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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Mar 21. 2023

화이트헤드_사건들의 추상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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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습곽적인 사건 분석은 space, time, material이다.

유물론 혹은 물리주의적 분석의 유용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언어와 습관은 '사건'을 인식할 수 없다.

what I am denying is that anyone of these factors is posited for u in sense-awareness in concrete independence

사건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대상과 사건을 일치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 우리는 대상을 인식한다고 말한다.

시간과 공간은 사회적이다. 다시 말하면, 시간과 공간은 분리되어있는 별도의 개념인데, 하나의 사건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만나게 된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은 사건을 통해서 하나의 실재가 된다.

상대성 이론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가지고 온다. 시간과 공간을 인식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추상이다.

그러나 신기하게 자연은 시간과 공간이 분리되지 않는다.




1. 추상과 시간의 연결


사건들의 추상집합   

Method of Extensive Abstraction

An abstractive set of events is "any set of event which possesees the two properties, Of any two members of the set one contains the other as a part and there isn no event whih is a common part of every member of the set.

이 사건들의 추상집합은 최소치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무한히 내려갈 수 있다.

한정을 통해서 ideal simplicity of natural relations로 표현한다.

하나로 셈하기(바디우의 표현에 의하면)는 결국 추상이다. 추상인데 그 추상은 한정된 추상이다. 사실은 무한한 자연을 하나로 잡아내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추상집합 중에서 어느 조건 속에서 하나를 포착해 내는 것이다.

그 추상집합의 전체와 부분 관계에 연관하여 드러나는 특성들을 extrinsic character라고 한다.

추상집합이 드러내는 limiting character of natural relations을 그 집합의 intrinsic character라 부른다.

사람은 추상집합의 산물이다. 그 복잡성을 한꺼번에 기술할 수는 없다. 따라서 형이상학을 가지고 법칙을 정해서 한정하고 집합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다.

Low of convergence 란 사건의 복잡성들을 ideal simplicity로 수렴해 내는 과정을 가리킨다. 이러한 수렴의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대상을 인식할 수 없다.

Ideal simplicity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두개의 집합이 예를 들어 하나로 묶일 때, 동일성을 가지고 묶이게 된다.

Belonging = covering 이라고 할 수 있다.



추상화   

추상화는 자연에 근거는 하고 있지만, 분리되어 있다.

한계와 한정을 통해서 추상의 과정을 겪고 그 추상의 과정에서 추상집합의 요소들이 드러난다.

추상화의 과정은 추상의 과정과 동일하다.

이러한 추상의 방법이 지금의 문화를 만들어왔다.

인간은 도구적 인간이다 homo faber라고 할 때, 우리는 도구라는 한계를 통해서 추상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1차 추상을 통해서 도구를 사용하는 주체는 인간이라는 2차 추상이 발생하고, 또는 도구를 사용하는 방식을 인공이라고 정의내리는 2차 추상의 다른 방법론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처럼 여러가지 방법론이 생겨난다.


instant과 moment   

instant는 그 찰나, 바로 정지된 한계의 class이다.

moment는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과 후의 문제이다. 사건을 인식히기 위한 thic한 방법이라고 할수 있다.

이상의 개념을 '공간'에 적용하자면, abstracive element는 '공간 상의 점'point of space에 상응한다.


뉴턴의 시간과 공간 이해   

추상의 능력을 통해서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을 상정하고 그 시공간안에서 수학과 과학을 발전시킨다.

아인슈타인은 이러한 절대시간과 절대 공간의 개념을 무너뜨리고 관계의 영역에서, 상대성을 강조하기 시작했을 때이다.

아인슈타인은 빛은 파동이 아니라 입자point라고 하는 것을 발견해 낸다. event particle이라는 개념은 아인슈타인 당시의 점을 이해하던 방식을 제시한다.



Point   

Point는 position, 즉 it is, where it is의 포착을 의미하는데, 이는 그 점이라는 사건을 구성하는 주변 정황들과 사거늘, 즉 그 점의 외연적 특성을 무시ignoring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간적인 공간이라는 것은 유동적인 관계 속에서 추상집합의 특성이다.


화이트헤드의 철학   

헤드의 철학은 보통은 관계의 철학이라고 부른다.

또한 과정의 철학이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제논의 무한급수의 개념이 인간관계 속으로 가지고 왔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시간과 공간은 집합적이지 복합적이지는 않다. 일체형이 아니라 분리형인데 우리의 인식 속에서 집합되어서 표상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이라는 것은 이러한 집합하는 능력을 배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   

시간이 공간을 파생시키는가?

공간이 시간을 파생시키는가?

시간이 없으면 공간이라는 것이 생길 수가 없다.

화이트헤드가 보기에는 기존의 1차원의 시간이 10차원의 공간에 걸쳐이다고 보기 보다는 alternative time-systems과 only one definite spatial order in each instantaneou space라고 했다.

화이트헤드는 시간을 다시 정의함으로써 공간의 개념을 새롭게 만들어 내려고 했다.


분할   

solid / area / route are absstractive elements.

