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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an 22. 2021

현상학의 창시자_에드문트 후설

처음읽는 독일 현대철학

지금 내 머릿속에 있는 생각들 중
3가지 단어만 이야기해볼까요?







0. 들어가기


에드문트 후설 Edmund Husserl (1859-1983)은 1859년 4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현상학의 창시자인 그는 라이프치히대학, 베를린 대학, 빈대학 등에서 철학과 수학, 물리학과 천문학을 공부했다. 1982년에는 수학 분야의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수 개념'에 관한 논문으로 교수자격을 취득했다. 1900~1901 년에 '논리연구'를 출간하면서 현상학의 문을 열었다. 논리연구를 통해서 괴팅겐 대학에서 초빙을 받아서 1916년까지 재직했으며 그 사이에 1913년에 '이념들1'을 추간했다.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정교수로 초빙받아 1928년까지 약 12년간 가르쳤으며 1938년에 프라이부르크에서 타계했다.



후설은 보통 현상학의 아버지로 표현된다. 현상학이란 현상 자체에서 의식의 지향성을 찾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현상이 우리에게 주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후설 현상학의 기본 입장은 인간의 의식은 지향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에 따라서 현상은 구성되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인간이 자기의 내면에 내재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통해서 만들어 지는 것이며 '생활세계'는 이러한 앎이 형성되는 곳이다. 기존의 관념론이나 형이상학은 생활세계에서 앎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의 세계 혹은 이데아의 세계에서 '진리'가 존재하고 그것을 우리가 보는 현상계는 투사하거나 모방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보이는 것들은 앎의 파편이며, 일부분이고 우리에게는 아주 조그마한 단서만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상학은 그렇지 않았다. 인간의 지향성은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앎을 형성하고 그것에 인간은 의미를 부여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인간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을 포함하여, 이 세상의 구성을 다시 정의하는 것까지 가는 것이다. 존재론을 아예 새롭게 만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는 존재는 새로운 구성을 가질 수 있고 이를 통해서 현상을 새롭게 구성해 낼 수 있다. 우리가 어떤 것들을 '존재의 범주'로 밀어 넣는가에 따라서 현상은 다르게 구성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내가 지금 바라보는 꽃에 다양한 범주의 생삭과 의식이 참여할 수 있다. 그것들을 다 열거하고 분류하는 작업을 통해서 나는 내가 지향하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오늘은 '처음 읽는 현대 독일 철학'에서 '존재론'의 관점에서 에드먼트 후설의 이론들을 살펴볼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통해서 '존재론-인식론-윤리론'으로 뻗어나가는 진리의 나무를 그려보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처음에는 이남인 선생님이 책에 써 주신 내용을 살펴보고 그 후에는 이해한 만큼 고민과 깨달음을 써보려고 한다.


인간은 현상을 구성한다. 어떤 존재들을 끌어오는가는 전적으로 그 현상을 바라보고 의식하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https://brunch.co.kr/@minnation/954


https://brunch.co.kr/@minnation/702


contenst

1. 실증주의의 비판과 후설의 현상학의 이념

2. 의식에 대한 뇌과학적 연구

3. 현상학적 관점에서 본 의식에 대한 연구

4. 의식에 대한 현상학적 심리학적 연구

5. 의식에 대한 초월론적 현상학적 연구





1. 실증주의의 비판과 후설의 현상학의 이념


후설의 현상학은 실존주의, 해석학, 해체주의에 영향을 미쳤다. 후설의 영향으로 실존주의 이론가인 하이데거, 셸러, 샤르트르, 메를로 퐁티, 슈츠, 레비나스가 현상학적 영향을 받았다. 또한 가다머와 프랑스의 폴 리쾨르 역시 후설로 부터 영향을 받았다. 특히 '해석의 갈등'으로 유명한 폴 리쾨르는 프랑스 파리에 '후설문고'를 세울 정도로 후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한 프랑크푸르트의 비판학파인 아노르노와 호르크하이머, 마르쿠제, 하버마스도 후설의 영향을 받았으며 아도르노는 특히 후설의 현상학을 주제로 박사논문을 썼다.


