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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Jun 12. 2018

정치와 발견

해봄스터디_정치의 발견(박상훈)

20180612_사회혁신해봄협동조합

해봄스터디 시즌2_정치 원리

정치의 발견_박상훈


시작하기 질문 , 정치란 무엇인가?


나는 정치란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의 정의이다. 요순시대에는 정치가 필요 없었다. 정치라는 늙은 노인은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에 정치는 젊은이가 되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뛰어 다니지 않았던가?


영등포에 위치한 카페 봄봄에서 시즌2 해봄스터디가 진행되었다. 오늘은 박상훈 후마니타스대표의 ‘정치의 발견’을 스터디하고 있다.


데이비드이스턴이 말한 ‘사회적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라는 정의는 심층철학과 형상철학의 입장에서 볼 때 형이상학에 속한다고 볼 수있다. 가치라는 부분을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으로 접근하면 ‘의지’의 문제이면서 실천이성의 영역이다. 또한 ‘사회’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도 ‘국가’도 아니고 ‘개인’도 아니라는 의미에서 공화주의나 민주주의가 상정하는 ‘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생각임을 알 수 있다.


https://brunch.co.kr/@minnation/621​ ‘정치의 시간’ 강의를 박상훈 대표에게 직접 들었던 강의록.



들어가기


이책을 통해서 박상훈씨가 하고자 했던 말은 ‘지금보다 나은 사회를 꿈꾸며 좋은 정치를 실천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꼭 알아두었으면 하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1장은 ‘왜 정치는 중요한가?’를 다루고, 2장은 ‘정치란 무엇인가?’, 3장은 ‘어떤 정치적 실천을 해야 하는가?’, 4장은 정치적 경험을 서구사회로 부터 배우고, 5장에서는 정치적 이성과 그것을 이끄는 말의 힘에 대해서 알아본다.


1강, 정치는 중요하다


정치는 더이상 혐오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반정치를 부추기는 대상은 누구인가? 반정치는 시민들의 정치에 대한 기대와 참여를 꺾는 것이다. 이로 인해 많은 문제들과 그 해결은 늘 지배적 위치에 있는 세력들의 각성과 온정주의에서 구하게 될 것이다. 이에 의존하지 않고 주체적 시민권력으로 부상해야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도 커질 것이다.


좋은 제도와 법통해 사회경제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기회가 주어지게 하는 것은 민주정치가 해야할 과업이다. 그것은 미눚주의가 자본주의라는 경제적 조건위에서 실천되고 있으며 가장 중요하고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생산자 집단의 의견이 폭넓게 받아들여져야 사회적으로 유익한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2강, 정치는 누가 어떻게 한는가?


이제는 정치가가 되고자 할 때 감당해야할 윤리적 책임의 문제에 대해서 알아보자. ‘소명으로서의 정치’는 인간과 정치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강조하고 있다. 정치란 다른 직업과는 달리 매우 특별한 윤리적 기준을 필요로 함을 강조한다. 이는 악마적 힘을 사용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의 과업을 수행할 수 있는 거대한 관료제를 움직일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 정치가라는 직업은 우선 권력감을 제공하고 평범한 존재들 위에 우뚝 서 있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따라서 직업 정치가가 마주해야 할 질문은 자신이 어떠한 자질을 갖추어야 이 권력을 제대로 다루고 자신에게 부과된 책임성을 제대로 감당해낼 수 있는 가에 있다.


막스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이야기한다. 신념윤리라는 것은 좋은 정치의 출발점이면서 신념에 기초를 둔 소명의식이나 대의에 대한 헌신이 없는 정치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이와 견주어서 책임윤리는 신념윤리에 따른 목표를 현실에서 실현할 때 가져야 할 윤리로 현실정치에서는 신념윤리에 의해서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윤리적 딜레마 앞에서 도덕적 비애감 앞에서도 스스로 단련하고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숙한 인간의 정치가가 출현하기를 기대한다. 평균적으로 인간이 가진 한계 위에서 잘못된 결정이 초래한느 위험성을 볼 때, 타인의 이견을 존중하는 자세이다. 타인에 대한 인간적 정중함과 관용을 핵심으로 하는 ‘정치적 이상’의 기초 위에서 진보와 보수가 경쟁할 때 사회적으로 유익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3강, 정치의 기술과 실천의 기술


이제는 정치적 실천론과 관련하여 알린스키와 오바마의 사례로 부터 배워보자. 그들은 보통 사람과 동등한 입장에서 스스럼없이 말하고 듣고 서로 배우는 방법을 알았다. 유권자를 동료시민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만이 민주주주의 상응하는 정치가가 될 수 있다. 의사소통은 ‘청중 안의 경험 속에서’ 타인의 가치관을 온전하게 존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받아들이려고 할 때, 변화와 개혁의 의지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다.


