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씨 Sep 14. 2022

에필로그 (@이미커피)

내 마음을 돌보는 디저트여행기 12편  by.OV5

“평소에 행복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세요?”


독서모임 중 나온 질문에 친구는 “네! 당연한 거 아니에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다른 사람들의 놀랍다는 반응을 보고는 모두에게 그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 역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헐! 어떻게 행복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있어?”


비슷해서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내는 건지, 친구여서 함께하다 보니 비슷해진 건지 모르지만 앞서 말한 친구와 나, 솔구, 그리고 몇몇 친구들은 종종 행복과 불행, 본인과 타인, 삶과 죽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한다는 점에서 참 비슷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다른 사람들은 주식, 부동산, 골프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우리의 대화는 앞서 말한 근원적인 주제들에서 신기하리만치 벗어나지 않는다. 항상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도 지겹지 않고 흥미롭기만 한데, 이런 내가 가끔은 답답하기도 하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을 가지고 돈을 벌거나 자기 계발을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이런 답도 없는 것들에 대해 고민할까. 좀 더 계산적이고 똑 부러지는 미래지향적인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럼에도 반복되는 일상, 그 속 희로애락의 매 순간을 잘 겪어낼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이제껏 모은 돈, 쌓아온 사회적 지위 같은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저런 자잘한 고민들이었다. 남들은 똑똑하게 별 것 아닌 듯이 흘려보낼 일도 감성적이고 예민하며 생각이 많은 나는 태풍에 휩쓸린 듯 온몸과 마음을 부딪혀가며 겪어냈다. 결국 ‘남들은’ 하고 생각하는 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꽤 늦게 깨달았다. 어차피 내 삶을 사는 사람은 나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할 유일한 존재인 나를 마주하고 잘 알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왜냐하면 누구나 그렇듯이 잘 살고 싶으니까. 과거, 현재, 미래의 어느 곳에서라도 행복하든 불행하든 돈이 많든 돈이 적든 누군가와 함께든 혼자든 나는 나답게 잘 살고 싶으니까. 


그래서 솔구와 함께 마음을 돌보는 디저트 여행을 시작했다. 11곳의 디저트 가게를 다니면서 달콤한 디저트도 좋았고 그와 함께 나눈 대화도, 그 속의 진심도 참 좋았다. 오가는 질문들을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네가 어떤 사람인지, 너를 통해 비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마음이 따뜻하게 몽글몽글 피어나는 것 같아. 좋은 에너지 같은 게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면서 막 빛이 나.” 연희동의 올레 무스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며 솔구에게 건넨 말이었다. 그 순간은 의심할 여지없는 행복의 순간이었고, ‘나’라는 사람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마음을 돌보는 디저트 여행이 끝나고 이 글을 쓰는 지금, 누군가가 나에게 원하던 것에 대한 완벽한 답을 얻었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요’이고, 그럼 적어도 이제는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역시 대답은 ‘아니요’이다. 그렇다면 저런 고민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은 더더욱 ‘아니요’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행복하기도, 불행하기도, 아무렇지 않기도 한 모든 순간에서 조금씩 알아가는 ‘나’라는 믿을 구석을 가지고 든든하게 나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만족할 뿐이다.



밍키를 행복하게 하는 아주 구체적인 10가지


1. 엄마랑 목욕탕 온탕에 몸 담그기 ⭐️ ⭐️ 

명절마다 엄마랑 아파트에 있는 목욕탕에 가거든. 사랑하는 엄마랑 따뜻한 물 안에 잠겨서 나누는 시답잖은 이야기들에 긴장이 풀리고 잡생각이 없어져. 그리고 때 밀면서 먹는 아이스 목욕탕리카노랑 목욕 끝내고 나와서의 개운함도 좋아.


2. 파리크라상 딸기 치즈 타르트 한판과 아이스 아메리카노 ⭐️ 

파리크라상의 딸기 치즈 타르트를 엄청 좋아하는데 부산에 내려갈 때나 친구들끼리 오랜만에 모일 때처럼 특별한 때 조각이 아닌 한 판을 사서 먹거든. 새콤하고 단 케이크를 아이스 아메리카노랑 먹는 것 자체가 행복한데, 한 판이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든든해져.


3. 평양냉면 ⭐️ 

점심에 먹어도 저녁에 먹어도 괜찮은, 너무너무너무 좋아하는 음식이 원래 4가지였어. 소곱창, 쉑쉑 버거, 마라샹궈, 그리고 평양냉면. 그중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평양냉면인데, 같이 평양냉면 좋아하는 친구랑 다양한 평양냉면 집에 가서 들이키는 육수 첫 입이 확실한 행복 버튼이야.


