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중환자실(NICU)
오후 1시가 다가오면 한명 두명 사람이 모이기 시작했다.
슬프지만 강한 엄마의 눈빛을 장착하고,
서로의 눈이 마주치면
‘괜찮아요. 다 잘될 거예요.’
라는 눈빛을 주고받는 그곳은
신생아중환자실(NICU) 문 앞이다.
태어나자마자 따뜻한 엄마 품이 아닌,
낯선 곳으로 가야 하는 아기들.
그리고 그 아기들 걱정에,
아기만 건강하게 자라면 된다는 생각에,
본인의 산후조리는 뒤로 미룬 엄마들.
그렇게 고요한 의지가 느껴지는 곳에서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신생아중환자실 문이 열리면
세상의 그 어떤 바이러스도 가지고 들어가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손을 깨끗하게 씻고,
소독 가운을 입고 아기 만날 준비를 한다.
안쪽 문이 하나 더 열리면
드디어 아기와 만나는 시간.
아기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채,
각자의 인큐베이터 안에서 다양한 영양과 성장에 도움이 되는 기계의 도움을 받으며 자라고 있었다.
알콩이는 태어나자마자 신생아중환자실로 향했다.
정말 감사하게 알콩이는 태어나자마자 미약하지만,
자가호흡을 할 수 있었다.
붉고, 작고, 소중한 우리 아기.
고작 40cm도 되지 않는 작은 몸.
발에는 링겔이, 눈에는 황달 치료를 위한 가림막이,
코에는 호흡을 도와주는 인공호흡기가, 입에는 수유줄이
작디작은 아이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아무리 간호사 선생님들의 따뜻한 보살핌과 인큐베이터가
세상에 조금 일찍 나온 아기들을 좋은 환경으로 키워준다고 하더라도
엄마 배 속, 엄마 품만큼은 아닐 테니
아이를 그곳에 두고 오는 엄마의 심정은 오죽할까.
그저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 한 번씩 만나는 아기를 생각하여 열심히 모유 유축하고,
모유를 먹어주기 바라는 마음으로 병원에 가져다주는 것뿐이었다.
알콩이는 다른 아기들에 비해 건강한 편이었다.
신랑은 출산 직후 신생아중환자실로 향하는 알콩이를 보며
피부는 붉다 못해 빨갛고, 온갖 기계를 달고 가는 우리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정말 감사히도 알콩이는 출산 후 시행된 다양한 검사에서
심장에 구멍이 있긴 했지만, 크게 걱정할 건강상의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달콩이가 하늘에서 도와준 것이 분명했다.
비록 몸무게가 빠졌고,
분유 및 모유를 소화하기가 어려워 몸무게가 좀처럼 늘지 않아서 입원의 시간이 길어졌지만,
몸을 감싸고 있던 기계들이 하나둘 사라져갔다.
나의 아기를 만나러 가는 동안 다른 아기들을 지나쳐야 했는데
그중 한 아기가 계속 눈에 밟혔다.
얼굴부터 발 끝까지 너무도 작고 붉은 피부.
신생아중환자실 안에서 가장 작은, 가장 많은 기계의 도움을 받는 아기였다.
그 아기를 본 첫 생각은
‘살 수 있을까..?’
두 번째 생각은
‘아기는 이렇게 작아도 살기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을까?’
세 번째는
‘우리 달콩이도..
그때 태어났더라면 딱 이렇게 작았을 텐데.
그때 태어났으면 지금 살고 있을까..?’
무엇이 정답인지는 모른다.
장애나 질환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고,
또 아무 문제 없이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고,
태어난 후 아픔만 경험하다가 세상을 떠날 수도 있고..
한동안 태어나서 더 힘든 삶을 살 수 있기에
뱃속에서 미리 하늘나라로 갔을 거야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태어나면 좋았을걸.
아무리 작더라도,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더라도,
그 어떤 상황에 오더라도
살아있다면. 살 수 있었다면 좋았을걸.
내가 가보지 못한 길 앞에서 '그때 그랬으면' 이라는
수많은 후회와 자책이 내 마음에 송곳이 되어 날카롭게 찔러댈 뿐이었다.
