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이 알아듣도록 설명하라

by 미노칼럼


동생을 개미로 만들었던 친구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자릿수를 넘어가는 더하기를 너무 어려워한다며 어머니가 SOS를 요청했다. 수학에 자신 있었던 나는 흔쾌히 승낙하는 것을 넘어, '더하기의 모든 원리를 이해하고 유레카를 외치게 해 주겠어' 하는 자신감까지 차 있었다.


'유레카'라는 말을 들어보지도 못했을 듯한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다행히 성격은 활발한 친구여서, 오늘 밥은 뭐 먹었는지, 처음 들어간 학교에서 뭐가 제일 재밌는지 하는 질문에 대답을 쾌활히 해주었다. 본인의 행복했던 경험에 다시 폭 빠져든 틈을 타 나는 풀어야 할 학원 과제를 훑었다. '7+2+3=?' 이라는 수식과 함께, 아래 '10을 빨리 만들도록 더하기 순서를 바꿔봐요!' 라는 팁이 적혀있었다.


이 문제에 들어있는 심오한 뜻을 이 책은 이해하고 있는가? 자릿수의 개념과 그 유용함을 먼저 설명해야 하지 않나? 왜 10을 만들어야 하는지 충분히 이해한다면, 이진수든 십진수든 어떤 덧셈이 와도 할 수 있다. 심지어 덧셈의 순서를 바꿔도 된다는 <교환법칙>을 설명하기도 전에 저런 '얄팍한 수작'을 학생들에게 알려줄 것인가?


안타까운 사실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수학에는 조예가 깊었지만, 수학 교육에는 조예가 깊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그걸 오늘 알았다는 점이다. "10이 완성되면 손가락으로 다 표현하기 힘드니, 선생님에게 맡겨라"는 식으로도 해보고, "좋아하는 마이쮸 10개를 모으면 다른 바구니에 옮겨보자"는 식으로도 설명해 봤지만, 말끔하게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본인에게 자꾸 왜 그런지 설명해 보라는 선생님의 질문은 아마도 두 시간 동안 고역이었으리라.


수업 시작할 때 그렇게 내 질문에 밝게 대답해 주던 친구가 '수업 끝' 이라는 소리를 신호 삼듯 호다닥 엄마에게 달려가는 뒷모습을 보니, 섭섭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쩌면 이 친구에게 필요한 건 문제에 숨어있는 수학적 원리가 아니라 본인 앞에 문제를 쉽게 쉽게 풀 그 '얄팍한 수작'이었을지 모른다. 수학적 원리를 굳이, 그리고 굳이 지금 알려줄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후회가 든다.


종종 교수님들이, "초등학교 1학년 학생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해라"는 조언을 해주시곤 한다. 하지만 오늘로써 난 깨달았다. 초등학교 1학년 학생에게 설명하는 일은, 충분히 이해만 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교수님."


PS. 동생을 개미로 만든다면(https://brunch.co.kr/@mino-column/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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