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넬킨의 카유가 호수 연구와 그외의 연구들을 중심으로
오늘은 오랜만에 STS스터디를 하는 날이다. 나도 발제를 하고 싶었지만, 오전에 리더십강의가 있어서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동료 연구자들이 발제한 것을 가지고 정리해보려고 한다. 오늘의 아티클은 Elgar Encyclopedia of Science and Technology를 바탕으로 STS에 대한 내용들을 알아보려고 한다. 특히 '대중 참여(public engagement and participation)에 대한 재고찰'이라는 주제로 Mattehw Kearns and Jason Chilvers가 쓴 글들을 번역하고 나름대로 의미를 붙여보려고 한다. 매달 한번씩 모여서 STS관련 내용들을 발제하고 정리하고 있다.
논문의 주제
대중의 이해 : 초기에 STS는 시작이다보니깐 기존의 학문체계에 대해서 비판적 관찰자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근대 과학기술이 사회를 배제하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이로 인해서 기술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한 대중에 대해서 참여와 지식의 결핍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다.
대중의 참여 : 다음으로 이해를 넘어서 참여다. STS는 지지자, 촉진자, 평가자, 혁신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위해 대중을 참여시키려고 한다. 특히, 과학정책에 대중참여를 제도화하는 과정에서 공론화위원회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정책의 안정성을 위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행위자들을 참여시킨다.
최근연구 : STS 연구자들을 참여를 보다 “실험적(experimetnal)이고, 반성적(reflexive)이며, 책임감(responsible) 있는 방식”으로 연구하고 실천하는 방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과학기술학(STS) 연구에서 대중 참여에 대한 관점의 진화 과정.
비판적 관찰자로서의 초기 STS : 초기 과학기술학은 근대 과학기술이 사회를 배제하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이 시기에는 과학자들이 대중을 과학 지식이 부족한 존재('결핍 모델')로 간주하고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태도를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과학기술 민주화의 지지자로서의 STS : 이후 과학기술학은 단순한 비판을 넘어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역할로 나아갔다. 대중 참여를 과학 정책에 제도적으로 통합하고 정착시키는 데 기여하며, 대중 참여를 촉진하고 평가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실험적, 반성적 실천가로서의 최근 STS : 가장 최근의 경향은 대중 참여를 더욱 실험적이고, 반성적이며,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연구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이는 참여의 다양한 방식들을 수용하고, 참여 과정 자체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포함한다. 이러한 방식들은 기존의 비판적 관점이나 민주화 지지 관점과 공존하며, 오늘날의 복잡한 과학기술 정책 환경에서 더욱 넓은 의미의 대중 참여를 탐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과학기술학은 대중 참여에 대해 비판 → 제도화 지원 → 실험적 실천의 과정을 거치며 그 역할과 관점을 확장해 왔지만, 이 세 가지 방식은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현재에도 복합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다.
넬킨은 과학자의 정치 참여가 과학의 객관성이라는 이상과 충돌하는 문제로 보았지만, 라투르는 과학 자체가 이미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네트워크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므로 과학자의 정치 참여를 필연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 주제는 대중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가 중요한 지점이다. 이러한 접근에 따라서 과학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이 달라진다. 이 논의는 '과학의 대중적 참여'의 논의에서 과학을 이해시킬 것인가 아니면 과학적 결정에 참여하게 할 것인가가 핵심이 된다. 오늘은 구체적으로 도로시 넬킨의 관점을 중심으로 더 알아보자.
도로시 넬킨의 관점
도로시 넬킨은 1970~80년대 과학기술 논쟁에서 과학자의 정치 참여 문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녀는 뉴욕 카유가 호수 원자력 발전소 건설 논쟁 사례를 통해 과학적 객관성과 공적 책임 사이의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 제기 : 과학자들은 기술적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과학적 지식만으로 말해야 하는지, 아니면 정치적 활동에 참여해 공공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한다.