4. 좋아하는 사람과 뭘 하면 행복한지 이야기하기 ⭐️ ⭐️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뭘 하면 행복한지 아는 것도 좋아.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고, 나중에 내가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줄 수도 있으니까. 더불어 나도 몰랐던 새로운 무언가를 해볼 수 있고.


5. 선유교 위에서 산책하기 ⭐️ ⭐️ ⭐️ 

산책하러 공원으로 나가는 길에 선유교를 건너. 왼쪽에는 올림픽 대로가 있고 오른쪽에는 양화대교랑 한강철교가 있어. 달도, 별도, 강도, 선유도도, 철교 위로 지나가는 지하철도 봐. 서울은 야경이 참 아름다운 도시인데, 이런 아름다운 곳에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좋아. 그리고 가끔 달에 소원을 빌 때 내가 어떤 상태이고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 알 수 있어.



6. 어디로든 여행 ⭐️ ⭐️ ⭐️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낯선 곳이 주는 신선함이 있는데 그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익숙한 것들을 발견할 때 그 행복이 극대화돼. 내 일상의 터전이 좋은데도, 그 일상을 벗어나는 일탈 자체가 너무 행복해. 그리고 또 여행을 다녀와서 집에 짐을 다 풀고 정리하고 여행의 순간을 떠올리는 그 순간까지도 여행의 일부로 행복해.


7. 일기 쓰고 읽어보기 ⭐️ ⭐️ 

사실 힘들 때 열심히 쓰고 편할 때 덜 쓰지만 최대한 많은 순간들을 기록하려고 노력해. 일기를 쓰면서 감정과 상황이 정돈이 되는데 특히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진짜 좋아. 그때를 떠올리면서 지금과 비교도 해보고, 앞으로 어땠으면 좋겠다도 생각할 수 있거든.


8. 뮤지컬 보고 넘버 듣기 ⭐️ 

워낙 흥도 많고 드라마도 좋아하고 노래 듣는 것도 좋아하니 뮤지컬 보는 것도 좋아해. 꽤 다양한 뮤지컬을 봤는데 뮤지컬 작품끼리, 배우들끼리 비교하는 것도 재밌고 나만의 감상 기준이 생기는 것도 재밌어. 정말로 좋아하는 작품을 보고 나면 그 작품의 뮤지컬 넘버, 배우 노래를 하루 종일 듣는데 흥이 오르면서 행복해져.


9. 연극 ⭐️ 

대학교 때도 연극 동아리를 했고, 졸업 후에도 몇 번 사회인 연극을 했어. 어떤 인물을 이해하고 말과 행동으로 몰입해서 표현하면서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경험을 하는 게 참 재밌었거든. 정말로 카타르시스라는 것도 느껴지고. 그리고 작품을 하다 보면 많은 시간을 함께 하게 되는데 운 좋게 마음 맞는 사람들이랑 만나 한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정말 재밌었어.


10. 예전과 달라진 내 모습 중 마음에 드는 모습을 발견할 때 ⭐️ ⭐️ ⭐️ 

예전의 나와는 여러 모습에서 달라졌는데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도 물론 있지. 하지만 반대로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변화된 모습도 있어. 예를 들어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다 괜찮다’, ‘나는 내가 좋다’고 스스로를 돌보아줄 수 있을 때. 내가 조금은 자랐구나 하고 뿌듯하고 안정된 느낌이 들어서 행복해.


뭘 하면 기분이 좋다~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정리된 리스트로 들고 있다니 기분이 묘하다. 다음엔 행복하게 하는 것 말고 슬프게 하는 것, 화나게 하는 것 등도 적어봐야지. 신기하고 든든하다. 나에 대한 더 많은 정보들이 쌓여가길!



솔구를 행복하게 하는 아주 구체적인 10가지


흠 10개는 가뿐하게 적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33년 살면서 이제야 이 10가지를 적어보다니!  

 

1. 메이플 시럽을 바른 팬케이크에 맛난 커피 한 잔 ⭐️⭐️

좋아하는 디저트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왜 팬케이크를 떠올리면 즉각 ‘행복'할까 생각해보니 어릴 때부터 엄마가 해줬던 간식이라서 마치 무릎반사처럼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아.