여기서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점, 선, 면'의 방식으로 공간을 이해하는 것은 실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solid is "a three-dimensional locus of event-particles which is the common portion of the boundary of two adjoined events

solid는 vagrant와 volume으로 나뉜다.

vagrant는 하나의 순간에 놓여있지 않는 덩어리이다. volume이라는 것은 하나의 순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점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대성이론   

상대성 이론에서 정지는 가능하지 않다.

One cannot have a theory of rest without in some sense admittiong a theory of absoulte position

상식적 이해의 잘못은 바로 "절대위치에 대한 대안적 정의들"이 있을 수 있을을 인식하지 못하는 실패로 부터 이해하였다.

절대 위치에 대한 대안적 정의들의 가능성은 "대안적 시간 좌표계"의 인정으로 부터 도래한다고 보았다.

대안적인 시간 좌표계라는 것은 각 공간마다 시간을 인식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대안적인 시간좌표계를 아인슈타인은 인정하지 않았다.



2. 현존재와 사건의 연결


원초적인 존재와 현존하는 사태를 지각하기   

Duration & Locus Standi

우리의 시점은 perspective는 항상 mutual하다.

몸의 정체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만큼 명확하지 않으며, 또한 지각사건은 몸으로도 더구나 정신으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지속과 자취는 다른 개념이다.

자취는 여기라는 시간과 공간을 재현해 내는 객관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자취locus standi라는 개념은 화이트헤드가 만들어낸 개념이다. 자취는 육화된 정신이 몸으로 드러내는 것을 나타낸다.

다시 말하면 몸이 기억하고 있는 형상과 자취가 바로 존재라는 것이다.

몸이라는 것은 경계이다. 몸의 안과 밖의 접점에서 합쳐지는 것이다. 분리되는 것으로써의 몸이 아니라 결합하는 부분으로써의 몸이라는 것이다.


자연과 정신   

정신은 언제나 자연과 연동associate되어 작동하지만, 이를 기술할 때면 언제나 누락되는 요소들이 있고, 이 누락된 요소들이 우리로 하여금 언제나 정신과 자연의 간계를 저인과 요소들 간의 이항적 관계들로 착오하게 만든다.


이미지와 기억

우리의 기억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단기기억과 장기기억으로 나누고, 그 사이에 공간과 시간을 주체 속에서 이미지로 만들어서 저장한다.

그 이미지 속에 다시 그 당시의 오감을 통해서 감정이 이입됨으로써 기억은 지속적인 기억이 된다. 다만, 그 기억을 다시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접근이 가능해진다고할 수 있다.

사건'은 시간과 공간의 교집합에서 나오는데, 그 사건은 사라진다. 잠시 빛났다가 사라지게 된다. 알랭바디우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것은 진리의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건은 사라지지만, 기억은 남는다.

추상을 현실에 풀어 놓을 때, 구상이 된다.

Quality의 문제는 Quentity의 문제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질'은 양'과 완전히 다르다. 질은 본질이라면 양은 양태이다.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시간과 공간은 결국 몸에서 만난다. 우리의 눈에서, 우리의 귀에서, 우리의 살깣에서 만난다.

몸'의 개념은 톰라이트가 가지고 있는 몸의 개념과 비슷하다. 우리의 몸은 경계가 아니라 결합의 시점이라고 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우리의 몸이고, 우리의 기도는 이러한 몸으로 부터 언어를 통해서 흘러나가는 경계를 결합시키는 화해와 화합의 사건이라는 것이다.

다른 시간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 다른 시간개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 아닐까?



congruence   

측정의 문제이다. 합동은 측정의 문제가 된다.

측정한 것들이 어떻게 연결되는가? 연결한다면 어떤 이유때문에 연결되는가?

현시된 것들이 현존재가 되어 가는 과정에서 '명확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어떤 차이 때문인가?


Poincare   

대부분 우리의 현실적 선택은 관습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

그러나 관습에 대한 선택을 바꾸는 것은 자연을 인식하는 우리의 인식이 바뀌어야만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화이트헤드는 러셀의 시점과 포인카레의 시점을 절충할 수 있는 하나의 포괄적인 체제를 만들고 싶어했다.

interconnected'라는 개념을 가지고 오면서 상호연결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co-dependent arising 연기라는 개념도 비슷한 개념이다. 시간과 공간은 상호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시간의 관계   

헤드는 시간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관계를 cogredience라고 했다.

the preservation of unbroken quality of standpoint within the duration

duration안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관점이 지속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관계의 중첩인, 여기의 중첩인 나를 인식하게 만든다.


there and here   

여기와 저기의 관계는 생물학적인 인지의 과정이라고 할 수 없다.

altertive time system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질문   

우리의 뇌가 좌와 우로, 논리와 시각으로 연결시킨다면, 사실 시간과 공간을 인식하는 우리의 뇌는 이미 자연적으로 사건을 인식하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은 지금의 방식으로는 안된다.

지금의 교육의 방식은 시간과 공간을 분리하고 그 가운데 주체를 탄생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도는 계몽주의부터 시작된 기나긴 여정이다.



https://brunch.co.kr/@minnation/3113


https://brunch.co.kr/@minnation/3114


https://brunch.co.kr/@minnation/1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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