 해방일지는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추신. 디저트 여행은 매주 수요일 어두워지는 언젠가 연재됩니다.


위치 :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5길 58 (연희동)

한 줄 소개 : 차와 어울리는 편안하고 깔끔한 분위기, 디저트지만 요리에 가까운 풍부한 비쥬얼

밍키평 : 블라인드 틈 사이의 햇살과 모든 재료가 조화로운 디저트가 선사하는 완벽한 하루. 특히나 디저트는 재료마다 가볍고 무거운 질량감이 재밌다.

솔구평 : 디저트가 아니라 메인 요리를 먹는 것 같은 조화로운 맛과 비쥬얼. 늘 새롭고 늘 맛있다.



OV5 1st Project '내 마음을 돌보는 디저트 여행'

사진 : 솔구

글 : 밍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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