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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san민산 Oct 24. 2022

그가 나의 칼국수라면

- 겉절이

인기 많은 칼국수집에 가보면 사실 칼국수보다 곁들여 나오는 김치가 더 유명한 곳이 많다.  공통적으로 잘 익어서 숙성된 김치가 아니라 신선한 겉절이가  나오는데 언제나 칼국수에는 겉절이가 어울린다.  그런데 모든 칼국수 집의 겉절이가 또 각기 그 맛이 달라 주 메뉴인 칼국수에 어울리는 맛을 살려주고 있다.


진한 고기 육수를 사용하는 명동칼국수는 입 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 마늘향 깊은 겉절이가 어울리고, 담백하고 고소한 종로 5가 광희 닭칼국수에는 적당히 숙성된 백김치가 딱 어울린다.  또 구로시장  별미인 광희네 멸치 칼국수에는 과일로 맛을 낸 산뜻한 겉절이가 제 맛이다.  

닭칼국수에 과일 맛 겉절이가 어울릴 리 없고 개운한 감칠맛의 멸치 칼국수에 마늘맛 겉절이가 어울릴 리 없다. 칼국수에는 제각각 어울리는 겉절이가 있어야 그 맛이 완성되고 또 겉절이는 제 각각의 칼국수와 함께라야 그 맛이 완성되는 것이다. 


마치 오래된 부부의 인연처럼.

넘치든 부족하든 함께 걸어온 그 세월이 만든 모습은 지금 그대로가 완성인 셈이다.  그가 나의 칼국수라면 명동칼국수였으면 좋겠고, 내가 그의 칼국수라면 멸치 칼국수가 되면 좋겠다.  


입에 넣자마자 입안이 아릴 정도로 매운 마늘맛을 감출 수 없는 명동칼국수 겉절이는 진한 고기육수에 담긴 명동칼국수 옆에 있을 때만 딱 최고의 맛을 내니, 언제나 "네가 최고다" 인정해 주는 남편 옆에 있을 때 가장 빛나는 나와 닮았다.


과일로 맛을 내서 짜지도 달지도 않고 개운한 광희네 멸치칼국수 겉절이는 분명 새빨갛게 버무려져 있지만 그 맛이 자극적이지 않아 샐러드처럼 몇 접시 리필은 갈 때마다 기본이다. 한때 욱하는 성질도 있었고 '세상아 다 덤벼' 하던 남편은 나이가 들어가며 뾰족한 모서리들이 예쁘게 다듬어져서 남편이라기보다 가장 오래 사귄 절친이 된 듯하다. 그냥 손이 가는 광희네 칼국수집 겉절이처럼.


분명 30여 년 전 나는 순하디 순한 과일맛이었고 그는 언제나 강하고 알싸한 마늘맛이었는데 세월이 이만큼 흐르고 보니 내가 마늘처럼 맵고 그는 과일처럼 아삭해지고 말았다.

누가 맵고 누가 아삭한 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으나 30년 넘게 살아온 노부부는 어쨌든 조화를 이루며 나이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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