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머릿속에는 자꾸만 한 문장이 맴돈다.
‘그 사람이 무례한 걸까, 아니면 내가 예민한 걸까?’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대화를 주고받다가 문득 침묵이 흐르는 순간에, 그 말이 다시 떠올라 스스로에게 묻곤 한다. 최근 만나는 사람들의 태도가 이전과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누구보다 배려심 깊었던 언니는 요즘 목소리가 커지고 잔소리가 늘었다. 상황이 바뀔 수 있고, 사람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하지만 상황에 맞춰 조심해야 할 선이 있다는 것, 그것 역시 분명한 사실이다.
며칠 전, 오랜만에 참석한 모임에서 나는 그 선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그날 내 앞의 사람은 유난히 감정의 스위치를 켜고 끄듯 행동했다. 좋다고 했다가, 갑자기 싫다고 하고, 웃다가 언성을 높이고, 농담처럼 던지는 말속에 무시가 섞여 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 말을 멈추고, 멍하니 그 사람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이런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혼란이 밀려왔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사람이 말했다.
“너한테 제일 편하고 친해서 그러는 거야.”
하지만 그 말은 내 마음을 전혀 달래주지 못했다. 오히려 더 반감을 일으켰다. 편하다고 해서, 가깝다고 해서, 함부로 굴어도 된다는 뜻일까? 관계가 오래되었다고 해서, 선을 넘어도 이해해야 한다는 의미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느낀다.
어떤 관계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고, 서로가 존중해야 할 경계가 있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소리치고, 충고라는 이름으로 지적을 쏟아내며, 말투에 무시를 담아도 괜찮은 건 아니다. 그런 행동은 친함이 아니라 무례함이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그런데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또 “예민하다”라고 말한다. 마치 내 감정은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취급되는 것처럼.
무례함을 당했을 때 화가 나는 건, 예민함이 아니라 정상적인 감정이다.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듯, 존중받고 싶은 마음도 당연하다. 그런데 돌아보면, 이 문제는 그 사람 한 명에게만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내 시간을 양보하고, 기분을 맞춰주고, 불편한 마음이 들면 “괜찮아, 그냥 넘어가자”라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렇게 나 스스로 푼 올가미에 다시 내가 걸려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나는 관계를 천천히 정리하고 있다.
불편함이 반복된다면 이유가 있고, 이유가 분명하다면 변화가 필요하다. 친하다는 이유로 무례함을 감싸주는 관계라면, 그건 더 이상 ‘가까운 관계’가 아니다. 나를 지치게 하는 관계라면, 지금이 바로 놓아줄 때다.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란 서로의 영혼에 평온을 가져다주는 사람이다.”이라고.
평온을 빼앗기고 있다면, 진짜 가까운 사람인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경계는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누군가의 감정에 휘둘리거나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내 감정을 스스로 무시하지 않기 위해, 나는 나만의 경계를 세우고 싶은 것이다.
지금 나는 조금씩, 천천히,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을 내려놓는 중이다. 선명한 경계를 세우고, 내 감정에 솔직해지고, 나를 존중하는 관계를 선택하는 중이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무례한 사람을 견디는 것보다, 나 자신을 지키는 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