후설의 현상학은 다양한 철학들과 연결되어 있다. 의미론, 언어 이론, 논리철학, 수리철학, 자연철학, 정신철학, 윤리학, 공간론, 시간론, 노에시스-노에마 평행론, 명증 이론, 이성론, 수동적 종합의 이론, 연상이론, 초월적 주관론, 지향성 이론, 운동감각론, 신체론, 생활세계론, 현상학적 환원론과 같은 많은 철학이론들이 후설과 연결되고 또 후설을 통해서 발전한다.



후설은 현상학을 정립하면서 데카르트에서부터 시작한다. 데카르트는 학문전체를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해서 설명한다. 라캉으로 치면 상상계에 속하는 형이상학은 나무의 뿌리에 속하고 자연학(물리학, 천문학, 지구과학, 생물학, 인간학)은 나무의 둥치, 나무의 가지들은 실용학문에 속한다. 실용학문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순수학문이고 순수학문을 만드는 것은 형이상학이라고 생각했다.


1. 실용학문 : 법학, 경역학, 행정학 / 공학, 의학, 농학
2. 순수학문 : 순수경험과학들 / 영역적 존재론 / 형식적 존재론
3. 형이상학 : 철학-초월론적 현상학


후설은 실용학문을 통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의 다양한 변화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었고, 실용학문은 순수학문이라는 기본적인 학문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순수학문은 응용이 되지 않은 기본적인 학문분과로서 순수경험과학들과 영역적 존재론, 형식전 존재론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순수경험과학들은 실용학문의 이론적 토대가 되는 학문이며, 영역적 존재론은 순수경험과학들이 기능하기 위한 영옂걱으로 본질적인 전제를 말한다. 또한 형식전 존재론은 모든 대상 영역들에 타다한 본질적 전제를 다루는 존재론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어떤 영역 위에서 경험을 통해서 일정한 형식으로 재현된다는 것이다.


1. 순수 경험과학들 : 물리학, 화학, 생물학 / 언어학, 문학, 사학, 정치학, 사회학, 심리학
2. 영역적 존재론 : 물리학적 시간론, 물리학적 공간론
3. 형식 존재론 : 형식논리학




후설의 실증주의 비판


후설현상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초월론적 현상학이라고 볼 수 있다. 데카르트가 형이상학이라고 불렀던 이 부분은 엄밀하게 말하면 철학에 속한다. 후설이 만들어 놓은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철학이며 나무비유와 같이 뿌리가 되는 철학이 썪으면 그 다음에 발현되는 모든 것들이 문게자 생긴다. 후설은 이러한 구분을 토해 현대사회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진단한다. 그것은 삶의 위기가 다가온 근본 이유는 바로 철학이 잘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철학은 다름아닌 20세기 이후 유행하게 된 실증주의positivism이라고 할 수 있다. 실중주의는 실증과학이 모든 학문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물리학적 실중주의와 같은 경우 물리학적인 방법이 모든 학문의 방법에 통용될 수 있따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리학의 관점에서 다른 모든 영역들을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대상을 물리적 인과관계 망 속에서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관찰, 실험, 측정, 수량화와 같은 물리학적인 방법으로 파악된다. 이렇게 되면 모든 학문은 일종의 응용물리학이 되는 것이다. 물리학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들, 다시 말하면 실증주의를 통한 자연과학적 방법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은 인정하지 않게 된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후설은 이러한 실증주의를 비판하면서 참다운 철학을 정립함으로써 한대 학문을 포함해서 인류의 삶 전체를 위기에서 극복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실증주의가 말하는 모든 방법론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후설은 실증주의가 아니라 실증과학은 인정했으며 자연과학적인 태도와 현상학적 심리학적 태도, 초월론적 현상학적 태도를 '의식'의 관점에서 규명하면서 올바른 의식의 발현과 구현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한다.



