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한 이의 흔적, 《살아남은 자의 슬픔》

by 꿈꾸는 곰돌이

상실한 이의 흔적,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밤 꿈속에서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내 자신이 미워졌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멜랑꼴리는 인류 예술사를 관통하는 오랜 개념이다. 예술의 밑바탕에는 타인에 대한 사랑이 내제되어 있는데, 언젠가 사람은 죽기에 사랑을 잃은 자의 슬픔을 다룬 애도와 멜랑꼴리는 상상력의 원동력이자, 괴로운 광기이다. 보통 예술가들중 흔히 '미친놈'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다방면에서 거인이라고 할 수 있는 베를롤트 브레히트 역시 멜랑꼴리, 혹은 애도의 흔적이 남아있는 시를 많이 남겼다. <묘비명1919>는 독일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를 애도하고, <예심 판사앞에서 선 봉제공 16세 소녀 엠마 리이스>는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투사들을 애도한다. 그렇다면 애도란 무엇인가? 프로이트는 정상적인 리비도의 복귀를, 주디스 버틀러는 상실의 흔적이 남는 것을 말한다. 브레히트의 시에서 관찰되는 애도는 버틀러의 애도 개념으로 설명된다. 상실했던 사람들의 흔적을, 시인의 상상계 속에 깊이 남아있다.


브레히트 시선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의 표제시이자, 내연녀 슈테핀을 애도하는 시 <살아남은 자의 슬픔>는 연인을 잃은 슬픔의 흔적이 보인다. 꿈이라는 무의식의 공간에서, 들려온 친구들의 목소리는 괴롭다. 운이 좋아 살아남은 브레히트를 강한 자로 만들어버린다. 이 괴로운 호명은 살아남은 자 브레히트에게 죄책감을 주기도 하나, 이 호명은 죽어간 이들의 흔적을 상상계에 심어져 살아남은 자의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

가자 지구에서 죽어간 이들을 애도하며, 그들의 흔적을 새긴다.


(2024.3.2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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