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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관 Feb 14. 2020

많이 힘들었을 말 같은 당신에게

김자까의 66번째 오분 글쓰기

김자까의 오분 글쓰기는 구독자분들의 사연을 각색해 색다른 소설을 지어보는 글쓰기 프로젝트입니다.

신청방법: 덧글 남기는 곳에 신청 이유와 사연을 적어주세요.

사연 주신 분: 고모씨

사연: 당근과 채찍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사용하기 시작했을까요?



오분 글쓰기 시이작->

지하철 손잡이가 당근이다.
정확히는 당근 모형이다.
옆 사람은 채찍 모형을 잡고 있다.
이 칸은 '당근과 채찍' 이라는 테마의
전철 칸인데 작품 설명에는
전철 내부의 손잡이를 당근과 채찍
모양으로 만들어 사람들이 어느 손잡
이를 더 선호하는지 알아보는 실험예술
이라고 적혀있다.

당근과 채찍에는 센서가 부착되어 있어
승객이 손잡이를 잡으면 그 횟수가
전송되어 컴퓨터에 기록되고 누적된
수치가 전광판에 표시되는 형식이란다.
현재는 당근과 채찍이 비슷한 수치로
누적되어 있었다.

재미있는 건 당근의 겉 표면에는
'넌 잘할 수 있어' 라던지
'그동안 힘들었겠다' 등의 응원 메세
지가 적혀 있고
채찍의 표면에는 '그 따위밖에 못하냐?
'한심하다 한심해 그럴 줄 알았다'
등의 비난조의 메시지가 적혀 있다는
점이었다.

어떤 괴짜가 이런 작품을 만들었을까?
하고 작가의 이름을 살펴보려는데
옆 칸에서 고성이 들렸다.

말이다.
너무 말같이 생겼다.
덩치는 산만하고 머리는 풀어헤친 한
사람이 길길이 날뛰면서 고성을
지르고 있다.
그 사람은 뭐가 답답한지 고릴라처럼
가슴을 두들기면서 보이는 사람들에게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댔다.
또 억울하다는 듯 얼굴을 부여잡고
쓸어내리기도 하고 분을 못 이기겠는지
발을 구르기도 했다.

놀란 사람들은 어딘가에 전화를 걸기도
하고 그가 다가오자 미친 사람이라고
소리치면서 서둘러 옆 칸으로 이동했
다.

나도 평소 같으면 지레 겁을 먹고
지하철을 바꿔 탔을 텐데 웬일인지
이 손잡이를 잡고 있다 보니
갑자기 저 사람에게는 당근을 주는 게
좋을까 채찍을 가하는 게 좋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아마도 너무 말 같이 생겨서, 하는
행동이 짐승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런 사람에게 다가가서
당근을 내밀면서 '많이 힘드세요?'
라고 손을 내밀면 분명 주먹으로 한대
얻어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채찍으로 갈기면 또 다른 손으로 제압
당해 내가 되려 채찍으로 맞을 수
있겠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하지만 기왕이면 현실적으로 채찍이
더 그럴싸해 보였다.
미친놈에게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속담도
있으니.

좀처럼 답을 내지 못하는데
어느새 말처럼 생긴 그가 내 눈 앞까지
다가왔고
나는 재빨리 채찍 손잡이를 붙잡아
고정된 쇠기둥과 분리해 보려고
낑낑거렸다.
여차하면 이거라도 무기로 사용해야
할 판이다.

그는 사람 같지 않은 입김을 뿜어내며
나에게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잡은 채찍에
'멍청아 정신 차려'라는 글이 크게
적혀 있었다.

그 글을 보니 도저히 이 채찍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이 들긴 했지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나를 위협하는
그를 보고 나는 채찍을 두 손으로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퍽' 하는 소리가 나면서 손잡이가
걸린 쇠기둥과 모형 채찍의 연결고리
강제로 분리됐다.
나는 간신히 플라스틱 채찍 모형으로
그의 꽉 쥔 두 손을 감아 수갑을
채우듯 묶어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채찍에 두 손이 감긴 말 같은 사람은
갑자기 겁을 먹고 자리에 주저앉았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다 같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 전철의 용자처럼 보였나보
다. 나도 평소 지하철 내 미친 사람
들을 보며 불쾌했던 적이 많아서
사람들이 손뼉 치는 모습이 이해가 됐다
그런데 어쩐지 박수소리가 들리지 않았
다. 머릿속에 '멍청아 정신 차려'라는
메시지가 계속 떠돌며 되새김됐다.

채찍이라는 폭력적 수단을
글자로 표현하는 것이 이렇게 무섭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같은 사람에게 '멍청아 정신 차려'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나는 내가 아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사용한 적이 있었던가.

무릎에 온기가 느껴졌다.
말 같은 사람이 몸을 덜덜 떨면서 내
무릎을 부여잡고 있다.
침을 질질 흘리고 분명 미친 사람 같
지만 분명 사람이다.

다른 당근 모형을 살폈다.
그리고 이번에도 있는 힘껏 당겨
땅의 야채를 뽑듯 당근을 빼냈다.
기물 파손 죄로 신고되지 않을까.

허리를 숙이고 그의 귀에 입을 갖다
대었다.
그리고 내가 방금 뽑은 당근의 메세
지를 속삭였다.
'많이 힘들었죠? 나는 다 알 수 없지
만 지쳐 보이네요, 내 곁에서 잠시
쉬었다 가요'

말 같은 그의 눈에서 눈물이 똑똑
떨어졌다.

오분 글쓰기 끝

제목: 많이 힘들었을 말 같은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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