타인의 고통을 보고 불합리한 사회현실에 분노하는 열정을 가지는 것도 좋으나, 이성과 힙리성의 인래를 통해 차이를 갖는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며 좋은 결과를 얻는 경험을 샇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모와 웃음에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정치에 대한 잘못된 상식과 이에 대한 알린스키의 반론도 중요한 지점이다. 알린스키는 대중들을 계몽하려고 하지 말고 조직해서 그들에게 권력을 쥐어 주라고 한다.


4강, 과거의 경험으로 부터 배울 것들


민주정치에 참여했던 진보파들의 경험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민주정치와 진보의 만남이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는 서구 진보정당의 경험을 예로 들어서 셰리버만의 ‘정치가 우선한다’를 독해해보자. 19세기 초 자본주의의 폐해와 사회혼란기에서 마르크스주의자는 정치행위자로 급성장ㅎ였으나 혁명적 대기론을 우선함으로써 민주정치로 편입되기를 거부했고, 그 공백을 파시즘과 나치즘이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소금성이 어떤한 결과를 가지고 왔는가? 그것은 반민주적 혁명 세력들의 집권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가 갖는 정치부재, 종언론은 정치를 부정적으로 만들기 쉬다. 오로지 혁명이 중요하고 혁명 이후 하나의 정치형태만아 존재한다는 믿을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 진보정치는 어떠한가? 대중정치를 이해하고 적응하기 보다 이념의 언어로 현실을 재단하고, 대중을 계도하는 도덕적 운동론으로 정치조직의 통합력을 약화시켰다. 이제는 정치의 방법으로 힘을 조직해 대중의 삶의 현실을 좀 더 적극적으로 개선하도록 해야한다. 정치에서의 도덕성이 너무 부각될 수록 실제 개선해야할 현실은 놓치고 말것이다. 또한 권력과 이해문제의 접근태도에 있어서 분명 현실정치는 권력을 이용하여 개인과 집단의 이해관계를 다루나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거나 초연한 태도로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진보 정치도 권력과 이해관계의 문제를 합리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현대민주주의는 선거를 제도적 채널로 하는 정치적 대표의 체제를 그 핵심으로 하여, 사회갈등을 대변하는 정치적 대표와 경쟁의 원리가 정치 엘리트와 정부를 좀 더 효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으로 조직된 복수의 정치적 대안들이 존재해야 한다. 그간의 진보정당들은 추상적 공론으로 분열의 사례가 많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하나의 통합진보정당을 만드는 것이 아닌, 주도적 지배적 정당이 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막스베버는 지도자가 있는 민주주의를 강조한다. 한국 진보정당은 개인으로 상징되는 리더십에 매우 부정적 정당조직 모델을 고집하고 리더십의 발전없이 정당 조직을 통합할 방법은 없으며 당내 민주주의 강조시 정다응로서 리더십과 권위적 체계 약화로 정치조직의 파편화와 정파의 과도한 족출을 만들어내야 한다.


5장, 정치적 이성과 말의 힘


민주정치의 이상은 말의 힘을 통해 실현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 권위주의적이고 전근대적 정치언어가 지배하는 곳에서 민주적 가치가 풍요로워질 수 있겠는가? 반대를 말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진보파의 말과 글이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것에 대해 일반 대중의 경험 세계속에서 어떻게 공명될 것인지, 상대의 가치관을 온전히 존중하는 바탕위에서 진보의 언어적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진보의 이유로 개인의 삶이 희생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된다.


진정성을 무기로 그것이 혹시 남을 억압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자. 우리 정치가 필요로 하는 것은 진정성으로 일을 한다는 정치가 아니라 권력을 알고 이해하면서 또한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바람직한 가치를 위해 권력을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정치가이자, 내적으로 단단한 신념과 외적으로 탄탄한 실력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정치가가 아닐까? 또한 자신의 언어로 시민들로 하여금 자신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 가능해야 할 것이다.



나오기


정치란 불확정적, 불가예측적인 힘과 에너지이며 열정이 표출하고 충돌하는 세계이다. 확실한 진리가 지배한느 곳이 아닌 불확실성이 존중되어야 하는 세계이다. 정치가에게는 선택이 옳고 그름이 아닌 결과의 측면에서도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보통의 시민, 평균적 인간의 한계 위에서 현실정치가 이루어진다는 점을 생각하자. 괴롭고 고통스러운 사실을 인정할 때, 실천 가능한 정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민네이션, 정치


정치는 왜 중요한가? 이런 질문은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가와 연결되어 있다. 정치가 무엇인가를 이념형으로 알 수도 있고, 실천적으로 해보니 이런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개인이 처한 위치, 환경, 경험에 따라서 정치를 바라보는 양상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정치는 국가적인 것이라는 의미에서 제도로 말하는 살마도 있고 사회적인 것이라는 측면에서 문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개인적인 행위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정치는 제도, 문화, 행위자라는 큰 3가지의 테두리를 가지게 된다. 제도의 중요성은 제도론으로 발전하여 제도주의 혹은 신제도주의가 되고 문화는 정치문화론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행위자에 대한 부분은 행위자론이나 이익집단론으로 발전하면서 학문적 분파를 이루기도 한다.



