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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san민산 Aug 26. 2023

나박나박 엄마생각

- 나박김치

명절이나 아버지 생신처럼 손님상을 차려야 하는 때 엄마는 2,3일 전 나박김치를 담갔다.

엄마가 나박김치를 담그면 우리 집에 손님들이 오시고 행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매년 돌아오는 아버지 생신날에는 골목에 사는 이웃들을 초대해서 꼭 아침상을 함께 들 정도로 엄마는 손님 대접에 진심이었다.


엄마가 나박김치를 담글 때면 옆에 앉아 조잘대기 담당이 바로 나였다.

꽃모양 틀을 쥐어주면 연신 당근 꽃을 찍어대며 까르르까르르 웃음꽃을 찍어내면서...

정작 엄마는 제대로 된 주인공 상을 받아보기도 전 아이들이 다 크기도 전에 떠나셨지만.


아이들끼리 장만한 엄마 제사상에도 나박김치가 올랐다.

제사 법도야 집안마다 다 다르지만 큰 행사니까 그러는 건 줄 알았다.


결혼하고 나서도 30년이 넘어 엄마를 생각하면서 처음으로 나박김치를 담가보았다.

아들 녀석들은 다 커서 내 옆에서 까르르 웃어주며 당근 꽃을 만들어줄 리 없지만 재료들을 다듬고 준비하는 동안 내 어린 시절 젊은 엄마가 계속 떠올랐다.


지금 나보다 젊었구나, 우리 엄마.


알배추를 다듬어 약한 소금물에 절이고, 무는 나박나박 썰어서 절이고, 미나리는 기둥으로만 단정하게 준비하고 이제 김치물을 만드는 게 여간 정성이 드는 게 아니다.

배, 양파, 마늘과 생강, 흰 밥 한 덩이, 액젓과 매실청 조금을 넣어 믹서에 곱게 갈아서 베 보자기에 걸렀다.

고춧가루도 물에 불려 고운 채에 받쳐서 맑은 물만 내렸다. 잘 절여진 배추와 무를 이 국물에 함께 살살 버무려서  액젓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미나리와 쪽파, 꽃당근을 넣어준다.


하루 정도 잘 익혀서 냉장고에 보관하니 시원하고 개운한 나박김치가 완성되었다. 따뜻한 흰 밥에 굴비 굽고 냉장고 속 김치를 곁들이니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단정한 밥상이 마련되었다. 


엄마 옆에서 종달거리던 소녀는 안동집안 종갓집 외아들한테 시집와서 종부가 되었고 회사 다니면서 제사와 집안 행사들도 악착같이 해내고자 했다. 매해 남편 생일이면 시댁 가족들을 초대해서 함께 밥상을 나누고... 엄마가 그래서 나도 그러는 건 줄 알았다.


이다음에 하늘에서 엄마를 만나면 "애썼다." 하며 안아주시면 좋겠다.

시원한 나박김치 한 수저 한 수저가 그저 엄마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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