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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san민산 Aug 22. 2023

생애 첫 맥주와 함께

- 부추김치

해마다 봄부터 여름까지 자주 상에 오르던 계절김치는 단연 부추김치다.

지금은 밭에서 수확해 온 재래 부추가 귀해서 비싼 값을 주고도 시장에서 만나기 쉽지 않다.

세월이 흐르면서 부추도 서구화한 것인지 키도 크고 색도 진하고 식감도 튼튼하다.


내 기억에 부추김치는 길이가 짧고 부드럽고 연해서 잘 익었을 때 질긴 맛이 없고 어느 음식과도 잘 어울렸다.

그중에도 내 생애 처음으로 맥주를 마시던 날 곁들였던 부추김치가 단연 최고였다.


40년 전쯤 고등학교 3학년 때 학력고사를 마치고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때 

오빠는 "이제 대학생이 되면 술도 마실 줄 알아야 해." 하면서 종로 2가에 있던 OB광장이라는 생맥주 집에 데리고 갔다. 무슨 맥주집이 강당처럼 크고 시장처럼 시끌벅적했다. 

여동생 첫 술은 오빠가 가르치고 싶었는지 이것저것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래봐야 19살, 23살이 마주 앉아서.


주문한 생맥주와 훈제 족발 그리고 부추김치가 따라 나왔다.

마치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오빠는 내게 맥주를 권하고 폼나게 맥주를 들이켜면서  물었다.

"맛이 어때?"

"우엑, 써! 이걸 무슨 맛으로 먹어!"

"하하하" (이것은 지금 나의 웃음이다.)


아무튼 생애 첫 음주날 나는 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있는가 싶게 훈제 족발과 부추김치를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족발 맛은 잘 모르겠지만 부추김치만 세 번쯤 리필해서 오빠가 눈치를 주기도 했는데 그날의 부추김치 맛은 지금도 생생하다.


지난주에 근처 재래시장에 갔다가 '밭에서 수확한 부추'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키 작은 재래 부추를 보았다. 키 크고 튼튼한 부추보다 값은 무려 3배나 줬지만 한 봉지 담아와서 부추김치를 담갔다.

역시 그 옛날 추억을 소환할 만큼 맛이 좋았다.


훈제 족발 대신 훈제 오리를 굽고 잘 익은 부추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40년 전 무슨 맛으로 맥주를 먹냐며 호들갑 떨던 소녀는 이제 익숙하게 맥주에 소주를 말고 컵 정중앙을 젓가락으로 콱 내리꽂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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