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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san민산 Nov 04. 2022

김장날은 크리스피 크리미 먹는 날

- 우리 집 김장날

아무리 서두르고 간단하게 진행해도 김장거리를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일은 족히 3일 이상 품이 든다. 마지막 결제 버튼을 누르기까지 좋은 고춧가루 좋은 배추를 고르고 재료들을 찾아보는 것까지 포함한다면 계절이 오기 훨씬 전부터 김장 준비는 시작된다.


가족들 모두 잘 익은 김장 김치를 좋아하는 우리 집은 1년 동안 먹을 김치를 담는 날이라서 마치 중요한 의식을 치르듯 미리미리 체력 안배도 하고 월차휴가도 계획한다. 보통 80Kg 정도의 절인 배추를 구입해서 김장을 담는데 남자만 셋 있는 우리 집에서 주 가사 노동원은 나이기 때문에 묵묵히 묵묵히 할 뿐이다.


하기야 나에게 딸이 있었다 한들 특별히 더 많은 가사노동을 시키지는 않았을 테고 김치찌개, 김치볶음밥, 김치찜을 일 년 내내 즐겨먹는 우리 집에서 그저 엄마로서 기쁘게 해내는 연중행사이다.

사실 김장은 많은 시간과 수고뿐 아니라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올해 김장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 그래도 집안일을 살갑게 도와주는 남편이 언제나 든든한 파트너가 되어준다.


어느 해인가 형편이 몹시 힘든 상황에서 김장을 하고 있었다. 몸도 힘들지만 마음도 힘들었을 때 큰 아이가 크리스피 크리미 도넛 한 상자를 들고 와 무심히 내게 내밀었다.


"엄마가 좋아하는 거. 이거 드시고 힘내세요!"


도넛의 단 맛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내 안의 쓴 맛을 모두 사라지게 하는 무적의 에너지가 되었다. 그 후로도 매년 김장날이 되면 큰 아이는 크리스피 크리미를 들고 와서 노동에 지친 엄마를 위로해 주곤 했다.

큰 아이가 집을 떠나 자리를 잡게 되면서 도넛 조공은 끝났지만 김장날이면 언제나 남편과 아이들 이야기를 하며 추억을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해 분주하게 김장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고등학생이 된 늦둥이 막내가 크리스피 크리미 도넛을 들고 와서 쑥스럽게 내민다.


"엄마, 이거. 형이 없으니까 이제 내가 해야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기회이고 비결이기 때문에 이럴 때는 과하다 싶을 만큼 리액션을 해주어야 한다. 요란한 인사가 오고 가며 우리 집 김장날은 크리스피 크리미를 먹는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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