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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경 May 09. 2024

#8. 소리 없는 눈물

난 소리 없이 울기 달인이다. 


   “지금 울었어? 울고 있었어?”


남들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흘리는 도둑 눈물.

혹여 울더라도 엉엉 소리 내지 못하는 마음에 맺힌 눈물.     


그 겨울, 그날 이후 난 소리 내며 울지 못했다.


출산 전까지 슬픈 감정을 드러낼 수 없었다.

달콩이는 비록 심장이 멈췄더라도 알콩이의 심장은 강하게 뛰고 있었고,

둘이 한 공간에 함께 있었기 때문에

   ‘건강하게 출산하자’

라는 일념으로 긍정적인 생각만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사실 눈물이 차올라 감정에 휩싸이게 되면 어김없이 배가 뭉쳤고,

알콩이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갈 것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슬픈 생각은 하지 말아야지 하며 애써 슬픔을 감췄다.


온갖 애교를 피우고 껌딱지처럼 내 옆에 붙어있는 첫째의 영향도 컸다.

첫째와 함께하면 슬픈 생각은 잠시 잊을 수 있었다.


출산 후, 병원에서도 4인실을 썼기에 슬픔을 오롯이 표현할 수 없었고,

그렇게 슬픔을 묻어두고 아기는 병원에 남겨둔 채,

조리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는 신랑과 함께였지만, 조리원에서는 오롯이 혼자였다.

신랑은 일상으로 돌아가 회사에 출근해야 했고,

오랫동안 부모와 떨어져 이모, 할머니와 시간을 보내야 했던 첫째가 걱정되기도 했기에

퇴근하며 조리원에 들렀다가 집으로 향했다.


처음 조리원 투어를 했을 때, 쌍둥이 출산 예정으로 등록되어 있던 내가

아이는 한 명만 태어나고 그 아이 역시 병원에 두고 혼자 조리원에 입소하니

조리원 선생님들은 최대한 조심성이 있는 친절함으로 나를 대했다.


그래서 나의 방 역시 신생아실과는 거리가 있는, 복도 끝 쪽 방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침-산후마사지-점심-병원면회-간식-저녁-수면.

    사이사이 몇 시간 간격의 유축.


첫째 때는 조리원 동기도 만들고 다른 산모들과 교류도 했었는데, 그럴 힘이 없었다.

혼자 조리원에 있어도 하루의 시간은 쉴 틈 없이 부지런히 흘러갔고,

저녁이 되면 신랑과 단둘이 티비를 보며 여유를 즐기니

나름 슬기로운 조리원 생활을 했던 것 같다.

     



어느 날.


신랑이 곧바로 집으로 퇴근하게 되어 종일 혼자 있게 된 그때.


고요한 적막과 불안의 그림자가 온 방을 휘감고,

숨을 쉴 수 없는 외로움이 몰려오던 그때.


때 딱 한 번.


세상이 떠나가라 엉엉 소리 내며 운 적이 있었다.

그때가 소리 내며 울었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신생아들이 응애응애 울 때, 나 혼자 구석진 방에서 엉엉 울었다.


알콩이를 지켜달라는 부탁이 미안해서.

또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온몸이 굳는 것처럼 울었다.


그동안의 켜켜이 쌓였던 슬픔이 한꺼번에 폭발되어 터져 나왔다.


     그러면.

     그렇게 슬픔을 표현하면.

     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모유가 나오지 않았다.

숨이 멎을 것 같았던 그 슬픔이 모유도 멎게 했다.


그제야 알콩이 생각이 났다.

사실 출산 전까진 알콩이 생각으로 버텼었는데,

출산하고 나서는 달콩이가 떠났다는 슬픔에

알콩이를 온전히 축복하고 알콩이에게 집중할 수 없었다.


    이제는 알콩이를 위해 힘을 내야만 했다.

    난 엄마니까.

    그렇게 달콩이를 내 마음에 묻어두었다.      




