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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May 23. 2022

정치가 떠난자리1_민주주의의 상실

시대전환 코어100_현실정치 시즌1 두번째 책

정당에서는 진성당원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나 한국정당에서 진성당원은 대부분 엄청난 이권을 가지고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고 사실 '가치'가 아니라 '권력'에 의해서 움직이는게 보통이다.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정치'를 어떻게 정의내려야할까?라는 고민을 한다. 오히려 새로운 정당이 나오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민이 나와야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에서 새로운 시민들이 나오기 위해서 정당의 역할은 무엇인가?라는 고민까지 해보게 된다.


처음 정치학을 공부하면서 데이비드 이스턴의 '가치의 권위적인 배분'이라는 말을 들었다. 이게 무슨말인가? 이런 고민만 하다가, 나중이 되어서야 정치는 결국 '가치'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는다. 가치에 따라서 사람들이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한다. 가치를 실현하는 제도가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서 그 사회는 방향성이 있는가 없는가로 바뀌기도 한다. 정치가 떠난 자리에는 언제나 권력욕 가능한 보스들이 찾아온다. 지금 우리의 현실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정당에서 새로운 책으로 스터디를 시작했다.



시민들과 구체적인 공론장을 만들고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코어100'프로젝트다. 물론 안다. 아무것도 안바뀐다는 사람들의 심정과 그 역사를. 그런데 아무도 꿈꾸지 않는다면 그렇다면 누가 세상을 바꿀 것인가? 세상은 점점 더 부조리가 심해지고, 문제는 더 큰 문제를 양산할 뿐 해결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정치에 희망을 잃은지 오래며, 정치가 떠난 자리에 구경꾼들과 야경꾼들만 득실득실하다. 일단은 꿈꿀 수 있어야만 새로운 사람들이 모이고 새로운 변화가 가능해진다. 시즌1에서 '권력의 원리'라는 책을 통해서 권력을 얻는 방법을 알아 보았다면, 시즌 1 두번째 책은 존경하는 김만권 교수님의 정치가 떠난자리로 시작한다.


정치를 떠나게 된 이유 5가지 에세이와 함께 정치로 다시 시민들을 불러 모을 4가지의 에세이들이 들어 있다. 김만권 교수님은 2013년부터 참여연대 느티나무아카데이서 만났다. 그 당시 뉴스쿨에서 한나아렌트의 제자들에게 학위를 마치고 돌아오셔서 강의를 하셨다. 나는 2007년부터 '김만권의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이라는 책으로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연예인을 보는 느낌으로 강의를 들었다. 거의 3년을 쫓아 다니면서 고대정치철학에서부터 현대 정치철학까지, 특히 '한나아렌트' 해석에 있어서는 한국에서 그 누구도 이정도의 깊이로 강의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소년 같으신 김만권 교수님


한나아렌트의 혁명론, 공화국의 위기, 과거와 미래 사이, 인간의 조건을 섭력해 가면서 정치철학의 기틀을 잡게 되었다. 교수님은 그 이후에 계속해서 '참여민주주의'를 중심으로 책을 써 가시고 어디든지 사람들이 부르는 곳에서 강의를 하셨다. 특히 제임스 밀러 교수님으로 부터 배운 이론들과 함께 한나아렌트의 이론을 접목해서 '헌법짓기'방식으로 정치를 재구성해 나가는 방법을 제안한다. 샤츠슈나이더를 비롯한 현실주의자들이 제시하는 방법은 방법만 다르지 모두 '엘리트주의'이다. 엘리트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더 좋은 엘리트'를 뽑는 방식은 과거의 방식이다. 앞으로도 그런 방식은 미래를 열어내지 못한다. 만권교수님께 배운대로 이제는 실천을 해볼려고 시민들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함께 세상을 만들려는 시대전환에 입당했다.


부디 이 시간이 기억되면 좋겠다. 정당의 존재이유 중에 하나는 시민의 정치교육에 있다. 시민들이 정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스스로 해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주권자가 되도록 하는 것. 그래서 구경꾼에 머무르지 않고 스스로 제도를 혁신해나갈 수 있도록 퍼실리테이터가 되는 정당이 필요하다. 생활진보라는 이름이 실제로 실용민주주의가 되도록 생활속에서 불려져야 한다. 양당제에 막혀서 숨쉬기가 어렵다. 상상력을 거세 당한 사람들은 소수정당이 할 수 있는게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래서 정당보다 오히려 더 근원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시민'들 속으로 들어간다. 시민들이 깨어나서 동굴에서 나와서 언덕위에 파워엘리트들을 끌어내리고 그들의 직접 정치를 할 수 있도록! 궁극적으로는 참여민주주의로 가야한다.