과학자의 역할 갈등 : 일부 과학자는 규제가 미흡한 상황에서 정치 참여가 환경 위험에 대한 다양한 고려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과학자들은 기술적 불확실성을 이유로 정치적 개입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고민의 핵심: 넬킨은 이 문제를 과학과 정치라는 두 문화의 충돌로 보고, 과학자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특정한 공공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가치의 문제에 대해 말할 수 있는지, 또는 말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브루노 라투르의 관점
브루노 라투르는 넬킨의 고민을 이어받아 과학 연구를 실제적이고 물질적이며 참여적인 지식으로 이해한다. 라투르는 과학적 사실이 단순히 객관적인 진리가 아니라, 인간-비인간의 네트워크에 의해 만들어지는 우연적이고 참여적인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적 사실의 이해: 라투르는 과학이 '통 속의 정신'처럼 독립된 영역이 아니라,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 인간과 비인간이 분리되지 않는 특성을 지닌다고 본다.
네트워크 이론: 과학적 지식은 실험실 도구, 연구자, 논문, 그리고 과학이 영향을 미치는 사회와 자연 환경 등 다양한 요소들이 상호작용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자의 정치 참여는 이러한 네트워크의 일부로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논문은 기존의 시민참여 담론, 특히 에너지 시스템과 같은 사회기술적 전환(socio-technical transition) 영역에서의 참여를 기존의 고정된 방식으로 이해하는 접근을 넘어서기 위한 시도이다. 저자들은 기존의 참여 논의가 지나치게 분절적이고 이벤트 중심적이며, 참여를 미리 정의된 형식으로 취급함으로써 오히려 참여의 복잡성과 역사성을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많은 정책적 또는 학문적 접근은 참여를 단일한 사건(예: 공청회, 설문조사, 시민배심원 등)으로 환원하고, 이를 통해 시민의 의견을 수집하고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시민이 누구인지, 어떤 맥락에서 참여가 구성되는지, 참여가 어떻게 권력과 제도적 질서에 의해 배치되는지를 설명하는 데 매우 부족하다. 이에 따라 저자들은 참여를 보다 넓은 맥락―즉 참여 주체, 형식, 대상이 상호작용하는 동적 생태계―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참여 생태계(ecologies of participation)’라는 개념으로 정식화한다.
논문의 주요 내용
이 논문은 세 가지 참여 이론적 관점을 구분하면서, 각각의 전제가 참여를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한계를 가지는지를 분석한다.
첫 번째는 ‘잔여적 실재론(residual realism)’에 기반한 주류적 접근이다. 이 관점은 참여를 사전에 규정된 형식(예: 여론조사, 행동변화 캠페인)으로 간주하며, 시민을 독립적 개인(individual subject)로 전제한다. 또한 참여는 정책적으로 설계된 단일 이벤트로서 작동하며, 주로 정부나 과학기술 엘리트가 설정한 과제를 ‘설명’하거나 ‘수용’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여기서는 참여의 평가는 ‘대표성’, ‘영향력’, ‘포용성’ 같은 외부 기준에 따라 결정되며, ‘좋은 참여’란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이해된다.
두 번째는 관계적(relational) 접근이다. 이는 과학기술학(STS), 사회실천이론(SPT), 행위자네트워크이론(ANT) 등 해석적 사회과학 전통에서 발전된 것으로, 참여란 항상 사회-물질적 구성요소(기술, 인프라, 담론, 규범 등)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된다고 본다. 참여자는 단독적 개인이 아니라, 지식, 물질, 도구, 의미, 제도, 다른 인간 행위자들과의 복합적인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집합적 실천체(collective practices)이다. 이 관점은 참여가 항상 특정한 방식으로 ‘연기(perform)’되고, 그 안에서 주체, 대상, 방식이 서로를 구성하며 변화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하지만 관계적 접근은 주로 개별 사례 수준에 머물러 전체 시스템 수준의 이해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지닌다.
