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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돌의 책 글 여행 Feb 05. 2023

무엇이 진짜 부모의 사랑일까

심윤경, <설이>, 한겨레, 2019



원장님이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나를 꺼낸 그 일에는 사람들이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중요한 지점이 있었다. 그때 내가 운 덕분에 반대로 세상은 부끄러움을 조금 덜었다는 점이다. 예쁜 옷을 입은 아기가 음식물 쓰레기통 속에서 얼어 죽은 채 발견되었다면 이 세상은 지금보다 좀 더 부끄러운 곳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예쁘고 아무 생각 없는 별이 되는 대신 피곤하고 부끄러운 유기아동이 되어서 세상의 몫이 되어야 마땅할 창피함을 대신 짊어졌다.(p.26-27)



   함박눈이 내리는 새해 첫날 새벽, 갓난아이 설이가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발견된다. 12년 전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구조한 풀잎보육원 원장의 품에 안긴 채 갓난아이 설이는 TV 전파를 탄다. '피곤하고 부끄러운 유기아동'으로 위탁시설에서 자라는 동안 세 번의 입양과 파양을 거친다. 가족을 찾는 여정에서 상처받으며 영악해진 설이는 보육원 봉사자로 인연을 맺은 위탁모 '이모' 집에서 둘이 살게 된다. 그러던 중 공부 잘하는 설이에게 좋은 교육환경의 기회가 온다. 우리나라 최고 부유층 자녀들이 다니는 사립초등학교로 전학을 간다. 대한민국의 부모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소설판 SKY소설 <설이>의 이야기다.



   이 책을 쓴 심윤경 작가는 1972년생으로, 서울대 분자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대학을 졸업하고 얼마간의 직장생활을 거친 후 1998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002년 자전적 성장소설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제7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05년 <달의 제단>으로 제6회 무영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장편소설 <이현의 연애><서라벌 사람들><사랑이 달리다> 등을 펴냈다. <설이>는 <나의 아름다운 정원>의 주인공 동구와 세상 아이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고자 쓴 작가의 두 번째 성장소설이다.



그들은 각각 최고의 것을 눈앞에 놓고도 그건 하나도 좋은 게 아니라고 손발을 내저었다. 가족이란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세상이다.(p.177)



   부모가 없는  설이의 눈에 부유층 가정의 부모와 아이들의 세계는 이상하다. 모든 것을 다 가졌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않다. 가진 게 많은 데도 설이가 가진 단 하나의 무기 '공부' 잘하는 비밀을 가장 알고 싶어 하고 욕심낸다. 설이는 부유층 아이들의 틈바구니에서 교묘하게 차별받지만 영악하게 극복해 간다.  과정에서 설이는 좋은 환경의 교육을 제공받지 못하지만 내 맘대로 누릴 수 있는 자유와 씩씩함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엇보다도 자신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살 수 있는 힘은 '이모'의 허술하고 소박하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이라는  알게 된다.



   이 책은 <설이>의 혹독한 성장담을 통해 아이들을 위한 부모의 사랑과 교육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무엇이 진짜 부모의 사랑일까. 세상으로부터 상처받고 영악해진 설이와 최상의 교육 환경 속에서도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의 모습을 대비시키며 우리 가정과 사회의 민낯을 보여준다. 짜임새 있는 스토리 구성과 흡입력 있는 전개로 흥미롭게 읽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과도한 입시 경쟁에 지친 청소년들과 교육 환경의 방향성을 고민하는 부모들에게 이 책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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