시즌별로 다양한 책들과 강의가 연결되어 있다. 누구라도 관심이 있고 참여의사가 있다면 참가비도 없고 다양한 강의를 한꺼번에 들을 수 있는 플랫폼도 열려 있다. 앞으로 더 좋은 콘텐츠를 준비할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누군가 포기할 때 누군가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일단은 콘텐츠부터 만들자.


https://docs.google.com/forms/d/1IE6MdEAzC5CE3kPjDaU89SSW-MzPESRBGYOq9XLPHvM/viewform?edit_requested=true


https://www.youtube.com/watch?v=oLwep2883PA





에필로그_잃어버린 정치를 찾아서

 

· 정치란 무엇인가

- 근대 이전, 가족과 국가 중심의 정치체제

- 근대 이후, ‘시장’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개인’과 ‘서로 다름’의 개념

- 시장과 신자유주의, 이기는 자들이 독식하는 구조

- 시장과 개인, 상대를 제거해야 할 ‘적대적 관계’로 환원되는 ‘서로 다름’

® 공적 영역의 사적 경향, 공동체보다 개인의 이익이 우선시 되는 사회

® 정치의 역할, ‘함께 사는 세계를 짓는 부단한 노력’

 

정치가 떠난 자리엔 일상의 삶에서 그 빈 자리를 향해 스스로 다가서는 용기를 지니고 그 빈 자리를 향해 다가오는 다른 시민들과 즐거운 연대를 통해 그 텅 빈 공간을 메울 수 있는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독립적인 시민들이 필요하다.- 본문中 -


· 정치의 상실과 시민(핵심키워드)

- 셸든 윌린의 도망자 민주주의: 참여가 사라진 대의민주주의의 현실, 구경꾼 유권자

- 자크 랑시에르의 자유로운 시민게릴라: 무지와 수동성에서 벗어나 앎과 능동성을 추구하는 시민

- 정치가 떠난 자리, ‘참여’가 상실된 자리를 채우는 존재는 누구인가

- 자기가 바라본 것들을 스스로 말하고 해석하고 나아가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성숙한 시민’

® 자유로운 시민게릴라들이 만드는 참여민주주의 프로젝트가 이 책의 핵심!

 

 

정치를 상실한 공적 현실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의 방식을 통해 그것을 다시 찾으려는 소극적 노력보다는 함께 정치를 새롭게 짓는 또 다른 적극적인 정치적 상상력이다.
- 본문中 -

 

국민은 절반의 주권을 행사하는 존재이다, 사츠 슈나이더에 따르면.


첫번째 에세이_민주주의의 상실

 

· 민주주의의 변화, 대의민주주의에서 참여민주주의로

-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 ‘대표’없이 인민이 통치하는 정체

- 근대국가의 등장 이후, 인민의 동의를 통해 이뤄지는 통치방식 등장

- 현대, ‘참여’의 민주주의에서 ‘절차’와 ‘제도’의 민주주의로 이행

® 장 자크 루소 <사회계약론>, “인민은 투표하는 순간에만 자유롭다”

® 셸든 윌린의 도망자 민주주의: ‘참여’가 ‘대의’속으로 도망가버렸다.

 

·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모델: 구경꾼들의 민주주의

- 대항민주세력이 제시하는 민주주의의 두 가지 모델                    


- 시민, ‘구경꾼 유권자’ 또는 사안에 응답만 하는 ‘절반의 주권을 가진 인민’

- 정당주의자들의 비판, 광장민주주의/집회민주주의의 한계 지적

- 정당주의의 역설, 정당주의는 강력한 시민참여를 전제로 한다

® 과연 우리 사회의 정당은 정치갈등을 조직화할 능력이 있는가?

 

· 자크 랑시에르 ‘해방된 관객’ 의 민주주의

- 관객의 본질, 무지와 수동성, 보여주는 것만 본다

- 랑시에르의 가능성, 수동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관객

- 무지한 구경꾼에서, 적극적인 해석과 비판을 하는 개별 주체들로 등장

- 개인들의 수많은 다양한 해석 연결 짓기의 가능성

® 해방된 공동체는 이야기하는 자들과 해석하는 자들의 공동체다.

® 더이상 정치는 엘리트들이 주도하는 드라마가 아니다!


 

· 해방된 관객 속 지식인의 역할

- 지식인과 평범한 시민 사이에 지식의 불평등 벗어던지기

-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표현하고, 확인하게 하는 것

® 청중들의 가능성을 이해할 때 민주주의의 확장도, 사회적 변화도 가능하다

® 대중의 가능성을 믿는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

 

https://brunch.co.kr/@minnation/2999


https://brunch.co.kr/@minnation/2556


https://brunch.co.kr/@minnation/2522




오늘은 이렇게 강의를 진행하려고 한다. 정당주의자들은 대부분 현실주의자들이면서 엘리트주의자들이다. 정당자체를 강화하려는 목적은 결국은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그 근본을 바꾸어야 한다. 이상주의적인 통치를 말하는 사람들은 플라톤주의자라고 불려지며 결국 엘리트주의로 귀결되는 것들을 본다. 그럼 결국 세상은 평등이 아니라 선택과 차별로 만들어진 거대한 탑이 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이것은 민주주의를 추구하면서 그 자체로 절대적이지 않고 앞에 무엇인가 붙어야만 설명이 되는 꼴이 되어 버렸다. 특히 미국식 민주주의는 하버드학파의 영향으로 절차적 민주주의가 되어 버렸다. 다시 돌이켜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제 시작이니 나머지 8개의 에세이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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