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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무지개 Jan 24. 2022

너에게 시간이 필요했구나

염혜원 <수영장 가는 날>

  운동이 필요했던 아이에게 발레, 태권도, 수영, 요가 등 여러 운동 종목을 제시했다. 아이는 다 싫다고 했다. 태권도장을 기웃거리고 욕조에서 수영하는 연습을 하고 누구는 발레학원 다닌다며 이야기를 했지만 가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아이가 가고 싶다고 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어느 날 아이가 발레를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난 내심 기뻤다. 근데 발레뿐 아니라 태권도도 보내달라고 하고 이것저것 다 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우선 발레를 배워보자고 달랬다.


  드디어 발레학원 가는 날이 되었고 아이는 새로운 곳에 간다는 생각에 들떠있었다. 발레학원 문을 열자 이곳저곳에서 발레수업이 진행되고 있었고 예쁜 발레복이 전시되어 있었으며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이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어른들의 발레 수업을 지켜보았다. 나는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탈의실로 가서 귀여운 발레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는 평소와 다른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보며 한껏 즐기는 것 같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나는 아이가 즐거워하며 수업을 들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는 수업이 시작되자 얼음이 되었다. 구석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만 봤고 선생님이 몸을 움직여줘도 나무 막대기처럼 꼿꼿하기만 했다. 나는 너무 당황스러웠고 조금 화가 났다. 수업 시작 전까지 그렇게 신나 하더니, 이게 무슨 상황인가. 첫날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수업 내내 아이는 처량히 구석에 앉아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아이에게 왜 선생님 말씀도 안 듣고 앉아만 있었냐고 물으니 부끄러웠다고 한다. 처음이니까 그럴 수 있겠다 싶었다. 뛰쳐나오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첫 날 수업, 처량하게 앉아있는 아이

  

  두 번째 수업 날이 다가왔다. 나는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된다고 했는데 아이는 간다고 했고 선뜻 나갈 준비를 했다.  두 번째 수업이니까 이번에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이는 이번 수업에도 그냥 앉아있거나 서있거나 누워있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갔다. 수업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첫날보다는 조금 움직였다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두번째 수업날, 그래도 매트에 앉아서 지켜보는 아이


   염혜원 작가 그림책 중 <수영장 가는 날>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수영을 배우러 가는 날만되면 배가 아프다는 아이. 물에는 들어가지 않고 밖에 있는 아이. 다른 아이들을 지켜만 보는 아이. 바로 우리 아이가 그림책 속 아이 같았다.  그림책 속 아이는 번째 수업 날 선생님의 도움으로 조심스레 물속에 들어가서 팔을 발차기를 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조에서 수영 연습을 한다.  번째 수업 날, 아이는 누구보다 물장구를 신나게 치며 신나 한다. 그리고는 이제는 배가 아프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첫날 수업에는 지켜만보다 세 번째 수업에는 즐겁게 수영하는 아이

  그래. 우리 아이도 천천히 적응하고 있는 중인 거다. 처음이라는 설렘도 있지만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나는 좀 더 기다리기로 했다.

    

  세 번째 날이 다가왔다. 난 아이에게 발레를 계속 다니고 싶으면 선생님이 하라고 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친구들에게 방해가 된다고 말해주었다. 아이는 약속을 하고 수업을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아이가 잘하는지 계속 지켜보고 싶었지만 참았다. 살짝 엿봤을 때는 동작을 따라 하고 있어 안심이 되었다. 수업 시간이 끝나자 아이는 아주 즐거운 목소리로 '오늘 너무 재미있었어요! 내일 또 오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선생님도 오늘은 지난번 수업과는 달리 잘 따라와 주었다고 했다.


   아이의 발레 수업 적응은 아직 진행 중이다. 처음 해보는 동작은 잘 따라 하지 않고 쑥스러워 가만히 있지만 몇번 해본 동작은 곧 잘 따라한다. 이제는 수업이 끝나면 항상 재밌었다고 말한다.

   

   남들보다 적응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천천히 기다려 주면 된다. 아마 발레뿐만이 아닐 것이다. 앞으로 아이가 스스로 적응하고 해낼 수 있도록 아이에게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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