세 번째는 체계적(systemic) 접근이다. 이는 참여를 단일 사건이나 형식이 아니라, 다양한 참여 실천들이 서로 교차하며 구성하는 전체 시스템의 일부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이 관점에서는 ‘참여 시스템(system of participation)’이라는 틀 속에서, 다양한 참여 실천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특정한 정치문화적 질서를 구성하는지를 분석한다. 특히 이들은 기존의 에너지 시스템이나 정책 제도 내에서 특정한 참여 방식이 어떻게 제도화되고, 중심화되며, 또 주변화되는지를 설명하는 데 강점을 갖는다. 예컨대 어떤 참여 방식은 지속적인 반복과 복제를 통해 ‘대표성 있는 형식’으로 고정되지만, 어떤 참여는 비주류적·저항적 형태로 간주되어 주변부로 밀려난다.
이러한 세 접근을 종합하여 저자들은 ‘참여 생태계(ecologies of participation)’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단일한 주체, 대상, 형식이 아니라, 세 가지 상호작용적 차원―① 집합적 실천(collective practices), ② 참여 공간(wider spaces of participation), ③ 시스템 헌법(system-as-constitution)―으로 구성된다고 설명한다. 첫째, 참여는 개별 행위가 아니라 사회-물질적 구성요소(기술, 제도, 사람, 의미 등)가 얽혀 작동하는 집합적 실천을 통해 이루어진다. 둘째, 이러한 실천들은 단절된 것이 아니라, 특정한 제도, 담론, 정체성에 따라 서로 연결되며, 공통의 ‘참여 공간’을 형성한다. 예를 들어, ‘시민 배심원’, ‘여론조사’, ‘행동변화 캠페인’ 등은 표준화된 방식으로 재생산되며 공통된 형식을 공유한다. 셋째, 이러한 모든 참여는 특정한 정치문화적 헌법―즉, 국가와 과학, 시장, 시민의 관계를 규정하는 역사적·제도적 조건―안에서 정당화되고 의미화된다.
논문의 인사이트
이 이론을 적용하기 위해, 저자들은 영국의 에너지 전환 과정(2010~2015년)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258개의 실제 참여 사례를 체계적으로 맵핑하고 그 중 30개를 심층 분석한다. 분석 결과, 참여 생태계는 세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중심 참여형태(dominant practices)는 정부 주도하에 정형화된 방식으로 나타난다. 여론조사, 공청회, 행동 변화 캠페인 등은 반복적이고 제도적으로 정당화된 방식으로 작동하며, 시민은 ‘소비자’ 혹은 ‘정책 수용 대상’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중심 참여는 정치적으로 안정된 ‘에너지 삼중과제(trilemma)’ 프레임 내에서 기술과 소비 행동의 변화만을 강조한다.
둘째, 다양한 참여형태(diverse practices)는 지역 사회, 예술, 시민운동, 공동체 에너지 프로젝트 등에서 나타나며, 창의성, 비판성, 대안성을 특징으로 한다. 이들은 종종 ‘성장’이나 ‘기술적 효율’이 아닌 ‘에너지 정의’나 ‘탈성장’ 같은 가치에 기반을 둔다. 예를 들어 프래킹(fracking) 문제에서 정부는 주로 여론조사와 제한적 공론장을 통해 참여를 유도했지만, 지역 운동이나 NGO들은 보다 포괄적이고 정치적인 비판을 제기했다.
셋째, 새롭게 부상하거나 체계 밖에 있는 참여(emergent/overflow)는 디지털 감성 분석, 시민 과학, 생활세계 실천 등 공식 제도 밖에서 나타나며, 종종 기존 시스템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주제, 방식, 주체를 구성한다. 예컨대 세탁 습관이나 통근 행동 등은 ‘에너지 참여’로 인식되지 않지만 실제로 에너지 수요를 결정하는 중요한 참여 실천일 수 있다. 이러한 ‘오버플로우(overflow)’는 기존 제도가 정의한 에너지 시스템의 경계를 넘어서는 참여 방식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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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들은 이러한 참여 실천들이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여섯 가지 유형으로 정리한다.
