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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고한 사랑과 라캉의 실재계: 미완으로 완성되는 사랑

by 꿈꾸는 곰돌이

숭고한 사랑과 라캉의 실재계: 미완으로 완성되는 사랑

사랑은 종종 하나의 끝없는 물음으로 다가온다. 그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는 왜 사랑 속에서 고통받는 동시에 완벽히 존재의 의미를 느끼는가? 사랑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자체가 거대한 아포리아다. 그러나 그 불가해한 감각 속에는 어떤 숭고함이 자리하고 있다. 자크 라캉의 정신분석학에서 이야기되는 '실재계(the Real)'는 바로 이 사랑의 본질과도 닮아 있다. 그것은 다가설 수 없는 것이면서도 그러나 매 순간 우리 존재를 가르고 흔들어 놓는 것이다. 그래서 실재계는 숭고한 사랑의 본질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라캉의 세계에서 실재계는 상징계나 상상계로 결코 완전히 포획될 수 없는 지점이다. 언어와 의미의 구조로는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가장 심연을 지배하는 목소리와 같다. 존재하는 순간 죽어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일상적 차원에서 벗어난, 마치 숭고한 사랑이 열어주는 그 무한한 감정의 틈과도 같다. 사랑 속에서 우리는 이 실재계를 맛본다. 타인의 본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절망과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연결을 느끼는 그 모순된 순간들 속에서 말이다.

숭고한 사랑은 무엇보다도 타자를 단순한 욕망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그것은 타자를 그가 가진 모든 불완전함과 모호함, 그리고 형용할 수 없는 신비로움까지 하나로 받아들이는 행위다. 그러나 타자는 결코 온전히 이해되거나 나의 언어 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라캉의 '대타자(The Other)' 개념처럼, 숭고한 사랑 속 타자는 우리의 상징계를 벗어나 있다. 그가 말하지 않는 부분, 그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부분이야말로 우리를 사랑으로 이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불가능성을 그대로 껴안는 일이다. 타자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그 고통이, 사랑의 가장 숭고한 본질을 열어준다.

라캉은 실재계는 "도달할 수 없는 것"으로 정의된다. 사랑도 그렇다. 사랑은 완성될 수 없는 것이며, 언제나 결핍 상태에 머문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무언가를 소유하려 하지만, 사랑은 그 자체로 우리 욕망의 채워지지 않는 중심을 하나의 상처처럼 드러낸다. 그리고 바로 그 상처가 사랑을 숭고하게 만든다. 타자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고, 사랑이 결코 온전히 내 것이 되지 않기에, 우리는 더 강렬히 사랑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사랑이 우리를 아프게 하면서도 동시에 초월로 이끄는 방식이다.

숭고한 사랑은 이 세계의 모든 결핍과 풍요의 시원이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상징적 질서, 즉 쉬운 언어와 설명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갈라놓는 틈이다. 이 틈을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들을 보게 된다. 그것은 마치 어둠 속에서 잠시 반짝이다가 사라지는 빛과 같으며, 그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실재계의 흔적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향해 손을 뻗는다. 그러나 항상 닿으려는 순간, 사랑은 흘러가 버린다. 라캉이 설명하는 실재계와 마찬가지로, 사랑은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우리를 이끈다.

그렇기에, 숭고한 사랑은 언어를 초월한다. 우리는 사랑을 이야기하려 애쓰고, 그 과정에서 사랑을 스토리의 틀 안에 가두려 한다. 그러나 숭고한 사랑은 결코 언어로 완전히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말해질 수 없고, 다만 느껴질 뿐이다. 이 불가능성 속에서 사랑은 우리를 우리의 가장 깊은 곳으로 이끌며, 우리의 세계를 넘어 그 어떤 것과 마주하게 한다. 단테의 여행처럼 말이다.

라캉의 실재계는 끊임없이 그려지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지평선이다. 숭고한 사랑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것을 붙잡으려 하지만, 언제나 손 안에서 흘러내린다. 그러나 그것이 있어 우리는 살아간다. 사랑이 그리움과 결핍 속에 머물기 때문에, 우리는 그 사랑의 끝없는 가능성 속에서 더욱 고귀한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것은 하나의 완성이 아니라, 하나의 도정이다. 결코 완성되지 않으면서 완성되는 것, 마치 우주의 총체적 진리를 감정화한 것이다.

숭고한 사랑과 실재계의 만남은 불가능성 속에서도 삶의 불꽃을 태우는 경험이다. 사랑은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내적 응시이다. 우리는 그 모호한 빛을 향해 걸어가며 비로소 깨닫는다. 숭고한 사랑은 결코 정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불가능성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가장 진실한 모습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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