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길이 아니라 머무는 길

내가 만드는 나만의 서울순례길

by minsan민산


순례길을 출발하기 전 우리나라 천주교의 역사와 성인들에 대해 먼저 간단하게 알아보기로 한다.

서울순례길은 그 길을 따라 초기 신자들의 순교 행렬이 이어지고 긴 시간을 거치면서 그것은 역사가 되어 오늘까지 고고히 흐르는 길이 되었기 때문이다.



● 이 땅의 천주교(Catholic) 이야기


우리나라의 가톨릭교회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신자들이 생겨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외부에서 들어온 선교사에 의해 전파된 것이 아니라 중국으로부터 들여온 여러 학문서들 사이에 천주교 교리책이 섞여 들어오면서부터 출발한다. 중국을 드나들던 역관들이 외국의 새로운 학문과 신문물을 들여오는 가운데 서학의 하나로 천주교 교리책이 섞여있었고, 그 책을 읽은 학자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세계관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특히 18세기 후반의 조선시대는 새로운 사상에 대한 관심이 크게 일고 있었고 중국을 통해 들어온 서양의 과학기술과 역법 등에 대한 호기심도 크게 작용하던 시기였다. 실학이 중요시되면서 과학적 발전도 이루어가던 때였다. 한문으로 번역된 서학서(西學書)를 통해 전파된 천주교 신앙은 조선 후기 다양한 사상의 흐름에 따라 널리 퍼져가게 되는데 특히 전통적인 유교사회였던 조선에서 양반과 상인 구분 없이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라는 교리를 당시의 기득권 계층에서 배우고 익혀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신앙의 싹을 키워가게 되었다.


천주교리에 감화된 사람들은 모여서 함께 성경과 교리를 읽으며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게 되는데 책에 실린 내용을 따라 신자들끼리 성사와 전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사제만 집전할 수 있는 성사가 있는데 그것을 알게 된 후 신자들은 조선으로의 사제 파견을 요청하게 된다. 자발적으로 모인 조선의 신앙공동체는 사제를 보내달라고 중국 교구에 서한을 보내고 곧 라틴어로 번역되어 교황청에 전달되는데, 약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애쓴 끝에 1794년 12월 조선 최초로 주문모 야고보 신부가 입국하게 된다.


우연히 읽게 된 교리서를 통해서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가 시작되었고 그 책을 읽고 나누며 신앙인이 되어갔으며 이제 혹독한 박해의 역사도 시작된 것이다. 놀라운 태동이다.


주문모 신부를 모시면서 신자들은 정식 세례를 받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었다. 1795년 4월 5일 부활대축일에 한국교회 최초의 미사가 거행되는데, 천주교에 대해 비교적 온건한 정책을 펴왔던 정조가 승하하고 11살 순조가 즉위하면서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시작하며 다시 정권을 잡은 노론 벽파는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 천주교 탄압을 시작하게 된다.


우리나라 가톨릭교회는 1784년 창설 이후 100년 이상 이어진 박해와 순교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역사에 크게 기록된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부터 1873년까지 이어진 병인박해를 거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김대건 신부님을 비롯하여 외국의 신부님들과 주교님들, 수많은 신자들이 처형되었다. 박해를 피해 깊은 산속에 숨어 살던 신자들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름 없는 순교자로 신앙의 유산을 전해주고 있다.


(좌)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님. (중)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성직자 주문모 신부님. (우) 우리나라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 베드로


한국교회 설립 200주년이었던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여의도 광장에서 진행된 시성식에서 103위 성인을 선포하였고, 2014년 광화문 시복식에서 프란시스코 교황은 124위의 복자를 선포하였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처음 우리나라에 도착한 후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무릎을 꿇고 땅에 입 맞추며 "순교자의 땅, 순교자의 땅" 하고 기도하셨다고 한다.



● 가톨릭교회의 성인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으면 나의 수호성인을 정하고 그 성인의 이름을 세례명으로 받아 신자들끼리는 서로 세례명을 불러준다. 성인이 살아온 신앙의 삶을 본받고 하늘에서는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청하며 성인의 축일을 생일처럼 서로 축하해주곤 한다.


