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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죽음보다 강력하다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

9.14 독서일기

by 꿈꾸는 곰돌이

황석영의 단편소설 <아우를 위하여>는 학급이라는 최소한의 사회에서 '윤리의식'의 성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독일식 성장소설의 형태를 띄었다. 전후 폐허가 된 처참한 남한 땅에서, 한 줌의 도덕마저 사치인 것은 분명했으나 점차 소년이 권력의 비윤리에 문제의식을 느끼며 도덕성을 회복하여 윤리의 영역으로 전개한다는 점에서 훌륭한 성장소설이다. 이 소설을 민중주의 시선으로 해석한다면, 미군 하우스 보이인 영래가 저지르는 부조리에 맞선 평범한 학생의 저항과 넓게 퍼지는 학생들의 반발로 권력을 잃게된 영래의 이야기는 미제국주의를 격퇴하는 민중의 윤리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의 정치성은 필수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끔은 구조 자체에 집중하여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뼈무더기가 있는 노깡의 두려움을 극복한 주인공의 비결은 윤리라는 고차원적 의식보다 사랑의 힘이다. 주인공 '나'에게 첫사랑은 교생으로 온 병아리 선생님이고 선생님을 향한 사모하는 마음이 주인공을 보다 높은 윤리의 세계로 인도했다. 그 윤리는 억압받는 것에 분노하고 폭력을 각오하고 저항하는 소박한 내적 형명을 이뤄낸 것이다. 플라톤의 향연에서는 에로스가 용기의 면에서 전쟁의 신 아레스보다도 더 뛰어나다고 말한다. 사모하는 선생님을 향한 영래 일당의 음담패설에 대한 주인공의 분노는 이내 용기를 갖고 주체적 결단을 내린다. 물론, 얻어맞기는 했지만병아리 선생님을 지지하는 학생들과 영래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반발로 영래 일당은 결국 권력을 잃게 된다. 선생님이 떠나기전 마지막 식사에서 초대하며 이전 노깡의 트라우마를 털어놓고, 교생 선생님의 조언 덕에 영래 패거리와 같은 노깡의 두려움을 극복한다.

노깡은 무엇인가? 거기는 뼈무더기, 즉 죽음이 축적된 이 사회의 가장 어두운 곳이다. 그러나 주인공은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본인 인생에 가장 두려웠던 부분을 오직 사랑의 힘으로 극복한다. 바타이유가 말한 <에로티즘>에 기대어봤을 때, 탄생의 가능성을 내포한 성적 결합 욕구인 에로스의 힘으로 정반대에 위차한 죽음을 극복한 것이다.

이러한 '사랑의 힘'에 대한 교훈은 황석영 소설 세계을 지배하는 정조이다. 베트남전을 다룬 <무기의 그늘>에서는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사랑과 혁명은 같은 길입니다." (-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하)> 중) 라는 대사가 나온다. 민중은 사랑을 하기에 그 대상을 지켜야 하고, 그러니 저항을 한다. 그러나 저항을 하면 할 수록 억압자들은 더욱 거센 압력을 가하니 그 결과는 필히 혁명으로 이어진다.

발터 벤야민이 연인 아샤 라리스와 만나며 혁명적 사상을 정립한 것처럼, 인간은 오직 사랑의 힘을 통해서만 질적 성장이 가능하다. <아우를 위하여>는 형인 '나'의 최초의 질적 성장을 한 과정을 서간채로 풀어냄으로써 사랑의 마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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