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의 김장날
엄마가 새벽부터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생태 한 박스를 사 오는 날은 우리 집 김장날이었다. 눈을 뜨고 일어나면 엄마는 생태들을 손질하느라 한창 바뻤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야 딱히 일손이 되어주지 못했지만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는 엄마의 분주함은 왠지 눈치껏 움직여주어야 할 것 같았다. 집안일에는 손 하나 얹지 않았던 아버지도 이날만큼은 엄마 곁에서 무거운 것을 나르고 이런저런 훈수를 두고 계시니 괜히 걸리적거려서 아버지의 호통을 듣지 않으려면 그냥 눈에 띄지 않는 게 최고였다.
생태 한 박스를 와르르 쏟아놓고 한 마리 한 마리 정성을 다해 손질한다. 지느러미를 자르고 겉면을 긁어주고 대가리를 자르고 배를 가른다. 내장을 긁어내어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분리하고 알은 알대로 내장은 내장대로 따로 모아 담아 둔다. 한참 지난 후 이것들은 엄마표 명란젓으로 창난젓으로 밥상에 오른다.
생태는 살만 발라내어 뭉텅뭉텅 덩어리로 썰고 황석어젓을 넣어 버무린 김장 배추 사이사이에 끼워 넣는다. 미리 손질해서 준비해놓은 마당의 김장독에 차곡차곡 양념된 배추들을 눌러 담고 사이사이 생태 살을 한번 더 챙겨 넣어주고 꾹꾹 눌러 담으면 겨우내 먹을 김장 김치가 마무리된다.
대학생부터 초등학생까지 아이들 다섯은 등교 시간이 모두 다르니 아이마다 독상으로 차려주셨던 아침밥을 먹고 학교에 다녀오면 언제나 모든 일이 끝나 있었다. 그리고 저녁상에는 생태찌개가 푸짐하게 올라왔는데 아무리 뒤적이며 살을 찾아보지만 대가리만 가득한 생태찌개. 어두육미라며 꼼꼼히 발라 드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맨날 아버지 좋아하는 것만 해주구..'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하지만 밥상에서 뒤적이는 거 아니라고 핀잔 한번 듣고는 또 부지런히 숟가락을 움직인다.
어린 시절 노량진 수산시장 근처에 살면서 부지런한 엄마는 계절마다 제철 생선으로 아이들 입맛을 채워주었다. 봄이면 참게로 게장을 담았는데 목욕탕에서 손질하던 게가 탈출해서 거실의 책장 밑으로 쏜살같이 도망치고 말았다. 엄마는 다급히 게를 잡으러 움직이고 나는 꺅꺅 소리를 지르며 호들갑을 떨고.
초여름이면 어린 조기를 박스째 구입해와서 가늘고 긴 옹기 항아리에 황석어젓을 담갔다. 엄마는 그 항아리를 '새우젓 항아리'라고 불렀는데 새우젓 항아리에 왜 황석어젓을 담을까 알 수 없었다. 아마도 그 항아리의 원래 용도는 새우젓을 담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무튼 그 항아리에 굵은 소금과 조기들을 켜켜로 담아 부엌 뒤 그늘진 곳에 두었다. 초겨울에는 씨알이 굵은 조기들을 소금 속에 파묻어 저장해 두었다. 항아리 하나는 황석어젓갈로 또 하나는 조기 염장용으로. 그리고 겨울까지 서너 마리씩 꺼내서 국물이 자박한 조기매운탕을 끓여주었는데 그 진한 맛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가끔 굴비를 넣고 흉내를 내보지만 도통 그 맛이 아니다.
기억 속의 이 날들은 아직도 선명한 흑백사진이다.
추운 겨울 자글자글 끓고있는 짭잘한 조기매운탕과 마당에 파묻은 김장독에서 방금 꺼내온 김치.
그 맛은 언제나 깊고 시원했다.
아이 입에 매울까 봐 물에 씻은 김치를 잘라서 밥에 놓아주던 엄마의 마음도 언제나 깊고 시원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