나 역시 성당 교우들은 '모니카 ~' 하며 불러준다. 모니카 성녀는 이교에 빠지고 방탕한 생활을 하던 아들 아우구스티노를 주교 학자가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눈물의 기도를 드렸던 성녀이다. 아들을 키우고 있던 나는 내 아이가 아우구스티노 성인처럼 잘 자라주기를 바라면서 모니카 성녀를 나의 수호성인으로 삼았다.


우리나라에는 103위의 성인과 124위의 복자가 계시는데 성인 성녀는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그리고 성인과 복자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성인이 되는 시성 절차는 4 단계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교황청의 시성성에서 성인이 되기에 합당한 신앙의 모범과 기적 심사를 거친 후 성인으로 선포하게 된다.


먼저 성인으로 승인받기 위해 공식적인 심사의 대상이 되는 경우 '하느님의종'이라는 칭호로 부르게 된다. 그다음 교황청 시성성에서 하느님의종이 순교했거나 뛰어난 업적이 있다고 결정되면 '가경자'로 호칭하게 되고 가경자의 기적이 확인되면 '복자'로 시복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인(성녀)'으로 선포된다.



이 과정은 꽤 오랜 시간 이루어지게 되는데, 기해박해(1839)와 병오박해(1846) 때 순교한 82명에 대한 문서를 1847년에 교황청에 접수하여 첫 하느님의종에 대한 시복조사가 시작되었고 10년 뒤인 1857년 교황청은 조선 천주교회의 시복조사를 공식으로 접수한다고 발표함으로써 우리나라에서 첫 가경자가 탄생하게 된다.


이 가경자 중 79명이 1925년 첫 복자가 되었고, 이후 더 많은 순교자들의 시복신청을 통해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 가톨릭 교회의 첫 성인으로 103위를 선포하였다. 처음 하느님의 종이 되어 성인으로 선포되기까지 137년이 걸린 셈이다.


우리 신앙의 조상들은 하느님을 믿는 교인이라는 이유로 포도청에 투옥되고 배교를 강요받으며 고문을 당하고 형틀의 고통을 견디디가 서소문 밖 네거리, 한강변 새남터와 절두산 등에서 무수히 처형되었다. 한강물이 순교자들의 핏빛으로 물들었다고 한다. 남아있는 교우들은 늦은 밤 사람들의 눈을 피해 시신을 수습해서 산기슭에 매장하여 모시고 그 장소를 기억하여 돌보다가 또 발각될 위험이 닥치면 또다시 유해를 수습해서 더 안전한 곳으로 모시며 신앙을 지켜나갔다.


바로 이 순교자들이 잡혀가고 끌려가 고문당하고 처형되었던 박해의 여정이 서울순례길이다.


특히나 2018년 아시아 최초로 교황청이 인정하는 국제 순례지로 선포되었고 순교자를 기리는 9월, 순례자 여권에 24곳의 방문스탬프를 모두 찍으면 보람찬 축복장을 받을 수도 있다. 유튜브 영상에서 본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자들의 벅찬 마지막 표정이 나의 순례를 꿈꾸게 했는데, 내가 걸었던 서울순례길을 마치고 축복장을 받아 든 나 역시 한동안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그 길을 함께 걸으며 함께 머물고자 내 걸음을 보탠다.






9월 순교자성월에 진행되는 ‘9월愛 동행’ 프로그램을 따라 서울순례길을 걷기로 했다. 이 순례길은 나만의 길로 다듬고 계획해서, 걷는 길이 아니라 머무는 길로, 마쳐야 하는 일정이 아니라 시간에 스며드는 여정으로 머물고자 했다. 그래서 이 순례의 길을 시작하며 몇 가지 나만의 원칙을 정해 놓고 길을 나섰다.


첫째, 고백성사를 본다.

이 길을 나서며 나를 비우는 청원을 담아 출발했다. 그러니 길 위에서 만나게 될 수많은 순교자들에게 갖추는 나의 정결예식이 필요했다. 미움과 원망, 어둠으로 힘들었던 나는 그래서 눈물 콧물 다 쏟으며 순례길을 시작했다.


둘째, 매 순례길에 반드시 미사에 참례한다.

