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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씨 Jun 16. 2022

솔구가 마음을 돌보게 된 계기 (@다도레)

내 마음을 돌보는 디저트여행기 3편  by.OV5


14년 전, 대학교 1학년 때 아빠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엄마가 많이 아프다.” 서울에서 학교 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방학이 되자마자 부산 본가로 내려갔다. 우울증이라고 했다. 엄마는 1년 정도 거의 침대에 누워서 약 먹고 자고, 약 먹고 자고를  반복했다. 칫솔질 할 의욕도 없어서 이가 다 썩었다. 그러다가 가끔씩 내 손을 잡고 생을 그만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라서 그저 같이 손을 잡고 울었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되지 않나? 기분 나쁜 말을 들었다면,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싸우고 무시하면 되지 않나? 어떻게 그게 안 되는 지경까지 왔을까? 엄마는 왜 이렇게 까지 됐을까? 문득 어렸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자고 있을 때 내 발목을 잡고 숨죽여 울고 있던 엄마. 너희들 아니였으면 혼자 시골에서 살았을 거라고 말하는 엄마. 실제로 짐을 싸서 나간 적도 있는 엄마. 가족여행 중에 갑자기 말싸움을 하고 혼자 몇시간 동안 사라져버린 엄마. 밤중에 자다가 갑자기 숨을 못 쉬고 공황장애 증상을 보였던 엄마.



’엄마는 원래 예민해. 혼자 과대해석하고 오해를 해.’ 성격으로 치부되고 방치된 마음들이 쌓이고 쌓여서 엄마의 몸을 눕혀버렸다는 사실을 나는 굉장히 늦게 알아차렸다. 마음은 한낱 지나가는 감정이 아니라는 것도. 마음은 시간이 흐른다고, 기억이 희미해진다고 해서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돌보지 못한 감정은 평생에 걸쳐서 시시때때로 우리의 에너지를 갉아먹는다. 오래된 마음은 없던 병도 만들 수 있었다.


그 이후로 꾸준히 우리 가족은 마음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성당도 가고 절도 갔다. 지리산의 어떤 사이비 같은 수행 센터에도 가고, 불교의 기원이라고 하는 위파사나 수행터에도 가고, 깨달았다는 스님들과 영적 스승이 라는 사람들의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십여 년 동안 힘겨운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어둠의 나락으로 떨어질 때마다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방법을 적용해보며 나름대로 안정을 찾아갔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 건 비교적 최근 일이었다. 죽음을 생각하는 우울증에 비하면 직장인 번아웃 정도는 별 것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다니고 있던 회사는 급성장하는 스타트업이었는데 늘 새로운 사건을 해결하고, 체계와 시스템을 만들고, 사람을 뽑고 관리해야 했다. 매일 새벽까지 일하고도 부족해서 주말에 출근하는 생활을 1년 가까이 했지만 그래도 항상 재미가 있었다. 일에 아주 푹 빠져 지낸 시간이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회사에 가기 싫어졌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너무 재밌었던 내가 이제는 문제가 생기면 짜증부터 났다. 여지껏 너무 달려서 지쳤나. 좀 쉬어야 하나 싶어서 일을 줄이고 평일에는 늘 칼퇴를 했다.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가 싶어서 이런 저런 프로젝트도 해봤다. 회사에서는 심리상담을 지원해줄테니 받아보라고 했는데 나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마음 공부를 해왔고 내 마음은 내가 ‘핸들링’할 수 있다는 이상한 고집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 곳은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였다. 먹고 살기도 바빠죽겠는데 마음에 집중할 시간을 낸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보다 못한 동료가 말했다. “너 많이 안 좋아보여. 상담 받아보면 어때?”



심리검사지에는 이런 질문이 있다. “만약 내일 죽으면 어떨 것 같나요?”


만약 내가 내일 차에 치여 죽는다면? 뭐 그럴 수도 있지. 삶에 큰 미련은 없다. 다만 가족들이 너무 슬퍼할테니 가족들이 이미 세상에 없다면 당장 내일 어떻게 되어도 별로 개의치 않다고 썼다. 딱히 슬픈 마음으로 쓴 것은 아니었는데.. 선생님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스스로 존재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쓰지는 않거든요”


그 말은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존재의 가치? 그게 뭘까. 원래 다들 우주에 사는 먼지 아닌가. 모든 사람은 죽는다. 우리는 모두 일시적인 삶을 즐겼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지구별 여행자일 뿐이다.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데, 내 논리가 맞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눈에서는 마음대로 눈물이 흘렀다. 나는 나를 없어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게 뭐? 왜? 뭐가 문제야?’ 라고 반사적으로 생각하면서도 이상하게 목에서부터 무언가가 올라왔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주어진 삶을 사랑하며 살고 있는데 나는 아니었다.



이후로 여러가지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경험하면서 나는 우리 가족이 놓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어떤 진단도 솔루션도 아니었다. 화를 다스리는 법, 우울에서 벗어나는 법, 000 대화법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음이라는 깜깜한 미로 속에서 등불을 들고 끝까지 함께 걸어가는 일에 가까웠다.


쉽게 말해서 그렇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마음으로 가는 길에는 여러가지 함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 마음은 별거 아니라며 무시해버리거나, 이쯤 헤아렸으면 됐다며 포기해버릴 수도 있다. 마음이 ‘나 아직 아파’ 라고 말하는 소리를 습관적인 메아리 정도로 치부해버릴지도 모른다. 정확히 어떤 상처인지, 얼마나 깊은지, 얼마나 아픈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렇게 미로의 중간에서 돌아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엄마가 누운지 1년 째 되는 겨울, 아빠가 말했다. “내년 봄에는 같이 꽃구경 하러 가자. 그때가지 조금 더 쉬어라.” 비록 우리 가족은 엄마의 미로를 같이 걸어주진 못했지만 적어도 거기에 오래된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상처를 돌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했다. 우리의 그 옅은 이해로 엄마는 다시 일어섰다.

만약 “그런 일로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네.” 라고 했다면 어땠을까. 그 한 마디에 들어있는 무관심은 얼마나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가. 감정을 처리할 줄만 알고 그 안의 맥락과 이유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사람.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는 사실에 아직도 뒷통수가 쎄게 아프다.


비록 내가 정신과 전공의는 아니지만, 적어도 주변 사람의 마음 속은 끝까지 걸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지금까지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무관심해서 혹은 함부로 판단하고 평가해서 준 상처를 그렇게 갚아나가기로 했다. 그 시작을 나의 십년지기 친구 밍키, 그리고 평생의 반려자가 되기로 약속한 남편과 함께 하려고 한다. 단언컨데 우리는 아주 행복할 것이다.




추신. 디저트 여행은 매주 수요일 어두워지는 언젠가 연재됩니다.


위치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증가로 13-9 3층 (연희동)

한 줄 소개 : 은은한 차와 다기를 소개하는 스페셜티 티 브랜드,다도레

밍키평 : 계절 따라 달라지는 맛있는 차와 다식, 그리고 다도라는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작은 세계.

솔구평 :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싶은 날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골 찻집



OV5 1st Project '내 마음을 돌보는 디저트 여행'

사진 : 솔구

글 : 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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