민네이션, 정당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국의 정당구주에 대해서 별로 신뢰가 안 간다. 최장집교수나 박상훈 대표가 말하는 정당민주주의나 갈등의 정치학을 아직도 수긍하지 못하겠다. 그 이유는 그들이 ‘현실주의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있는 것들을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사울 알린스키를 가지고 오는데, 나는 그렇나 출처를 끌어오는 것도 오히려 알린스키를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칼 슈미트같은 갈등을 통한 적과 나의 구분을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문스럽다. 정당의 대한 이념형이 없어서 그런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당이 최소한도 ‘정당의 강령’과 ‘정당이 가지고 있는 대안’으로 유권자들을 설득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든다. 스웨덴의 100년의 정치설계자 비그포르스처럼 대안과 강령으로 노동자와 경영자를 설득하여 협약을 맺고 노동당의 렌과 마이드너를 설득하여 ‘동일임금 동일노동’이라는 렌-마이드너 모델을 만들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정도는 되어야 강령한 진보정당이라고 ‘대안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책임윤리와 신념윤리로 퉁치기엔 현실주의 이면에 숨어 있는 엘리트주의적인 관점을 지울수가 없다.


민네이션, 엘리트주의


엘리트주의를 배격하면서도 엘리트주의를 욕망하고 있는걸까? 엘리트가 되면 사람들의 관심과 권력과 재력이 생긴다는 것은 지금 한국정치에서는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데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는 정치인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엘리트주의의 근원은 어떻게 보면 플라톤이 이야기한 이데아를 혼자서 알고 있는 개인일 수도 있다. 또한 엘리트들이 서로 모여서는 엘리트정당을 만들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엘리트정당은 마르크스주의에서 보듯이, 일반 현실정치에서 보듯이 민주위에 군림하고 스스로의 성을 쌓고 사람들을 부리기 시작한다. 이념성은 비롯 정당 민주주의 하에서 평등과 자유를 추구한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볼 수 있다. 엘리트들의 모임을 ‘파워엘리트’라고 하기도 한다. 이와 반대로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민중을 위해서 나누어주면서 한사람씩 찾아다니는 소크라테스적인 정치를 하는 사람들을 ‘인텔렉츄얼스’라고 부른다.



민네이션, 책임윤리


레비나스가 말하는 책임과 관련된 윤리는 박상훈대표나 샤츠슈나이더가 말하는 것과 완전히 다르다. 레비나스에게 타자는 나와 동일자가 아니다. 내가 먼저 있고 그것에 대칭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타자는 완전히 신비다. 책임은 응답한다는 것이다. 응답하는 사람이 자유를 가지고 있다. 물어보는 사람이 자유를 가지는 게 아니라 응답하는 사람이 자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막스베버가 이야기한 책임윤리를 제대로 해석하고 있는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응답할 수 있는 권리를 참여자들에게 준다고 할 때 정치인은 오히려 판을 제대로 운영해야 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는 퍼실리테이터와 같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플랫폼 민주주의의 핵심은 퍼실리테이터가 가지고 있는 신념인 인본주의와 평등주의, 그리고 판을 제대로 공평하게 운영해야한다는 책임이 아닐까? ‘전체와 무한’에서 더 자세한 타자의 철학에서 존재론을 다루고 있다.


https://brunch.co.kr/@minnation/965

 

민네이션, 퍼실리테이터


플랫폼 민주주의를 꿈꾸고 있다. 굴곡진 지점을 평등하게 만드는 플랫-한 민주주의를 만들기위해서는 퍼실리테이터가 필요하다. 퍼실리테이터는 구기욱 대표에 의하면 ‘인본주의자’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동등한 가치를 가지고 있고 모두의 의견이 소중하다라는 신념 말이다. 그러나 퍼실리테이터의 책임은 토론 전에 제대로된 설계를 하고, 토론 중에는 조정자가 되면서 끝까지 가이드의 역할로 판을 마무리하는 것을 책임윤리로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의 촛불혁명 이후에는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을 정치가가 되어야 하고, 정치의 판다고 플랫폼 안에서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


최태욱 교수님의 소설이 나왔다. 청년이 선거제도를 바꾸는 이야기. 정치기업가론의 핵심이 나온다.


민네이션, 현실적 이상주의자


현실주의자와 이상주의자를 나누어서 생각하는게 보통인데, 과연 그것이 나누어지는 것인가? 오히려 이상주의적 현실주의자나 현실주의적 이상주의자가 필요한 것은 아닌가? 나는 스스로 현실주의적 이상주의자realistic idealist라고 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방법론을 가지고서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 활동하는 사람을 말한다. 나는 그런 방식의 정치를 추구한다. 현실적인 방법론을 추구하면서도 이상을 놓치 않는 것 말이다. 마치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나오는 ‘부잣집 아들이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서 현자를 찾아가는 이야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고, 초기 독일의 낭만주의자들과도 같은 식의 결합이다.


https://brunch.co.kr/@minnation/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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