(1) 선행성: 과거 참여가 현재 참여에 영향을 주는 경우
(2) 복제: 유사한 형식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반복되는 경우
(3) 절연: 일부 참여가 의도적으로 다른 참여와 단절되는 경우
(4) 저항: 서로 다른 참여 집합이 가치와 비전을 두고 경쟁하는 경우
(5) 협력: 상이한 참여 집합이 연대를 이루는 경우
(6) 변형: 하나의 참여가 다른 형태로 진화하는 경우이다. 이 관계 유형들은 참여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살아 있는 관계망이며, 끊임없이 구성되고 해체되며 재구성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 논문은 ‘참여’를 단순히 수집되고 측정 가능한 시민의 의견으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참여 자체가 사회기술적 시스템의 일부이며, 그 시스템을 구성하고 변형시키는 행위적, 제도적, 문화적 힘임을 강조한다. 참여 생태계 접근은 거버넌스, 정치문화, 기술 시스템, 담론의 경계에서 참여가 어떻게 구성되고, 어떤 참여는 중심이 되며, 어떤 참여는 사라지는지를 설명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또한 제도는 단지 시민에게 ‘참여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참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응답할 것인가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민주적 거버넌스의 방향을 제시한다.
리 이드 빈셀(Lee Vinsel)과 앤드루 러셀(Andrew Russell)은 'The Innovation Delusion'(2020)에서 현대 사회가 기술과 관련하여 빠져 있는 “혁신 망상(innovation delusion)”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들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혁신’이라는 단어에 지나치게 매혹되어 있으며, 이는 단지 기술 기업이나 창업 생태계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 결정자, 언론, 학계, 심지어 기술학 내부에까지 뿌리내린 일종의 사회적 이데올로기라고 지적한다. 사회는 끊임없이 ‘새로움(newness)’과 ‘변화(change)’,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을 추구하고, 기술을 오직 미래를 향한 진보의 상징으로 간주하며, 과거와 현재의 지속적인 시스템, 그것을 작동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과정을 경시하거나 망각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실질적으로 사회의 기반을 형성하고 유지하는 이들의 노동을 투명하게 만들며, 기술을 마치 마법처럼 순수 창조 행위로 오해하게 만든다.
빈셀과 러셀은 기술이란 근본적으로 창조보다는 유지(maintenance), 돌봄(care), 관리(stewardship)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도로, 상하수도, 전력망, 공공 기록 시스템, 학교 행정, 병원 데이터베이스, 정보 인프라 등은 모두 지속적 유지 관리 없이는 즉각적으로 붕괴될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사회를 지탱하는 인프라의 유지자는 흔히 주목받지 못하며, 사회적 보상 체계에서도 배제된다. 이들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발명가보다 덜 매력적이고 영웅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빈셀과 러셀은 이러한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 ‘유지의 문화(culture of maintenance)’를 회복할 것을 요청한다. 유지 노동은 단지 뒷단의 기술이 아니라, 기술이 지속 가능하고 신뢰 가능한 공공재로 기능하기 위한 윤리적·정치적 실천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관점은 STS(과학기술학)에서 오랫동안 주장되어온 기술의 사회적 구성성이나 실천 기반 이론(practice-based theory)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기술은 고정된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행위와 상호작용을 통해 구성되며, 그 과정에는 창조자뿐만 아니라 사용자, 관리자, 수리공, 시스템 운영자 등 다양한 ‘기술 실천자’들이 포함된다. 특히 빈셀과 러셀의 논의는 페미니즘 STS의 ‘돌봄 윤리(ethics of care)’와도 깊이 연결된다. 예컨대 마리아 푸익 데 라 벨라카사(Puig de la Bellacasa)는 기술을 ‘돌보는 행위’로 이해하며, 돌봄은 단지 감성적 노동이 아니라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정치적 실천이라고 주장한다. 빈셀과 러셀은 이 관점을 기술 전반에 적용하면서, 기술의 영웅 신화를 해체하고, 소외된 유지 노동의 가치를 재조명한다.
