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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곰돌이 Dec 24. 2023

2.낭만적 주체를 위하여, 바르트 《사랑의 단상》 서평

불행한 책읽기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을 다 읽었다. 사전 한 권을 다 읽은 듯한 느낌이다. 읽었다는 용어가 어색할 정도로 이해가 되지 않는 텍스트들이 이어지다가, 가끔 상상계와 상징계가 뒤섞이는 황홀한 경험을 한다. 이 지점이 이 책의 독보적

점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비롯한 문학작품으로부터의 단상과 라캉을 비롯한 철학으로부터의 단상이 오직 사랑이라는 담론으로 이어지는데, 그 과정에서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한다. 한 권의 책을 읽으며 수십 번의 선험적 고향상실을 느낀다. 한 문장이 주는 고통 속 사랑의 주체에 대한 귀중한 성찰은 짜릿하게 느껴진다.

여러 파편 같은 시인의 단상들이지만, 기본적으로 정신분석 및 구조주의적 접근을 하며, 사랑에 관해 변증법적 고찰을 발견해낸다.

바르트의 사랑의 주체는 세 가지로 보이는데,

먼저, 낭만적인 열정의 주체다.
이 주체는 사랑을 소유하지 않고, 끊임 없이 방혈하는 주체로, 슈만적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가 떠오른다.

다음으로 광기 혹은 도착적 주체다. 이 주체는 사이코와 노이로제 중간에 위치한 주체로, 이 주체는 몹시 변증법적 속성을 띤다. 사이코와 노이로제라는 양극적 정신병 속에서, 모험을 하는 주체다.

마지막으로 나그네 주체가 있다. 개인적으로 바슐라르가 말하는 질료적 이미지 중 바람의 성질이 생각난다.

 김진영 선생님은 서구 사회의 사랑의 주체로는 질투 주체와 열정 주체가 있다고 하는데, 변증법적 사고에서는 사랑은 열정적 주체로 봐야 한다. 변함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무소유의 미학...

  이 책을 다 읽고 단 하나의 단상이 떠오른다. 바르트가 말했듯, 사랑을 기호화하기에는 인간이 가진 기호가 너무나 어설프다는 것이다. 근사해와 같은 말로 수식하기에는 인간의 언어적 한계가 돋보인다. 보들레르가 산문시 <취해라>에서 말하는 취기를 굳이 상징계 언어로 도식화해야할까...

이렇게 또 이론이 축척되어가고, 시간은 자꾸 잃어버려만 간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읽고 싶다. 1권'스완네 집으로'만이읽었는데, 다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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