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의 말을 듣고 어린 왕자는 꽃도 자기가 길들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꽃에게 쏟은 시간과 마음 때문에 그 꽃이 그토록 소중했던 것이다. 비록 세상에 꽃은 많지만, 어린 왕자에게는 하나뿐인 꽃이다." - <꽃을 사랑한 어린 왕자> 중에서
어린 왕자에게 자기 별의 꽃은 자기가 길들인 단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이다. 어린 왕자처럼 우리는 지구 별에서 누군가를 혹은 그 무엇을 길들이고 길들여지며 살아간다. 수많은 사람들과 동식물, 사물 등에 시간과 마음을 쏟으며 하나뿐인 '꽃'이 되어간다. 언젠가 읽었던 <어린 왕자>를 다시 읽으며, 나에게 어린 왕자의 '꽃'과 같은 존재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나에게 어린 왕자의 '꽃'과 같은 존재는 '책'이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나에게 책은 우물 밖의 세상을 보여주었다. 내가 속해있는 지극히 한정적인 시간과 공간 외에 또 하나의 세상을 열어주었다. 한 권 한 권의 책이 내 마음속에 담길 때마다 내 안의 세상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은밀하게 영혼의 양식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설레고 흥분되었다.
책에 대한 기억은 20대 초반으로 나를 종종 소환한다. 도서관에 빽빽이 꽂힌 책 냄새와 서점에 층층이 쌓인 책들을 바라보며 가슴이 말랑말랑해지곤 했다. 책이 흔치 않던 시절, 더욱이 시골에서 자란 까닭에 도서관, 대형서점의 풍경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도서관과 서점을 들락거리며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길을 걸으면서도, 밥을 먹으면서도, 잠이 들기 전까지 책을 붙들고 살았다. 읽고 난 책들을 책장에 빼곡히 꽂으며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렇게 3년을 뜨겁게 사랑하며 책 안의 세상을 만났다. 내 삶 속에 농도 깊게 책을 길들인 시간은 3년으로 충분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책을 읽었지만 3년의 시간만큼 뜨겁진 않았다. 그 이전과 이후에 만난 책은 그저 수많은 책들에 속한 것이었다. 영혼 없이 간헐적 독서를 했을 따름이었다.
그런 내 마음이 달라졌다. 마음은 움직이는 거였다. 세상 사람들과 관계하며 이리저리 치이다 보니 영혼의 두께는 얕아질 대로 얕아졌다. 상처 난 마음에 처방약이 되어 줄 양식이 필요했다. 불현듯 나를 위한, 나에게 길들여지는 책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나와 나의 세계를 연결 짓는 책을 한 권 한 권 깊이 있게 다시 만나고 싶었다. 나는 그 마음을 다시 망각하지 않기 위해 책으로 가는 통로를 만들었다. 매주 한 권의 책을 만나 그 통로를 지나며 SNS 작가로 서평에세이를 담아내고 있다. 그렇게 길들이고 길들여지며 한 권 한 권의 책들은 나의 '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