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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씨 Jun 29. 2022

우울할 때 나를 돌보는 방식, 밍키 (@오목눈이)

내 마음을 돌보는 디저트여행기 5편  by.OV5


회사에서 진상 민원인과 한바탕 했을 때, 한창 연애를 쉬는 중 앞서 걸어가는 사람들이 다 커플일 때, 잘 나가는 친구들의 빛나는 성과, 성공한 재테크에 비해 내게 아무것도 없을 때, 그리고 사실 아무 이유 없이도...! 끝없이 이어진 삶을 살아내는 중에 쿠크다스보다 못한 내 멘털을 부수고 곤죽을 만들어 바닥에 발라버리는 시점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뭐든 다 부숴버리고 싶다가도, 이불속에 숨어 한없이 울고 싶은 감정의 폭에 어찌할 줄 모르던 나는 이것저것 해보며 우울로부터 탈피하려 노력했다. 결과적으로 외부 상황의 개선 여부와 상관없이 저 밑에 찌그러져 있는 감정선의 멱살을 잡고 평소, 아니 평소의 -10% 정도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확실한 루틴 두 가지를 골라낼 수 있었다.



1. 일단 걷는다.


회사에서라면 퇴근길에, 집에서라면 집 뒤 한강 공원으로 뛰쳐나간다. 핸드폰은 방해금지 모드로 해놓고, 에어 팟으로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은 채 발에 힘주어 걷는다. 가능한 걸을 때는 명상을 하는 것처럼, 생각보다는 몸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내 숨, 팔, 다리, 심장박동... 하지만 초반엔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그 생각들이 남 탓일 때는 그나마 다행이지만, 내가 못나서,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내 탓일 때는 좋은 징후가 아니다. 생각하지 않으려 할수록 더 생각나는 게 생각이므로, 억지로 생각을 떨치려 하지 말고 그 생각이 희미해질 때까지 그저 걷는다. 하루가 걸릴 수도 있고, 일주일 혹은 한 달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걷다가 내 안의 생각보다 내 밖의 환경들, 예를 들어 계절 바뀌어 피는 꽃과 나무들, 오가는 사람들의 옷차림, 하늘에 예쁘게 걸린 구름 같은 것들에 관심이 가는 때가 온다. 그럼 그때가 바로 그때다. 우울과 맞설 내 마음의 체력을 갖춘 때.



2. 그리고 쓴다.


체력만 갖춘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우울은 세상 그 어떤 상대보다 집요하고 복잡한 놈이어서, 대책 없이 맞붙었다가는 금세 나가떨어질 것이다(내가). 나는 주로 일기를 쓰는데 마음이 평화로울 때는 잘 정리된 하루의 요약이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내 감정의 토사물에 가깝다. 초등학생 때부터 일기를 검사받아온 대한민국 어른이들에게는 일기를 ‘잘’ 써야 된다는 강박이 없지는 않겠지만, 철저히 나만 본다는 전제로 아주 자유롭게 써야 한다.



1) 쏟아내기 : 철저히 필터링 없이 머릿속 생각을 말 그대로 게워낸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낯부끄러웠던 것도 끄집어내야 한다. 우울하다는 감정이 더 세부적으로 분류된다. 짜증 난다. 싫다. 질투 난다. 창피하다. 외롭다. 화가 난다 등등. 외면하고 싶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눈앞에 쓰이는 것을 보는 것도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꺼내는 작업만으로도 큰 효과가 있다. 글로 쓰고 그것을 잠가두기만 해도 어느 정도 해결되는 선도 있다.


2) 골라내기 : 쏟아낸 것 중에 반복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것들을 골라낸다. 남들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을 때, 약속 없이 혼자 집에 있을 때, 헤어진 전 남자 친구가 못내 아쉬울 때... 골라내다 보면 확실히 겹치는 부분이 있다. 이 경우는 타인 없이는 행복하지 못한 나로 추려졌다.



