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3장_메시지 성경
형제 자매를 사랑하면 그것으로 우리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은 사람과 같습니다
형제나 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살인하는 자입니다
영원한 생명과 살인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희생하신 것을 보고
우리는 사랑을 이해하고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는 동료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야 합니다
곤경에 처한 형제나 자매를 보고서
도울 방법이 있는 여러분이 그들을 냉대하고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찌되겠습니까?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랑을 사라지게 한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_메시지 성경
유대인 철학자이자 타자의 철학자인
엠마누엘 레비나스는 인간의 신비를 이야기하며
구약성경에서 모세가 하나님을 만나고
얼굴이 해처럼 밝아진 사건을 가지고 온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두 돌판에 십계명을 받고
내려오는 길에 모세의 얼굴은 눈부시도록 빛났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세의 얼굴을 두려워하면서
정의내릴 수 없고 존엄한 '신비의 얼굴'을 기억했다
레비나스는 이러한 '얼굴'의 개념을 모티브로
인간의 신비는 얼굴에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얼굴은 언제나 움직이고 있으며
아무리 빠른 사진도 미세한 움직임까지 포착할 수 없다
누군가 살인을 하려고 하면
항상 얼굴의 신비를 뿌리쳐아먄 가능하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는 순간에
비밀은 시작되며 무한의 신비가 샘솟는다
사랑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상대방을 정의하지 않으면서도 매번 새로운 것
레비나스는 인간이 서로 사랑할 때 하는
애무와 스킨십은 항상 망각을 전제로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깐 상대방의 몸에 대한 접촉은 언제나
기억에서 미끄러져가서 기억할 수 없어서
매번 다시 기억하고자 접촉을 시도하다는 것이다
결국 몸의 신비도 얼굴과 같이 매번 가능한 것이다
사랑을 정신적으로만 치환했던 헬레니즘 문화는
다시 정신이 육체로 내려오는데는 관여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방식의 사랑이든지
정신적으로 정리한 사랑을 실현하려고 했다
그런데 헤브라이 전통에는 믿음이라는 것이
'야다'와 같이 경험해야 아는, 접촉해야 아는
몸과 정신 그리고 영혼이 다르게 놀지 않는
온전함에 이르는 것이었다
정신에만 머무르는 것도
육체에만 머무르는 것도
감정에만 머무르는 것도
의지에만 머무르는 것도
한계적이고 한시적이라는 것이다
한쪽에 치우치면 반드시 다른 부분은
자유가 아니라 무책임한 방종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속할 수가 없게 된다
영혼의 사랑이 정신의 사랑 안에서 꽃피고
육체의 사랑은 상대에 대한 신비를 간직하면서
매번 자가다 일어나서 사랑하는 이를 보면서
'내가 어떻게 이 사람과 결혼했지?'
라면서 신기해하는 어떤 사람과 같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반대로
어느 한 부분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영혼이 막혀있거나 정신적으로 가려져 있거나
육체의 신비를 간과하는 방식으로
그래서 그 한 쪽은 이미 죽어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 대해서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이라면
동시에 그 식어버린, 죽어버린 마음은
그대로 간직되지 않고 우리의 육체로 그대로 드러나고
얼굴의 미소가 아니라 일그러짐으로 번진다
당연히 영혼에는 치명타를 입히게 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언제나 그래서
자신에게 제일 해로운 일이 되며
자연스럽게 영혼과 마음 그리고
얼굴의 표정까지 자국으로 남아 버린다
한가지 밖에 없다
전이로만 가능한 사랑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랑을 먼저 받고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리스도가 하신 것처럼 우리도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와주고
미워하기로 마음먹은 결심을 하나하나 풀어서
용서하기로 결단하는 것.
한 부분이 살아나면 다른 부분도 곧 살아난다
그래서 모든 부분이 살아나고 있고 살아난 사람을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의 온전함은 곧 아름다움의 실현이다
먼저 받은 사랑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기로
마음을 돌이키는 그 얼굴에 맺힌 하나님의 영혼.
오늘도 다시 사랑의 언덕으로
부르시는 음성을 따라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