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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san민산 Oct 27. 2022

쓰디쓴 역지사지

- 씀바귀 김치

대학교 시절 아버지는 살던 집을 다시 짓기 시작하면서 동생과 나를 큰댁으로 보내셨고 그곳에서 5개월가량을 살았다.  또래도 없었고 어렵기만 했던 그곳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배고픔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픈 것이 아니라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허기. 


아르바이트까지 마치고 집에 들어서면 어른들은 모두 저녁식사를 마치고 집은 깜깜했다. 소리 나지 않게 살금살금 주방에 들어가면 식탁 위에 놓여있던 김치 종지들. 되는대로 뚜껑을 열어 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렇게 씀바귀 김치를 5개월 동안 먹었다.  맛이 있을 리 없었지만 동생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알아서.


씀바귀김치는 쓰기만 했다. 푹 삭힌 진한 맛 뒤로 쓴 맛은 꽤 오래 남았다. 지금 재배되는 씀바귀는 절여서 바로 김치를 담을 수 있지만 예전에는 자연산이라 그런지 며칠 씩 물에 담가 쓴 맛을 빼내야 먹을 수 있었다.


우리는 늘 배가 고팠고 허기져 있었다. 무엇을 먹느냐 보다 어떻게 먹느냐가 포만감을 좌우하는 것 같았다. 때로 밥보다 따뜻한 온기가 더 배부르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아마도 어린 시조카들을 갑자기 맡게 되었으니 큰어머니 속도 편치 않았을 텐데 철없던 내가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로부터 30년이 지나서 갑자기 시조카를 데리고 3년을 살게 되었다. 

갑자기 닥친 사업의 어려움으로 조카에게 우리 가족이 얹혀살았다는 게 맞는 표현일 게다. 음, 물론 쉽지 않았다. 집안일을 하는 내가 더 많이 부딪히고 더 많이 상처받고...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이 그것도 매우 원초적인 반응들을 폭발시킬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하고 화나기도 하고.


그렇게 3년을 지내고 조카와 우리 가족은 각기 예전처럼 따로 살게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전쟁 같던 그 시간의 기억들이 자꾸 나를 찌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아주 오래된 옛 기억이 떠올랐다. 큰댁에서 지냈던 시리디 시린 시간들.

경제적인 상황도 나를 지탱하는 정신도 모두 바닥이었을 때 조카의 허기짐을 들여다볼 수 없었다.

한참 시간이 흘러서야 용기를 내어 고백성사를 보고 더 크게 품어주지 못한 조카에게 용서를 구했다. 


쓰디쓴 씀바귀 김치를 식탁에 올리지는 않았지만  비로소 큰어머니의 마음도 어렴풋이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나는 지금도 씀바귀 김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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