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는 관대하면서, 스스로에게는 너무 인색하지 않은가?”
나는 이 문장을 받아 들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왜냐하면 나는 살아오면서 누군가에게 인색하게 굴어본 적은 거의 없었지만, 정작 나 자신에게는 너무 냉정하고 까다롭게 살아왔다는 사실을 그제야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아마도 내가 보고 자란 삶의 방식이 나를 그렇게 만든 것 같다. 누군가에게 베푸는 것이 당연했고, 양보하는 것이 익숙했고, 먼저 손 내미는 사람이 되는 것이 어른스러운 태도라고 믿었다. 그렇게 살아온 내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나이가 들수록 깨닫게 되는 것이 있다. 주는 삶이 언제나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나는 타인에게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예의를 지키고, 선을 넘지 않고, 법 없이도 살 수 있을 만큼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무조건 옳았던 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내 마음이 편했기 때문에, 나는 늘 그 방향을 선택해 왔다.
물론 세상에는 나의 선의를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친절을 부담으로 느끼고, 누군가는 호의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또 누군가는 그 마음을 오히려 경계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마음을 고맙게 받아주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애써 쌓아 올린 친절과 배려는 결국 세상에 오래 남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되지 않는 선행이 더 많았고, 사람들은 내가 준 것들을 생각보다 쉽게 잊었다. 그 사실이 서운했다기보다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가 타인을 위해 쏟았던 시간과 마음을 나는 정작 나를 위해서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다는 것을.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좋은 음식, 좋은 시간, 좋은 이야기들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정작 나는 나 자신에 대해 너무 몰랐다.
내가 좋아하는 색이 무엇인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취미를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물건을 보면 마음이 편해지는지. 그런 것들은 늘 사소한 일로 치부했다.
필요할 때만 잠깐 생각해 보고, 다시 타인의 삶 속으로 들어가 바쁘게 살아갔다. 마치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 아니라 누군가의 조연으로 살아가는 사람처럼. 그러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던 걸까.
나는 어디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걸까. 내가 나를 인지하지 못한 채 타인의 시선에만 집중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돌아보면, 나는 늘 누군가의 기분을 살폈고 누군가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과정에서 나의 마음은 계속 다치고 있었다.
나는 나에게 너무 인색했다. 나는 나를 위로하는 일에 서툴렀고, 나를 칭찬하는 일에는 인색했으며, 나를 사랑하는 일에는 늘 뒤로 미뤄두었다. 이제는 조금씩 생각이 바뀌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를 지키는 일이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를 아끼는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진짜로 타인도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이제 나를 찾아가는 연습을 하려 한다.
나를 알아가는 기회를 만들고, 나를 사랑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삶을 살아내고 싶다. 나는 앞으로
타인을 위해서만 살아온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도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전에 나에게 먼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지금 이 나이에 새롭게 배우는 가장 중요한 삶의 태도다.
“남을 사랑하듯 자신을 사랑하는 것,
그것이 인생의 가장 어려운 숙제다.”
_오스카 와일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