알콩이의 퇴원이 가까워져 모유 수유 연습하게 되었을 즈음,
신생아중환자실 앞 대기실에서 나와 같이 매일 그 자리에서 기다리던 한 엄마와 대화하게 되었다.
매일 얼굴을 본지는 꽤 되었지만,
다른 사람과 소통할 힘이 없었던지라 2주나 흐른 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엄마는 내가 늘 눈에 밟혔던,
매우 붉고 작지만 온 힘을 다해 살아가고 있었던 가장 작은 그 아기의 엄마였다.
그 아기는 세쌍둥이 중 한 아기였다.
세쌍둥이를 품고 있던 엄마는 26주에 조기진통이 왔고,
그렇게 세쌍둥이들은 세상에 너무도 일찍 나오게 되었다.
가장 작은 아기의 몸무게는 600g 정도였다고 했던 것 같다.
“이제 모유 수유 연습하시는 거죠?
이제 곧 퇴원할 수 있나 봐요.
우리 아기들은..
아직 언제 퇴원할지 알 수가 없네요.”
“다행히. 태어날 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정말 감사하게도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어요.”
라며 곧 퇴원하는 우리 아기와 하늘의 별이 된 달콩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니큐에 면회를 할 때마다 항상 눈에 밟히던 아기가 있는데 그 아기의 엄마시군요.
아기 볼 때마다 달콩이가 태어났으면 이렇게 작았겠지 생각했어요.
세상에 일찍 나와 힘들겠지만,
그래도 저렇게 살기 위해 애쓰는구나.
아기의 삶에 대한 의지가 너무 대견하다.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다.
늘 생각하고 기도했어요.
아기들 건강하게 잘 자라고 퇴원할꺼니까
걱정마세요.”
서로의 이야기가 오고 간 그 자리의 공기가 숙연해졌다.
누가 더 힘든지 누구의 상황이 더 슬픈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하늘의 별이 된 아기와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맞서 싸우고 있는 아기들.
그리고 그 엄마들.
모두에게 평안과 행복이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일찍 태어난 아기들은 미숙아 망막검사를 필수로 해야 했기에 병원을 방문했다.
그렇게 찾게 된 병원 안과에서 세쌍둥이 엄마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아기들이 태어난 시기가 비슷했기에 또 만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세 아이 중 한 아이는 퇴원해서 병원 안과 외래를 온 것이고,
두 아이는 아직 신생아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라고 했다.
그중 한 아이는 결국 기관절개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걱정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을까 걱정 속에서도
세쌍둥이 엄마와 나.
우리의 대화에는 희망이 오고갔다.
사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가 하늘로 간 아기들도 있기에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하고 있는 우리였다.
아기들이 아직 아프긴 하지만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 생명의 의지가 있지 않냐며,
다 잘 될거라고.
아기들은 건강하게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굳은 희망의 의지를 다지고 우린 헤어졌다.
4살 크리스마스를 앞둔 겨울.
코로나도, 독감도 아닌 지독한 코감기에 걸려 2주째 열이 떨어지지 않아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된 적이 있었다.
태어났을 때 입원하고,
그 이후 입원으로는 처음 마주하게 된 병원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세쌍둥이의 엄마를 다시 만났다.
어느덧 아기 시절을 벗어내고 유아로 접어드는 우리 아이들을 보니,
아파서 입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너무 많이 컸다며 기특하다며 반가운 재회를 했다.
사실 안과에서 만났을 때, 전화번호를 공유했던 터라
서로의 카톡으로 아이들의 근황과 성장 과정을 볼 수 있었기에
실제로 만났을 때 더 반가운 마음이 컸던 것 같다.
세쌍둥이 아이들,
그리고 나의 아이.
비록 또래보다 느리긴 해도,
작아도,
질병이 있어도
모두 저마다의 속도대로 열심히,
더 멋진 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커갔다.
그리고
엄마라는 이름의 그릇도 커졌다.
세상에 일찍 나왔지만
삶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모든 아기들과,
그 아이들의 여정을 묵묵히 옆에서 지켜봐주고 지지해주는
모든 엄마들에게
우린 충분히 잘하고 있다고.
다 잘 될꺼라고.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꺼라고.
그렇게 서로 응원을 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