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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수민 라이트랩 Dec 01. 2020

빛을 다듬는 장인의 망치질

왜 조명기구에는 작은 패턴들이 존재할까?


Tom Dixon 사의 펜던트 조명 Beat (출처 : tomdixon.net)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조명기구가 있다. 나란히 걸려 있는 세 가지 다른 형태의 검은색 펜던트 조명은 이제는 누구나 한 번쯤은 본 적 있을법한 유명한 조명이 되었다. 이 조명은 영국의 디자이너 톰 딕슨(Tom Dixon)의 작품으로, 부드러운 곡면의 검고 매트한 형태와 대조적으로 화려한 황금빛의 펜던트 안쪽면이 특히 인상적이다. 



이 조명의 또 한 가지 독특한 점이 있는데, 그 금빛 내부에 아주 작은 망치 자국들이 무수히 나 있다는 점이다. 전등갓의 외측면은 매끈하게 유지하면서, 내측에 패턴을 만드는 것은 매우 번거로운 작업을 수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디자이너는 조명 갓에 무수히 많은 망치 자국을 만들었을까? 



어쩌면 누군가는 조명의 독특한 디자인을 위해서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순히 형태적인 용도라고 하기에는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조명에서 비슷한 형태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러한 패턴이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곳은 조명기구의 반사판이다.



조명기구의 반사판들에는 이처럼 반복적이고 작은 형태의 패턴들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반사판은 램프에서 나오는 빛을 모으거나 퍼트리고, 원하는 방향으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단순히 빛을 모아 어느 방향으로 보내기 위한 것이라면, 반사판의 표면이 굳이 오돌토돌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거울처럼 반짝이고 매끈한 표면의 반사효율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왜 대부분의 반사판들은 이렇게 작은 패턴들을 갖게  된 것일까?






빛은 직진한다. 그리고 물체의 표면에 닿으면 반사되는 성질을 가진다. 이는 매우 정밀해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미세한 표면의 흠집이나 휨에도 빛의 반사는 영향을 받는다. 햇살 좋은 날, 창문으로 들어온 햇볕이 책상 위 물건에 반사되어 천장에 어른거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 눈에는 평평하게 보이는 표면일지라도 반사되어 천장에 닿은 빛에는 일렁임이 발생한다. 이러한 일렁임은 물체의 표면에 눈으로 보기 어려운 굴곡이나 휨이 있음을 알려준다. 



작은 굴곡에도 빛의 변화가 크게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은 조명기구에서는 빛의 얼룩이 되어 나타난다. 그리고 이 얼룩은 불쾌한 눈부심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비추고자 하는 표면에 고른 빛을 보내지 못하고, 불규칙한 패턴의 빛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빛의 얼룩은 조명기구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빛을 깨끗하고 고르게 보낼 만큼 반사판의 표면을 매끄럽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반사판이 조금이라도 휘거나 흠집이 나면 이는 그대로 빛의 얼룩이 되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표면에 작은 굴곡들을 만들어 표면에 닿은 빛이 여러 방향으로 퍼지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우리가 흔히 보는 반사판의 작은 패턴들이다.



표면을 부드럽게 보이게 만드는 무광도 같은 원리로 만들어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수한 굴곡이 표면에 반사된 빛을 사방으로 퍼트린다. 한 곳에 맺히지 않고 보다 넓은 면적에 퍼진 이러한 무광의 표면은 반짝이는 표면에 비해 부드러운 빛의 반사를 보여준다.



무광의 표면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작은 굴곡들이 빛을 산란시키며 만들어진다. (출처 : signify.com)



건축물에도 이와 같은 효과가 적용된다. 평평한 유리로 만들어진 건물보다는 석재 패널로 마감된 건물이, 석재 패널보다는 벽돌로 된 건물 또는 조각들로 채워진 옛 건물의 벽면이 한낮의 강한 태양빛을 잘게 쪼개어 눈부심이 줄어드는 역할을 한다. 과거 중동지역의 건축이나 중세의 유럽 건축처럼 세밀하고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는 건축물의 표면은 빛을 여러 방향으로 퍼트려 강한 태양빛이 높은 건축물에 반사되어 발생하는 눈부심을 줄이기도 했다.



또한 이러한 빛의 확산은 불투명한 재료의 반사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유리와 같이 투명한 소재 역시 표면의 굴곡을 통해 나오는 빛을 잘게 쪼개는 것이 가능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조명기구를 통해 나오는 빛의 면적이 넓어지며, 이를 통해 시각적으로  보다 부드럽고 편안한 빛이 만들어진다. 투명한 유리로 된 백열전구의 경우 필라멘트가 그대로 노출되어 강한 눈부심을 유발했기에, 이와 같은 방식의 조명기구가 많이 사용되었다. 



광원이 그대로 보이는 조명 하부보다 굴곡진 패턴을 거쳐 나오는 상부의 빛이 더 부드럽다.



광원이 백열전구에서 LED 전구로 교체되면서, 빛을 산란시키는 과정 역시 변화하고 있다. LED램프로 만든 전구는 반도체의 특성상 백열전구처럼 램프의 중앙에서 사방으로 빛이 퍼져나가기 어려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빛이 램프의 어느 방향에 몰리기 쉽다. 또한 램프를 싸고 있는 전구의 표면이 고르지 못할 경우 빛의 얼룩이 발생할 수 있다.




표면의 패턴으로 보다 빛이 부드럽게 퍼 저나 가도록 돕는 LED 전구 (출처:lighting.philips.co.kr)




조명기구의 반사판이나 등기구의 갓이 난반사를 유도해 부드러운 빛을 만들었다면, 램프의 표면에 작은 패턴들을 반복해 넣기도 한다. 전구 표면에 직접 부드러운 빛을 만드는 작은 굴곡을 준 셈이다. 표면의 이 작은 굴곡은 빛의 얼룩을 줄이고 부드러운 빛을 만들 뿐 아니라, 한쪽으로 빛이 쏠리는 LED 전구의 특징을 보완하고 다양한 방향으로 빛이 퍼지는 것을 돕는다. 아주 작은 차이지만, 그 작은 차이를 통해 보다 우리 눈에 편안한 빛과 환경이 만들어진다.



망치로 하나하나 두드리며 조명 갓 안쪽의 돌기를 만들어내는 장인의 손길은, 그 자체로 한 땀 한 땀 빛을 세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명기구의 작은 패턴은 결국 난반사를 통해 보다 부드러운 빛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망치로 하나하나 두드리며 조명 갓 안쪽의 돌기를 만들어내는 장인의 손길은, 그 자체로 한 땀 한 땀 빛을 세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작은 노력들이 모여 우리가 사는 빛환경을 보다 부드럽고 편안하게 조금씩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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