보르헤스의 전혀 이상한 동양의 범주


다음은 주관을 정리한 내용이다.

1) 외재적 주관 : 뇌과학적 연구
외재적 주관은 자아 외의 존재하는 지향성이 닿아서 인식된 자연, 사물, 공기, 건물, 우주와 같은 외부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우리의 주관에 의해서 그것들을 계속해서 인식된다.

2) 내재적 주관 : 현상학적 관점
내재적 주관은 외재적 주관이 인식될 때 내 안에서 느껴지는, 이해되는 것들이다. 몸이 아프다거나, 마음이 좋다던가, 머리가 아프던가, 시원하다라는 등의 여러가지 인식들이 내재적 주관을 만든다.

3) 수리적 주관 : 의식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
수리적 주관은 수학적 주관과 같다. 외재적 주관과 내재적 주관도 마찬가지로 몇개가 있는지, 어떤 배열로 구조화되어 있는지, 어느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려면 수리적 주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4) 타자적 주관 : 의식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
타자적 주관은 다른 사람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외재적 주관과 다른 부분은 다른 사람을 사물로 인식하지 않고 타자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다른 것들을 인식하는 것처럼 타자도 나처럼 다른 것들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같은 의식적인 능력이 있으나 그것도 역시 내 안에서는 '그와 그녀에 대한 주관'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2. 의식에 대한 뇌과학적 연구


먼저 자연과학적 태도에서 의식을 연구하는 것을 살펴보자. 의식을 물리적 인과관계의 망 속에서 실험, 관찰, 측정, 수리화의 방법으로 연구를 실행한다. 물히학을 기준으로 해서 고도의 관찰장비와 실험장비를 이용한다. 그러면 뇌과학은 모든 의식활동을 뉴런, 전기적 충격, 시냅스, 신경전달물질, 수상돌기 등의 개념으로 설명하게 된다. 뇌과학은 시념스 작동을 통해서 모든 의식활동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우울증과 도파민의 관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신경전달물질의 과다 혹은 과소에 따라서 인간의 기분과 감정이 달라진다는 것을 증명한다.


현상학은 뇌과학을 비롯하여 의식에 대한 다양한 자연과학적 연구가 가능하고, 그 의미 또한 충분히 인정한다. 현상학은 실증주의가 아니라 실증과학의 입장에서 현상에 직접적으로 맞닿는, 그러니까 경계에 있는 부분에서는 더욱 명징하게 작용과 반작용이 나타나고 그러한 현상 자체를 집중한다. 현상학의 연구주제로 뇌과학과 같이 자연과학적인 태도를 통해서 얻게 되는 감각의 재료들은 모두 현상학의 연구주제이다.



관찰자와 관찰자가 볼 수 있는 '범위'에 따라서 현상으로 지각되는 존재들이 달라진다

 



3. 현상학적 관점에서 본 의식에 대한 연구


그러나 현상학은 자연과학이 의식을 연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연과학을 통하지 않고서도 의식의 구조를 해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쁨, 슬픔, 배고픔, 충만함, 허전함 등의 많은 의식을 느끼며 인간은 살아가고 있다.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만 의식이 존재하지 않고 우리 내면에서 경험하는 의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외적지각은 눈, 코, 귀, 입, 피부를 통해서 외적감각기간의 정보를 받아들여서 생기는 지각이다. 그러나 내적지각이라고 부르는 마음의 능력 혹은 반성의 능력은 외적 지각의 정보가 없이도 자신의 내면에서 스스로 시작할 수 있는 지각이다.


후설은 외적지각과 다르게 인간 내면에서 시작해서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규정할 수 있는 의식의 능력에 관심을 가졌으며 내적인 주관성이 나타나는 과정에서 현상학적 심리학과 초월론적 현상학을 발전시킨다.