그들은 또한 기술학 내부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전통적인 기술사와 기술 담론은 발명가, 엔지니어, 기업가 등 창조적인 남성 영웅상을 중심으로 기술 발전사를 서술해 왔으며, 반면 관리·유지·보수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배경의 익명 노동자로 처리되어 왔다. 이와 같은 구조는 기술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확산시킬 뿐만 아니라, 기술의 민주적 통제를 방해한다. 왜냐하면 시민들은 기술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술은 전문가의 영역으로 전유되며, 그로 인해 유지와 돌봄의 결정권 역시 기술 관료나 기업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을 진정으로 민주화하려면, 창조보다는 유지와 관리의 정치학을 회복해야 하며, 기술적 세계에 참여하는 모든 노동자들의 행위를 공적으로 가시화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혁신 망상은 혁신이라는 단어가 애매하다는 논리이다
결국 빈셀과 러셀의 ‘혁신 망상’ 비판은 단순히 ‘혁신이 나쁘다’는 주장이 아니라, ‘혁신’이라는 단어가 기술적 윤리와 사회적 가치를 지워버리는 담론의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는 구조적 인식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기술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할 것을 요청하며, 기술이란 창조적 파괴보다 돌봄과 책임, 장기적 안정성을 위한 실천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정한 기술의 진보란 무엇인가? 빈셀과 러셀에게 있어, 그것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잘 유지하고, 모두가 신뢰할 수 있게 돌보는 능력에 있다. 따라서 기술학과 기술정책 모두, ‘혁신’이라는 말의 도취에서 벗어나 유지와 돌봄의 윤리적·정치적 복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핵심 주장이다.
도로시 넬킨(Dorothy Nelkin)의 카유가 호수 원자력 발전소 논쟁 연구(1971)에서 얻을 수 있는 핵심 인사이트(insight)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넬킨의 인사이트들은 단순한 기술 반대 운동을 넘어서, 과학기술과 민주주의, 지식과 권력, 그리고 시민 참여의 관계를 깊이 있게 성찰하게 만든다. 넬킨의 연구는 단지 한 지역의 기술 갈등 사례가 아니라, 과학기술이 민주주의와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 지식이 어떻게 권력과 얽히는가, 시민이 어떻게 기술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주요 인사이트 요약
기술 결정은 중립적이지 않다 : 기술은 단순히 효율성과 기능성만으로 평가되는 ‘중립적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와 정치적 결정이 내포된 선택이다. →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은 경제성이나 전력 공급 문제가 아니라,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결정이다.
인사이트: 기술정책은 기술자나 정치 엘리트의 독점적 영역이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하고 토론해야 할 공적 사안이다.
‘지역 지식’은 진정한 지식이다 : 지역 주민들의 반대는 단순한 무지나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삶의 경험과 환경 지식에서 비롯된 정당한 판단이다. → 전문가 지식만이 유일한 지식이 아니며, 일상적 경험에 기반한 시민의 인식 또한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
인사이트: 지식의 민주화는 전문가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지식의 공존을 인정하는 것이다.
시민 참여가 배제될수록 갈등은 커진다 : 카유가 논쟁에서 정부는 형식적 공청회만 열었고, 실질적인 의사결정은 밀실에서 이루어졌다. 이는 시민 불신과 갈등을 심화시켰다. → 기술정책은 ‘소통’보다 ‘참여’가 핵심이며, 사후적 정보 제공보다 사전적 의견 수렴과 공동결정 구조가 중요하다.
인사이트: 민주적 정당성은 시민의 의견이 단순히 “듣는 수준”이 아니라, 의사결정 구조 속에 제도적으로 반영되어야 확보된다.
과학기술은 사회적 정체성을 구성한다 : 이 논쟁은 단지 기술을 둘러싼 갈등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에 대한 자기 정체성 투쟁이기도 했다. → 주민들은 생태적 환경, 커뮤니티 가치, 건강, 안전 등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으며, 이는 기술과 문화의 충돌이기도 하다.
인사이트: 기술 수용 여부는 단지 “기술 좋고 나쁨” 문제가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가치와 정체성을 반영하는 선택이다.
과학의 정치성 인식이 필요하다 : 과학은 순수한 진리 탐구가 아니라, 정치적이고 제도적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구성되는 활동이다. → 누구의 돈으로 연구되고, 누구를 위한 기술이며, 어떤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과학인가에 대한 질문이 필수적이다.
