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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민석 Oct 10. 2023

늙은 개

나보다 먼저 태어난 그를 기억하다.


 늙은 개를 본 적이 있는가?


 축 처진 채로, 숨을 헐떡이는 그 개를 본 적이 있는가? 어린 내가 처음 경험한 생과 사의 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작아서 두 손에 담길 것 같던 강아지였다. 나보다 일 년 먼저 태어났던 그는 어린 나와 자주 만나 시간을 보냈다. 그의 크기와 나의 크기가 동일했던 적도 있었고, 그가 자던 쿠션에 내가 엎드려 잠을 잔 적도 있었다. 아주 어렸던 시절의 나는 그가 너무나 크게 느껴졌었다.


 그렇게 열 두 해가 지났다. 나는 어린이가 되었고, 그는 노견이 되어 있었다. 나이가 먹어 예전과 같지 않다는 이야기를 처음 듣고 세 해가 지났었다. 나도 그의 반려인도 퍽 바쁜 나날을 보냈기에 12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그를 만나지 못했었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의 반려인과 그가 우리집에 방문했다. 그는 이제 걷기가 힘들어 반려인의 품에 안겨 있었다. 반려인은 어두운 내 방 책상 밑에 방석을 깔고 그를 앉혔다. 나는 말없이 그를 처다 보았다. 그는 나와의 기억을 추억할까?


 그는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버티고 있었다. 쏟아질 것 같은 눈망울로 그는 나를 바라보고는 다시 버티기 시작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그는 아주 치열하게 버티고 있었다.

 축 처진 채로,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았다. 짧은 호흡을 내쉬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 또한 그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는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사랑하던 반려인의 품에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모두들 슬퍼했다. 그의 반려인과 나의 아버지, 누이는 연신 눈물을 훔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만치 나는 눈물을 흘리거나 애석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블록을 조립하는 일에 몰두했다.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게 여겼지만, 나는 그의 눈에서 쉼 없이 버티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에 슬퍼할 수 없었다. 그 작은 강아지는 분명히 떨고 있었다. 죽음이 두렵다는 듯이 떨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인간처럼 덧없는 삶의 미련이나 지나가버린 것에 대한 후회 따위 때문에 죽음 앞에서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평생을 함께한 반려인과의 추억과 그 삶 속에서 느낀 사랑을 지키기 위해 두려운 죽음과 맞서고 있는 것이었다.


 백내장이 껴 희끗해진 그의 눈과 헐떡이는 숨, 떨고 있는 몸에서 나는 반려인을 지키고 싶어 하는 처연한 마음을 보았다. 그렇기에 나는 슬퍼할 수 없었다.


 반려동물과 반려인 사이에 무엇이 있기에 그럴 수 있을까? 사랑이다. 사랑 이외에는 그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다. 사랑이었다.


 내게 처음으로 죽음과 사랑을 알게 해 준 그 가을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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