3) 바꿔보기 : 추려낸 결과물이 진실일 때는 그 자체를 직시하고, 무던해지는 연습을 하면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유년시절, 성격 등으로부터 파생된 꼬여버린 오류 때문이다. 그럴 때는 침착하게 오류를 바로 잡으면 된다. 타인 없이 왜 행복하지 못한 나? 나는 나로서도 행복할 수 있다. 남에게 받고 싶은 인정은 내가 나에게 해줄 수 있고, 약속이 없는 날은 남 눈치 안 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으면 되며, 사실 본질적으로는 나만 외로운 게 아니라 모두가 외롭다. 90%의 시간을 좋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보내면서 10%의 혼자 있는 시간에 꼬여버린 생각의 오류로 우울해하는 나를 제삼자적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우울의 정도는 줄어들고, 나를 이해할 수 있으며, 나아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향을 찾아볼 수 있게 된다.


기록의 또 다른 좋은 점은 나중에 다시 들추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은 쉽게 잊고, 쉽게 반복한다. 언제고 다시 찾아올 우울의 때에 예전 기록을 들추어 보면 ‘내가 저 때도 이겨냈는데 지금도 이겨낼 수 있어.’하고 생각할 수 있고, 비슷하게 범해지는 생각의 오류에 쉽게 대처할 수 있는 매뉴얼로 삼을 수 있다. 우울의 기록이지만, 반대로 치유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외에도 우울을 지워낼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이 많다. 하지만 느리더라도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찾는다면 내게는 그것이 걷기와 쓰기였다. 나를 괴롭히는 고질적인 외로움에서 벗어나고자 돈을 쓰고, 사람을 만나고, 여행을 떠나도 그 여운이 오래가지 못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언제 어디서든 무일푼으로 시도할 수 있는 두 가지가 있어 나는 참으로 든든해졌다. 걷고, 쓰는 일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를 시도할 수 있다면 예고 없는 우울에도 침착하게 다시 행복해질 수 있으므로.



+4월  중순에 닥친 우울을 겪어내고

확실히 저 걷고 쓰는 두 가지가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추가로 힘이 된 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것을 보내며 보내는 시간. 나는 ENFJ 형 인간이어서 그런지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에너지를 많이 받는 편이다. 일주일 동안 또다시 우울을 겪는 와중에 2.5일 동안 5개(...)의 사람 약속을 잡았다. 꽤 과한 면이 있기는 했지만 그 5개의 약속은 정말 정말 좋아하고 편한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을 하며 보냈다. 도시락 싸서 한강 소풍 하기, 가보고 싶던 디저트 가게 가기, 요즘의 혹은 근원적인 고민 같이 속 깊은 이야기 하기, 평양냉면 먹기, 카페(국회의사당 앞 스타벅스 2층)에서 풍경 보며 멍 때리기.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운 주말을 보내고 나자 쓸데없던 고민, 비관적 생각이 사라져 머릿속이 맑아졌다. 나를 둘러싼 상황 중 해결된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랬다. 응급상황에서 나를 끌어올려줄 수 있는 긴급처방, 내가 언제 어디에서 누구와라도(아님 혼자라도)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이건 있으면 좋다가 아니라 있어야 한다!




추신. 디저트 여행은 매주 수요일 어두워지는 언젠가 연재됩니다.


위치 : 서울 관악구 장군봉 1길 32 (봉천동)

한 줄 소개 : 봉천시장 속 숨겨진 보석 같은 곳으로 아기자기한 분위기에 버터리한 스콘, 맛있는 케이크(쑥 크럼블 케이크가 제일 유명), 각종 소품(화분, 메모지, 아트초)들이 가득한 동화나라.

밍키평 : 스콘이 메인이지만 케이크도 맛있고, 그중 쑥 크럼블 케이크는 내가 아는 모두가 손꼽는 수작(크럼블 크럼블!!!!)

솔구평 : 대학생 시절 좋아했던 아기자기한 감성에 잘 구워진 겉바속촉의 스콘은 무적이다.


OV5 1st Project '내 마음을 돌보는 디저트 여행'

사진 : 솔구

글 : 밍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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