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았으니
이제,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같은
삶과 바람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리라.
아직,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벽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
가야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날이 밝았으니,
불안의 베개를 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
오...! 아침이여.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者)
혹은,충분히 사랑하기 위해
길 떠나는 자(者)는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영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입기를
두려워 하지 않으리.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을 두드려야 하리.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
길은 또 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 보리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
여행자를 위한 서시 / 류시화
새벽이 지나갔으므로
이제 여행을 떠나리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영원한 여행을 떠나리
모국어로 된 꿈도 깨고
늦잠에서도 깨어나리
머나 먼 여행에서
챙겨가야할 것은 단단한 의지와
불같은 열정이 아니라
길게 보고 나아갈 수 있는 시선과
언제라도 얼어붙은 심장을
녹여낼 수 있는 뜨거운 사랑이리라
모든 이들의 얼굴에서
하나의 기호를 읽어야 하리라
저녁이 되면 기호들이 하나의 상징으로
동굴의 그림자를 만들리라
열리지 않는 문 앞에서
자기도 모르는 주문을 외울 게 아니라
오히려 주인을 불러야 하리니
그 주인에게 물어야 하리
그 처음의 처음의 처음에는
이 곳이 누구의 것이었는지를
이제 삶의 거품들을 걷어내야 할 시간
영혼의 21그램에 한 근을 더한
그대의 꿈도
모습을 드러내리라
자 여행을 떠나자
아주 긴 호흡의 여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