2. 잠들기 직전의 토크토크 ⭐️⭐️⭐️ 

모든 일정을 다 끝내고 누워서 불을 끈 다음 잠에 들기 전에 떠드는 시간이 좋아. 이때는 잠이 올랑 말랑 하기 때문에 그냥 생각나는 대로 필터링 없이 떠들게 되는데 실없는 이야기든 진지한 이야기든 이때가 제일 순수하게(?) 대화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3. 따뜻한 물에 샤워하기 ⭐️ 

샤워를 너무 오래 한다고, 뭐 그렇게 할 게 많냐고 남편이 투덜거리곤 하는데 꼼꼼하게 씻기도 하지만 따뜻한 물이 좋아서 가만히 멍 때리고 있을 때도 많음


4. 유명한 곳에서 유명하지 않은 것 사진 찍기 ⭐️⭐️⭐️ 

이번에 신혼여행을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 다녀오면서 느꼈지만 유명한 랜드마크에는 다 이유가 있더라 랜드마크 그 자체보다는 그 공간을 만든 사람의 아주 디테일한 고민, 의도 같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에 흥분하는 편. 예를 들어 가우디가 만든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바로 찍는 것은 재미가 없지만 그 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이 바닥과 기둥과 사람들에 반사되는 걸 찍는 건 정말 재밌어


5. 소소하게 칭찬하고 칭찬받기 ⭐️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칭찬은 무슨 칭찬이야~ 나만 알면 되지~ 이랬는데 여전히 칭찬은 나를 춤추게 만들더라. 그래서 요즘엔 엎드려서라도 받는 중. 잘했지? 괜찮지? 하면서.



6. 남편이 차려주는 따뜻한 밥 ⭐️⭐️

 메뉴를 정하고, 장 보고, 요리하고 이 과정이 얼마나 길고 번거로운지 알아서 퇴근하고 집에 온 사람이 이걸 다 하다니! 하면서 엄청 감사하고 행복해 드물지만 내가 밥을 할 때도 있는데 내가 한 밥을 맛있게 먹어주다니~~ 하면서 행복해


7. ZARA HOME에서의 쇼핑 ⭐️ 

소품 가게는 내 참새방앗간이야. 난 왜 옷 쇼핑보다 인테리어 소품 쇼핑이 더 좋은지 모르겠어 구경만으로도 눈이 즐겁고 텐션이 좋아짐


8. 누군가의 고민 들어주기 ⭐️⭐️⭐️ 

내가 남에게 고민을 잘 털어놓는 편이 아니라서 누가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일단 너무 고마워. 꼭 해결책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냥 같이 고민을 나누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


9. 햇빛 받으면서 요가하기 ⭐️ 

몸이 찌뿌듯하면 당연히 기분이 좋지 않더라고. 요가가 스트레칭도 되고 근력 운동도 되어서 적당히 몸이 풀리면서도 강해진 기분이야.


10. 감정 일기 쓰기 ⭐️⭐️ 

너무 귀찮아서 매일 쓰지는 못하는데 막상 쓰고 나면 너무나 후련해 특히 여러 가지 감정을 느꼈던 날, 큰일이 있었던 날 일기를 쓰고 나면 마음이 정리가 되면서 가벼워지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또 한 번 알아간다는 게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는 것 같아.


등등 더 많이 있을 테지만 선착순으로 떠오른 것들은 여기까지. 역시 나라는 사람은 따뜻하고 소소한 것들로 쉽게 행복해지고, 관계 속에서 더 행복해지는구나 싶다. 내 인생 왜 이럴까 하면서 땅굴 파고 있는 순간에 꼭 다시 읽어봐야겠다!





추신. 디저트 여행은 언젠가 다시 연재됩니다.


위치 : 서울 마포구 동교로25길 7 1층 (동교동)

소개 : 우리가 마음을 돌보는 디저트 여행을 시작한 곳. 이곳을 마지막 에필로그에도 담고 싶었다. 그만큼 케이크와 커피 각각이 맛있고, 함께 페어링한 조합도 완벽한 곳. 직접 로스팅한 고유 원두를 파는데 망고, 딸기 등 특이한 맛도 많고, 일반적인 맛의 커피라도 컨셉에 맞게 맛있게 로스팅 해내서 인기가 많아 사기가 쉽지 않다. 계절마다 바뀌는 페어링에 계절 과일 먹듯이 한 번씩은 꼭 가서 마음을 돌보고 싶어지는 곳.



OV5 1st Project '내 마음을 돌보는 디저트 여행'

사진 : 솔구

글 : 밍키

이전 11화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엄마(2) (@크렘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