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장 바나에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말보다 침묵이 더 필요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대화는 오가지만 배려는 없는 자리, 듣는 이는 없고 말하는 사람만 가득한 모임.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풍경 속에 앉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지키고는 있지만, 마음은 점점 멀어지고 공허해지는 순간들 말이다. 나 역시 그 풍경 속에서 자유롭지 않다.
상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경험을 꺼내고,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말을 덧붙이며, 어느새 대화의 중심에 서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많다. “나는 잘 들어주는 편이야”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지만, 돌아보면 말의 양은 늘 내 쪽이 더 많다. 고치려고 마음을 먹어도 쉽지 않다. 입은 생각보다 빠르고, 습관은 생각보다 단단하다. 문득 궁금해진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말을 많이 하게 되었을까.
결혼 전의 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날카로운 인상에 말수가 적었고, 표정도 많지 않았다. 오히려 말 많은 사람들을 부담스러워하며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곤 했다. 조용한 것이 좋았고, 혼자 있는 시간이 편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말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유는 분명하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을 더 많이 만나게 되었고, 관계 속에서 역할도 늘어났다. 아내로, 엄마로, 선생님으로, 대표로 살아가며 설명해야 할 말, 설득해야 할 말, 책임져야 할 말들이 자연스럽게 쌓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말을 하다 보니, 말은 점점 습관이 되었고 침묵은 연습이 필요한 일이 되었다. 그래서 요즘 나는 다시 ‘덜 말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내 말의 속도를 돌아보고, 글을 쓰며 스스로를 반성한다. 일부러 혼자 있는 시간을 늘리고, 사람을 만나도 해결하려 들기보다 들어주려 애쓴다. 하지만 여전히 쉽지는 않다. 듣는다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참아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상대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힘을 요구한다.
오늘도 나는 완벽한 경청자는 아니다. 여전히 말이 많고, 여전히 실수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사랑은 더 잘 말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 덜 말하고, 조금 더 귀 기울이는 그 순간에서 관계는 다시 따뜻해진다는 것을. 그래서 내일도 나는 연습할 것이다. 말을 줄이고, 마음을 열고, 침묵을 존중하는 연습을. 그것이 내가 선택한, 가장 느리지만 가장 진실한 사랑의 방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