바로 오늘 만난 순교자와 함께 그날에 머물고 싶었다. 순례자 여권에 도장만 찍고 스쳐 지나가기보다는 하늘에 계신 순교자들과 이 땅 위에 서있는 내가 통공의 기도 속에 함께 머무는 시간을 갖고자 했다. 성지에 따라 허락되는 미사 시간이 달라서 한 달 넘는 시간이 걸렸지만 참 좋았다.


셋째, 걸어도 좋고 지하철을 타도 좋고 다 좋다.

굳이 도보 순례를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 한 여름 폭염 속에서 시작하기도 했지만 매일 미사 참례를 기준으로 일정을 계획하다 보니 서둘러 도달해야 할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미사 안에 머물고 그곳에 서린 순교자의 얼에 머물면 그만이었다. 상황에 따라 걷기도 하고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면서 나만의 순례가 시작되었다.



● 순례자 키트


첫 방문지였던 명동성당 역사관에서 살뜰한 순례자 키트를 구입하고 첫 발을 시작한다.

‘9월愛 동행’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순례자들을 위한 준비물 키트. 하얀 파우치 안에는 천주교 서울순례길을 설명하는 소책자와 순례지 24곳의 스탬프를 찍는 순례자 여권, 순례 지향 카드, 기념 와펜과 손수건이 들어있다. 명동성당 역사관, 절두산성지, 서소문밖네거리성지, 당고개순교성지, 새남터순교성지 등 대표적인 순례지에서 구입할 수 있고 구입비는 7천 원 이상 자유롭게 봉헌하는데 약 3천3백여만 원이 모여 지난 9월 25일 순교자성월 닫는 미사 중 이주 모자가정을 위한 후원금으로 전액 바보의 나눔 재단에 기부되었다.

9월 행사 만이 아니라 연중 내내 순례자 여권을 가지고 순례길에 오를 수 있도록 상시 보급되면 좋겠다.



● 천주교서울순례길


서울순례길은 모두 3개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순례 여권에 도장을 채우는 것이 목표라면 부지런히 움직여서 3일이면 완주할 수 있는 코스이다. 그러나 성지마다 미사에 참례하고 전시관이나 순교의 발자취를 살피고 머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면 성지 성당에 하루씩 머무르는 것을 추천한다.


온통 회사와 일에 대한 생각들로 머리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는데 내가 머문 시간들이 기도가 되고 순교 성인들과의 만남이 통공이 되어 순례가 끝나고 나서 그 자리는 벅참과 감사로 채워지고 있었다.



[1코스 말씀의 길]

한국 천주교의 시작을 살펴보는 길이다. 한국 최초의 희생자로 기록된 김범우의 집터와 천주교 세례식이 처음 거행된 이벽의 집터를 들러보며 길을 시작한다.


명동대성당(명동주교좌 성지성당) - 김범우의 집터(장악원 터) - 한국 천주교회 창립 터(이벽의 집 터) - 좌포도청 터 - 종로성지성당 - 광희문 성지 -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 석정보름우물


[2코스 생명의 길]

천주교 박해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다. 처형장으로 순교하러 가는 길이며 동시에 영원한 생명을 얻으러 가는 길이다.


가회동 성당 - 광화문 124위 시복 터 - 형조 터 - 의금부 터 - 전옥서 터 - 우포도청 터 - 경기감영 터 -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3코스 일치의 길]

서울의 대표적 순교성지를 잇는 길로 순교자들의 피와 기도 속에 지금의 내가 함께 일치해보는 길이다.


중림동 약현성당 - 당고개 순교성지 - 새남터 순교성지 - 절두산 순교성지 - 노고산 성지 - 용산 예수성심신학교 - 왜고개 성지 - 삼성산 성지



나의 순례길은 위의 코스 순서대로 진행하지 않았다. 순교성지들은 마지막으로 하루에 한 곳 씩 방문하여 머물렀고, 그 외에는 미사에 참례하고 근처 교회 사적지를 방문하는 일정으로 나만의 순례 일정을 다시 만들었다.


성지성당에 따라 어느 곳은 한 달에 한 번 미사가 있는 곳도 있고 성당마다 미사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미사 시간에 맞춰 일정을 다시 짜면서 차질 없이 완주하기를 기도하며 순례를 마칠 수 있었다.


자, 이제 나의 옆에서 함께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순례길에 부디 함께 동행해 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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