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갈이 김치
봄이 오면 밥상에 오르는 봄소식 중 하나가 얼갈이 김치였다. 겨우내 진하고 무거운 양념의 김장김치만 먹다가 채소 풋내가 한창 오른 얼갈이 배추로 담은 김치는 입 안에도 봄기운을 전해주곤 한다. 지금이야 채소가 나는 철이 따로 있지 않아 1년 내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지만 조금만 예전으로 가면 이 땅의 수확물들은 모두가 제 때가 있었다. 얼갈이는 봄 대장, 열무는 여름 대장.
채소 풋내가 어린 입맛에 맞을 리 없었다. 끝 맛이 씁쓸하고 씹히는 식감도 물러서 영 먹기 싫은 반찬 중 하나였다. 밥상 앞에 앉아 이것저것 골라내고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앉아있으면 여지없이 불호령이 떨어지고 그새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울먹이면 밥상 앞에서 운다고 또 야단을 맞기도 했다.
이쯤 되면 까불이 오빠는 "얼가리 꼴가리~ 얼가리 꼴가리~" 하고 놀리기 시작하고 나는 약이 올라 울음이 터져 버리고... 기어이 아버지 호통 끝에 두 초딩은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밥상 앞에 바짝 얼어붙곤 했다.
바로 위 오빠는 장난기가 드글드글했던 개구장이였다. 그러니 바로 밑 여동생은 놀리기 좋은 장난감이 되었다. 더운 여름 오빠가 다정하게 나를 부른다.
"덥지? 냉장고 냉동실 바닥에 혀를 대면 정말 시원하다!"
그리고는 어서 해보라고 살살 덫을 놓으면 나는 영락없이 그대로 하고 만다.
냉동실 바닥에 혀를 대는 순간 철썩 달라붙어서 얼른 입을 떼고 아프다고 울고 있으면 오빠는 신나게 웃으며 사라지고 만다.
"이리 와봐. 코에 물파스를 바르니까 정말 시원해~"
이미 오빠는 코에 물파스를 발라보고 눈물 콧물 다 쏟고 난 뒤였다.
물론 나는 그대로 했고 눈이 시려서 눈을 뜨지도 못한채 엉엉 울고 말았다.
한번은 엄마가 외출하시고 오빠와 둘이 있었는데 갑자기 설탕 뽑기를 해보자고 일을 벌였다. 국자에 설탕을 녹이고 소다를 찍어 넣자 노랗게 부풀어오르는 설탕뽑기. 학교 앞에서 만들어 파는 장사 흉내를 낸다고 바닥에 국자를 탁 엎는 순간 뜨거운 설탕 뽑기가 내 양 손 위로 쏟아졌다. 나는 울고 불고, 엄마가 돌아오셔서 오빠와 나는 된통 야단맞고. 내 두 손에는 손가락마다 붕대가 감겨있었다.
아침마다 엄마는 내 손에 약을 발라주고 붕대를 갈아주었고 상처가 다 나을 때까지 내 책가방은 오빠가 들어야 했다. 내 교실 내 자리까지 책가방을 들어다 주고 투덜투덜대며 자기 교실로 돌아가곤 했다.
지금도 새끼손가락 한 마디에는 그날의 흉터가 남아있다.
개구장이 오빠를 둔 여동생은 이렇게 단련이 되어서 왠만한 일에는 꿈쩍도 하지 않는가 보다.
얼갈이는 몸통이 얇고 수분이 많아서 절이는 것부터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천일염을 뿌려서도 해보고 소금물에 담가서도 해봤지만 아직도 부드러우면서 아삭한 맛을 찾아내지 못했다. 여전히 단골 추어탕 집에서 찬으로 나오는 얼갈이 김치가 내 입맛에는 최고다. 양념도 무겁지 않게 산뜻해야 하는데 새우젓도 써보고 만만한 멸치액젓도 써봤지만 역시 쉽지 않다.
뭐든 과한 것보다 부족한 것의 황금비가 더 어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