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일
‘나무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제발 이곳에 음료수를 버리지 마세요’
잘 뻗은 나무 아래 경고인지 부탁일지 모를 네모난 표지판이 있다.
남자는 서둘러 빨간 전화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동전을 몇 번이나 떨어뜨린 뒤에야
겨우 수화기를 향해 외친다.
‘미안 배터리가 떨어졌어’
‘거짓말’
‘진짜야’
‘정말 질렸어’
‘깜빡한거라니까 응 제발 이해해줘라 까먹은게 아니잖아 깜빡한거라니까’
‘어떻게 믿어’
‘오늘 너 만나면 주려고 선물도 샀었는데’
‘선물?’
‘응’
‘뭔데’
‘가방 있잖아’
‘그렇게 말하면 몰라’
‘알았어 잠깐만’
남자는 서둘러 들고있던 선물 포장을 뜯었다.
하지만 한 손으로 전화기를 들고 있어서인지 계속 헛손질을 한다.
‘것봐 역시 선물같은건 없으면서 자기 너무해’
‘아니야 지금 말할게 이거 굿치가방이네 굿치’
‘굿치? 그거 되게 비싼건데’
‘그래도 너가 갖고 싶어했잖아 봐봐 나 거짓말 한거 아니라니까’
‘...알았어 내일 만나자 난 자기가 또 기념일 까먹었다고 생각했어’
‘그럴 리가 있나 내가 저번에 다시는 안 까먹겠다고 약속했잖아’
‘알았어 사랑해’
‘응 나도 사랑해’
남자가 전화를 놓는다.
포장 봉지는 바닥에 던져버렸다.
안도의 숨을 내쉬던 남자는
곧 전화박스 옆에 놓인 벤치에 앉았다.
앞에는 커다란 경기장이 보인다.
수 년전 월드컵이 열렸던 종합 경기장.
그리고 경기장 앞엔
색이 빨간 운치있는 전화박스가 놓여있지만
주변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광경이 가득했다.
이곳저곳 쌓여있는 각종 쓰레기들.
사람들은 야구를 관람하기 위한 대기 시간동안
경기장 앞에 셀수없는 쓰레기를 버려놓았다.
음료수, 햄버거 봉지, 이름모를 잡지
심지어 먹다 만 음식도 있다.
바로 한 켠엔 방금 남자가 버린 자주색 포장지가 보인다.
남자는 혀를 찼다.
그리고 포장지를 집으려 손을 내밀다가
이곳은 어차피 또 더러워질 곳이라는 생각이 드니 힘이 풀렸다.
포장지를 구석진 곳에 발로 밀어넣는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방의 재질을 만져본다.
확실히 비싼 물건답게 가죽이 부드러운 것 같다.
다음날이 되자
식탁 건너편에서 뉴스가 방송되고 있다.
시간은 서둘러 회사에 나가봐야하는 시간이였고
그는 급히 양복을 갈아입으면서
소리나는 티비를 쳐다봤다.
그런데 거울을 보고 넥타이를 맬 때
어딘가 익숙한 단어가 들렸다.
‘200일...’
그는 밖으로 나가
아버지에게 뉴스 내용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식사를 하던 아버지는
한 종합 경기장에 쓰레기가 제멋대로 방치된지
200일이 넘었다는 내용이라고 일러준다.
뉴스에는 한 청소아주머니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치워도 치워도 계속 버리니까요
거기는 도저히 어쩔수가 없어요 저도 포기 했습니다‘
아버지가 저런 정신나간 사람을 보았냐고 버럭 화를낸다.
그러나 남자는 이미 구두를 우겨넣고 있었고
서둘러 휴대폰을 켜 전원을 확인했다.
여자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자기야 어제는 미안했어
오늘은 우리 만난지 201일이 됐네
앞으로 300일까지 사랑 변치말자‘
그는 닭살이 돋은듯 팔뚝을 힘차게 문지르고
핸드폰 일정에 ‘300일 절대 까먹지 말기 제발’ 이라고 적었다.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푼다.
뉴스에서는 기자의 마무리 멘트가 흘러나온다.
‘200일이 넘도록 쓰레기가 그대로 방치되다니
이것은 비단 환경 미화원의 잘못만은 아닌것 같습니다.
제각기 시민들도 우리 주위에 이런 일이 있지는 않은지
한 번씩만 더 주위깊게 살펴본다면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미연에 방지할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상’
아버지가 신경질을 내며 티비를 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