알콩이가 퇴원해서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더더욱 슬픔을 겉으로 표현할 수 없었다.


너무도 예쁜 우리 아기.


눈, 코, 입, 귀, 손가락, 발가락, 머리카락

그 무엇도 빠짐없이 예쁜 우리 아기.


그렇게 알콩이를 바라보고 있자면 그저 눈물이 났다.


소리 없는 눈물.

그냥 나만 흘렀다가 슥 닦으면 모르는 눈물.


    '우리 달콩이도 이렇게 예뻤겠지?'


비어있는 알콩이의 옆자리를 보면 형용할 수 없는 외로움과 슬픔이 몰려왔다.

렇게 매일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나의 고요한 눈물을 알아차린 건 첫째였다.


첫째는 동생이 집에 오니 매우 좋아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동생 얼굴을 보고, 동생에게 장난감을 보여주고, 춤도 추면서 누나가 된 기쁨을 만끽했다.

재미있는 표정과 행동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났다.


첫째는 그런 내 모습을 좋아했고, 나의 표정을 살폈다.

웃고 있지만 슬픈 눈을 하는 엄마가 걱정되는 마음에 그러지 않았을까.


본인도 당연히 동생 두 명이 집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한 명만 만나게 되었으니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둘째 젖을 먹이고, 재우며 몰래 눈물을 흘리던 어느 날.

그 모습을 딸에게 딱 들킨 적이 있었다.


     “엄마. 왜 울어?”

     “응? 엄마가 언제 울었다고 그래. 안 울었어”

     “아니야. 엄마 눈이 빨간데.”


또다시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에 더는 속일 수 없어 말했다.


     “엄마는. 달콩이 생각이 나서.

       달콩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래서 눈물이 나나 봐.”


    “엄마. 엄마가 그랬잖아. 달콩이는 하늘에 별이 되었다며.

     그럼 하늘을 쳐다보면 되겠네~”  

    



한번은 딸의 치과 치료를 위해 둘만 치과로 향하던 길이었다.

한강 다리를 건널 때 보이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새파란 하늘에 하얀 뭉개구름.


무엇이든 이루어질 것 같은, 무엇이든 잘될 것 같은 하늘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야 하는데 눈물이 났다. 

다행이 뒷자리에 앉아있는 딸은 나의 눈물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게 혼자 도둑 눈물을 흘리며 운전하고 있던 그 순간, 딸이 말했다.


    “엄마~ 하늘봐봐. 진짜 이쁘다!

     달콩이가 이번에는 구름으로 우리한테 왔나봐~”       




나에겐 달콩이를 생각만 해도 슬프고 마음이 힘든데

첫째딸에 달콩이란 만날 수는 없어도 충만하고 행복한 느낌을 주는 그런 존재였다.


그날 이후, 나의 마음은 점차 나아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을 흘리던 횟수는 하루 한 번으로 줄었고,

그 하루 한 번이 일주일에 두세 번으로 줄었고,

한 달에 몇 번으로 줄었고,


그렇게 점차 나아져 갔다.


달콩이를 떠나보낸 후부터 우리 집의 금기어는 달콩이었는데

첫째 딸로 인해 우리 곁에 없지만 늘 우리와 함께하는 존재가 되었다.


지금도 딸은 달콩이에 대한 이야기, 동생이 쌍둥이었다는 이야기를 불편해하지 않으며 말한다.

엄마인 나조차도 꺼내놓지 못하는 달콩이를 누나가 잊지 않고 기억 해주니


나의 첫째딸에게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가을에 곡식들을 비추는 따사로운 빛이 될게요.

겨울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눈이 될게요.

아침엔 종달새 되어, 잠든 당신을 깨워줄께요.

밤에는 어둠 속에 별 되어 잠든 당신을 지켜줄께요.


나의 사진 앞에 서 있는 그대.

제발 눈물을 멈춰요.

나는 그곳에 있지않아요.

죽었다고 생각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천개의 바람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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