4. 의식에 대한 현상학적 심리학적 연구


현상학적 심리학은 후설이 자연적 태도라고 부르는 일상적인 삶의 태도에서 전개된다. 현상학적 심리학의 중요한 목표 중에 하나는 내적 지각의 능력을 통해서 다양한 유형의 의식을 해명하는 데 있다. 외적지각과 내적지각은 서로 지향하는 대상이 다르다. 내적 지각의 경우에는 의식이 발현되어서 무엇인가를 반성하고 고민하는 가운데 참과 거짓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하는가 아닌가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러나 외적지각은 관찰과 검증을 통해서 실제로 존재하는지,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구분해 볼 수 있다.


수리적 주관

수리적 주관의 경우에도 수학에 관련된 의식은 삼각형을 보면 세 각의 합을 떠올리고 2+2는 4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외재적인 어떤 감각이 없어도 내면에서 충분히 의식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 단계 더 나아가보면 수리적 주관은 내적지각과도 상관없이 존재한다. 그래서 현상학에서는 수리적 직관을 혹은 수리적 주관을 다른 방식의 의식으로 규정한다.


타인에 대한 주관

또한 다른 사람에 대해서 생각할 때는 또 다른 의식의 시작된다. 타인의 얼굴표정, 신체동작, 말을 토대로 타인의 의식상태를 해석한다. 이런 점에서 타인에 대한 주관은 기존의 외적지각, 수리적지각과 다르게 내면에서 작동하는 다른 형태의 의식이다.


의식의 지향성

모든 의식은 공통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의식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향하고 있다는 지향성이다. 우리 의식은 대상을 의식하면서 그것을 향해 있는데 이처럼 대상을 의식하면서 그것을 향하고 잇는 의식작용이 지향성이다. 외적 지각은 내 앞에 있는 책상을 향하고 있는 측면에서 지향성이고, 내적지각은 내면의 마음과 지나간 역사와 기억을 지향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지향성이다. 또한 타자를 향하는 의식은 반드시 누군가를 향하고 있기는 하다.



5. 의식에 대한 초월론적 현상학적 연구



이제 마지막으로 '초월론적 구성', '초월론적 현상학', '초월론적 주관'에 대해서 알아볼 차례이다. 앞에서 살펴본 4가지의 주관 혹은 지각은 모두 통합적으로 인간 안에서 작동한다. 일종의 메타인지가 작동하게 되면 다양한 주관과 지각작용을 통해서 받아들인 생각의 결과들이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초월론적 현상학은 개별적 대상의 구성 뿐 아니라, 세계의 구성도 해명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면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에 대해서 일종의 지도를 그리고 배치를 하면서 연결관계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것을 후설은 세계의식이라고 불렀다.


세계의식이란 후설 후기 철학의 중요한 주제 중에 하나였으며 하나의 주체가 삶을 살아가면서 암묵적으로 세계에 가지고 있는 의식을 말한다. 주체는 삶을 살아가면서 포근한 세계, 축복받은 세계, 지루한 세계 등으로 암묵적으로 의식하는데, 세계에 대한 이러한 암묵적 의식이 세계의식이다. 세계를 향한 암묵적인 의식인 세계의식은 개별적 대상을 향한 의식과 구벼로딘다. 그러나 세계의식은 언제나 개별적 대상에 대한 의식과 동시에 존재하면서 개별적 대상에 대한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한다.


엑스맨의 찰스 자비에르 박사는 세네브로를 통해서 모든 엑스맨들과 연결된다. 초월론적 현상학에서 보자면 찰스는 세계의식이다.