인사이트: ‘과학의 객관성’이라는 신화를 넘어서, 과학-기술의 정치성(politics of science)을 성찰하는 것이 현대 사회에 필수적이다.
정리해보자면, 도로시 넬킨의 1971년 연구에서 도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인사이트는 기술 결정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원자력 발전소 건설과 같은 기술적 결정은 단순히 과학적 타당성과 경제적 효율성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윤리적 선택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따라서 과학기술 정책은 전문가 집단이나 정부에 의해 일방적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되며, 시민의 참여를 통해 공론화되고 정당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것이다. 넬킨은 지역 주민들이 제기한 반대가 단순한 감정적 반응이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주민들은 그들이 살아온 환경에 대한 경험, 생태에 대한 지식, 그리고 지역 공동체에 대한 애착을 바탕으로 비판적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이는 ‘지역 지식(local knowledge)’이 과학적 지식 못지않게 공공 정책 형성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따라서 지식의 민주화는 전문가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지식이 함께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있다.
또한, 넬킨은 시민 참여가 형식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을 때 오히려 갈등이 심화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카유가 호수 논쟁에서 정부는 공청회를 열었지만, 그것은 실질적인 의견 수렴이 아닌 형식적 절차에 불과했다. 이처럼 사전적 의견 수렴이 아닌 사후적 통보가 이루어지는 구조에서는 시민 불신이 누적될 수밖에 없다. 기술정책의 정당성은 시민들이 정보 제공을 받는 수준을 넘어, 의사결정 과정 자체에 참여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이 논쟁은 단순히 환경을 지키자는 운동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정체성과 가치가 기술적 결정에 의해 침해당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원자력 발전소는 그 자체로 위험성과 효율성을 둘러싼 기술적 사안이지만, 동시에 그것은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짓는 요소이기도 하다.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의 방식, 생태적 균형, 공동체의 자율성을 지키기 위해 반대했으며, 이는 기술이 단지 도구가 아니라 문화와 정체성의 문제와 얽혀 있음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넬킨은 과학과 기술이 결코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순수 지식이 아님을 강조한다. 어떤 기술이 연구되고 적용되는가는 결국 정치적·경제적 이해관계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과학은 사회적 구조 속에서 구성되고 기능한다. 이처럼 과학기술의 객관성과 중립성을 절대시하는 태도는 오히려 사회적 불평등과 권력 집중을 은폐할 수 있다. 넬킨의 연구는 과학과 기술이 민주주의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만들며, 오늘날 디지털 기술이나 인공지능과 관련된 논의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STS의 정통적인 관점에서 넬킨은 기술의 사회적 구성이론이라던지 STCO와 같은 STS와 연결되는 부분이 매우 깊다고 볼 수 있다.
과학기술학(STS)에서 대중 참여에 대한 연구는 세 단계로 진화해왔다. 첫째, 초기 STS는 비판적 관찰자로서 근대 과학기술이 대중을 배제하고 '결핍 모델'에 기반해 이해하려 했던 점을 비판했다. 둘째, STS는 과학기술의 민주화 지지자이자 촉진자로서 대중 참여를 과학 정책에 제도적으로 통합하고 정착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했다. 셋째, 최근 STS 연구자들은 대중 참여를 보다 실험적이고, 반성적이며, 책임감 있는 방식으로 연구하고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들은 기존의 비판적 관점이나 민주화 지지 관점과 공존하며, 오늘날의 복잡한 과학기술 정책 환경에서 다양한 참여적 실천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진화는 대중 참여가 단순히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을 넘어, 그 의미와 실천 방식이 지속적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 넬킨의 연구를 살펴보면서 앞으로 한국의 STS 연구자들이 다양한 주제를 이런 방식의 접근으로 들어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고려대 박사과정 친구들은 그런의미에서 '노거수'와 '강과 댐' 그리고 '고양이'와 'AI', '과학교과서'와 '전자정부'까지 확장하고 있다. (서울대가 STS판에 가장 영향력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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