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유독 선명해지는
<30일간의 글쓰기 여정> DAY 7 밤
DAY 7 밤_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선명해지는 것에 대해 써보세요.
해가 밝게 비추고 있는 낮과 달리 밤은 서서히 해가 지고 깜깜해진다. 그런 밤이 되어서야 비로소 선명해지는 건 무엇일까. 주제를 마주하고 있는 지금 노트북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쉽게 써지지 않는 글감이다. 밤이라.. 밤이라..
잠이 많은 나에게 밤을 보내는 시간이 많지 않다. 해가 지고서 3~4시간 후에 잠들기 때문에 낮에 비해 굉장히 적은 시간을 밤에 보내고 있다. 그런 나에게 밤마다 선명해지는 게 있긴 있다. 바로 계획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람들을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니다 집에 들어온다. 운동할 채비를 가지고 나선다. 돌아와 씻고 저녁을 먹는다. 그러면 어느새 밤에 내가 놓여있다. 내일 해야 할 일을 천천히 가늠한다. 일정을 확인해 일간, 주간 계획을 더듬는다. 당장 내일 해야 할 일을 카카오톡 나와의 채팅에 1, 2, 3 번호를 붙여가며 써놓는다. 내일 아침, 포스트잇에 정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낮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고서 하루와 일주일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밤이다. 밤에는 비로소 계획이 선명해진다.
또 나의 감정이 선명해진다. 오늘 누구를 만났고, 어떤 대화를 나눴고, 어떤 일이 있었고. 바깥세상의 소음이 내면에 차곡차곡 쌓인다. 차분이 가라앉은 고요한 밤, 뒤죽박죽 섞인 소음이 게워내듯이 쏟아진다. 누구를 만났을 때 내 기분이 좋았는지, 떨떠름했는지 비로소 밝혀진다. 대화를 복기할 때 내가 가식적으로나 피상적으로 참여했는지, 진심으로 즐거워했는지 비로소 밝혀진다. 나에게 닥친 여러 일 중에 아쉽게 대처한 상황과 적절하고 의연하게 대처한 상황이 비로소 밝혀진다. 그렇게 낮 동안에 벌어진 일의 진상이 밝혀지는 시간이 밤이다. 몰아치는 사람과 사건 사이에서 내 감정을 오롯이 느끼기 어렵다. 그래서 고요한 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밤에는 비로소 감정이 선명해진다.
마지막으로 추억이 선명해진다. 바쁜 일과를 보내고 귀찮아 운동을 가지 않을 때 하루 만보라도 채우려고 한다. 그래서 억지로 나가 조금이라도 걷고 들어온다. 그렇게 마련된 운동과 사색의 시간, 나는 추억에 잠긴다. 지나가는 커플을 보면 만났던 사람이 떠오르고,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을 보면 운동장에서 무릎 까져가며 자전거를 배웠던 때가 생각나고, 피곤한 얼굴이지만 옅은 미소로 자식에게 통화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 우리네 아빠가 스쳐간다. 그렇게 추억에 잠길 때면 잠깐 고민한다. 전화를 할까 말까. 긴 고민 끝에 연락처에 이름을 검색한다. 오랜만에 눌러본 이름에 설레면서도 통화가 어색할까 두려워진다. 떨리는 목소리로 읊조린 여보세요-로 대화가 시작된다. 짧게는 3분, 길게는 20분의 통화를 마친다. 밤이 되면 추억이 밀려오면서 오랜만에 목소리가 듣고 싶어 진다. 잘 살고 있을까, 그때 그 일을 기억할까, 지금은 뭘 하면서 지내고 있을까. 통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밤에는 비로소 추억이 선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