초월론적 현상학에서 세계의식은 있는 것들의 총체가 아니라 주체가 경험하는 의미로서의 총체인 세계를 말한다. 주체가 경험하는 것을 넘어서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서 초월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경험하는 것들 중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부여한 것들이 무게감을 가지고 의식에 내리 앉아서 일정한 구조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초월론적 현상학의 주요한 연구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의미는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 다른 세계의식을 가질 수 밖에 없으며 그것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계속해서 변화하기 때문에 초월론적 현상학을 통해서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탐색하는 일은 매번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지금 본 것들을 이야기하고 그것들을 우리 의식에서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초월론적 주관에 의한 것이다. 초월론적 주관으로 모여진 다양한 의식들이 상황과 순서, 의미와 기억에 따라서 다른 방식으로 해석을 하게 되고 그러면서 인간의 행동은 현상 안에서 투사된다. 현상학은 어쩌면 그렇게 투사된 현상 자체의 다양한 존재들의 초월론적 주관을 찾아가는 학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질문과 토론


1. 현재 자신은 세계에 대해서 어떤 느낌을 가지고 계신가요? (따뜻한, 차가운, 더러운, 냉혹한)


2. 1번처럼 생각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디에 의미가 있을까요?)


3. 다른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스스로 '아 이 생각은 내꺼다'라고 생각하시는 생각이 있을까요?




존재론-인식론-윤리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시작되는 '존재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은 내가 셀 수 있는 개체들을 앞마당의 쫘~악 널어 놓고 개체들 간의 우열을 점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분류학의 아버지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계층을 만들고 구분했다면, 플라톤은 존재를 어렴풋이 알 수 있는 신들과 영들에 대한 부분을 '원형'으로 삼아서 '이데아'로 넘겼다.


이렇게 존재들의 계층화가 일어나면 이제 존재들이 왜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증명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존재론은 존재의 개체를 세는 작업이고, 인식론은 그 존재들을 내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정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존재론에서 '인간, 자연, 동물'이라는 개체들을 구성했다면, '인간은 고등동물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라는 인식론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서술문, 명제는 포함관계를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존재론과 인식론을 거치면서 존재는 자신이 있을 자리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규정받게 된다.


이러한 존래론-인식론의 작업이 끝나면 비로소 나오게 되는 것이 윤리론이다. (혹은 가치론으로도 볼 수 있지만, 여기서는 윤리론으로 본다) 윤리론은 존재가 인식된 후에 '시간'개념에 따라서 그럼 그 존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정해져야 한다. 이것은 실제로 행동에 옮기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으로써 '나는 고등 동물이면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연에 복종하고 동물들을 다스려야 한다'라는 윤리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서양철학, 특히 독일의 관렴론은 인식론 기반의 '이성'중심으로 사고가 매우 활발했기 때문에 '앎'에 있어서 사물을 분석하고 구조화하고 정의내리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자연스럽게 헤겔, 칸트에서도 보여지는 앎의 위계질서는 모르는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정당성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여기에 반기를 들고 레비나스는 서양철학 전체를 뒤집는 거대한 작업을 시작한다.


