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리쾨르_해석의 갈등 4
프로이트의 꿈은 일종의 텍스트요, 해석학은 텍스트 해석인 정신분석을 중요하게 본다. 말하자면 정신분석학이 상징철학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상징철학은 근대의 의식철학을 수정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주체를 세우는 것이다. 그래서 데카르트의 추상적 반성을 수정하기 위해서는 무의식을 말하는 프로이트를 거쳐야 한다_p19
의식은 과제다. 의식차원에서 아는 나는 내가 아니다. 무의식이 만들어낸 텍스트를 해석해야 한다. 해석의 결과를 의식하는 의식이 진짜 나이다. 적어도 그것이 나의 내용이다. 자신을 곧받로 의식하는 의식의 확실성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의식이 의식에 주목하지 말고 말에 주목해야 한다. 말로 말해진 것에 주목해야 한다. 분석 작업은 결국 내담자의 꿈이나 다른 말을 분석가가 해석하는 것이다. 텍스트해석이요, 상징의 해석이다.
의식은 항상 무엇에 대해서 있을 때만 의식이다.
정신분석이 해석학에 들어오는 것은, 그 것이 결국은 말을 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충동과 본능을 말한다. 감추어져 있는 충동을 의식하게 하는 것이 정신분석이다. 그러나 충동과 본능이라는 생물학적 에너지를 직접 들여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대변하는 표상을 본다. 리비도는 물리적이고 생물학적인 에너지이지만, 무의식이 그것을 심리 에너지로 바꿀 때는 이미 표상과 연결된다.
표상은 말 이전의 말이다. 언어의 성질을 띠고 있다. 밑에 있는 욕망은 억압되었을 때 말하고 싶어 한다. 현실 원칙에 막혀 있지만 다른 모양으로 욕망을 실현한다. 거기에 표상이나 정서와 같은 텍스트가 형성된다. 그러므로 무의식을 알아내는 정신분석은 곧바로 충동과 본능으로 가지 않고, 표상을 해석하면서 알아낸다. 결국 무의식은 해석 안에서 해석을 통해 의미를 지나게 되는 것이다_p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