현상학에 관하여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을 정돈한 뒤에 눈을 뜬다. 그럼 밀려오는 사물의 다양한 색감과 온도와 형태가 우리 눈을 통해서 대뇌로 전달되고 전두엽에 맺혔다가 시냅스를 통해서 기존의 구체적인 폴더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이렇게 빨아들인 정보를 분류하다가 보면 세상의 움직임이나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이런 작업을 1달정도 해보면 조금씩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그렇데 '왜 창문은 저렇게 생겼지? 왜 탁자는 네모난가? 왜 탁자 다리는 4개이고? 나는 왜 이게 문제라고 느끼는가? 나는 아침햇살을 맞으면 기분이 좋은데 왜 그렇게 되는가? 친구들의 웃음소리는 때론 즐겁고 때론 듣기 싫은가? 텔레비전은 왜 멈추지 않고 계속 방송이 나오는가?'와 같은 다양한 물음들이 등장한다. 대부분 이런 고민을 하다가 '아 그냥 관두자. 이렇게 고민한다고 머 답이 나오나?' 이렇게 되기가 일쑤이다. 그러나 현상학의 시작점에 선 에드문트 후설은 이렇게 정리된 정보들을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후설은 몇가지의 중요한 단서를 찾아내는데 그것은 '지향성', '초월론적 주관'이다. 먼저 지향성은 우리가 눈을 뜬 순간부터 우리의 '시선'은 무엇인가를 지향하고 있으며 그 지향을 멈출수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에 계속 우리의 시선은 무엇인가를 향하고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인식하고 있다. 다음으로 우리의 '의식'은 지향성을 갖는다. 아무것도 안하고 멍때리기~를 실천할 때도 사실 의식은 멍때리기를 위해서 다른 의식들을 차단하고 있는 중이다. 무엇인가를 볼 수 밖에 없고,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후설은 이러한 지향성이 닿았다가 분류되는 것들을 '주관'이라고 불렀고 아래의 4개의 주관을 찾아냈다.


1) 외재적 주관  
외재적 주관은 자아 외의 존재하는 지향성이 닿아서 인식된 자연, 사물, 공기, 건물, 우주와 같은 외부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우리의 주관에 의해서 그것들을 계속해서 인식된다.

2) 내재적 주관
내재적 주관은 외재적 주관이 인식될 때 내 안에서 느껴지는, 이해되는 것들이다. 몸이 아프다거나, 마음이 좋다던가, 머리가 아프던가, 시원하다라는 등의 여러가지 인식들이 내재적 주관을 만든다.

3) 수리적 주관
수리적 주관은 수학적 주관과 같다. 외재적 주관과 내재적 주관도 마찬가지로 몇개가 있는지, 어떤 배열로 구조화되어 있는지, 어느정도라고 말할 수 있을려면 수리적 주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4) 타자적 주관
타자적 주관은 다른 사람을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외재적 주관과 다른 부분은 다른 사람을 사물로 인식하지 않고 타자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다른 것들을 인식하는 것처럼 타자도 나처럼 다른 것들을 인식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같은 의식적인 능력이 있으나 그것도 역시 내 안에서는 '그와 그녀에 대한 주관'으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이 현상 속에서 나는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서 들어오는 주관의 양이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양만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질도 달라지고 목적도 달라지고 관계도 달라진다. 그런데 후설은 이러한 4가지의 주관을 모두 총괄하는 주관이 있다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초월적 주관'이다. 모든 주관들을 통솔하는 메타인지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초월적 주관은 매 순간마다 현상에서 지향성을 통해서 들어오는 정보를 조합하고 분류하여 '나를 만들어가고 세상을 만들어 간다' 따라서 초월적 주관은 계속해서 합계를 내고 있는 중일 것이다.


이러한 초월적 주관이 어느정도 축적이 되면 결국은 그 동시대에 사는 사람들, 그 공간에 그 시간에 있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일정한 의식이 생기는데 후설은 이것을 '세계의식'이라고 불렀다. 흔히 말하는 '세계관'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세계관은 오히려 초월적 의식보다 앞서기 때문에 아이들은 자라면서 자신도 모르게 세계의식을 습득하고 자신의 초월적 주관을 그 세계의식에 맞출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데, 바로 여기서 '윤리'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떡밥이 던저졌다. 초월론적 주관을 꺼낸 순간 헤겔의 절대정신이 생각나게 되고, 타자적 주관에서는 레비나스의 타자의 윤리학이 떠오를 것이다. 수리적 주관에서는 계몽주의에서 현실을 분할하고 숫자를 매김으로서 지배할 수 있는 기계와 사회구조를 만들었다는 것과 내재적 주관은 샤르트르와 메를로퐁티의 실존주의의 기본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떡밥들 가운데 레비나스는 과연 어떻게 이러한 사고를 뒤집을려고 했을까? 사뭇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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