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구성 작가는 한가지 주제를 집요하게 공부하고, 이해해서 내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주제에 전문가 발바닥이라도 따라가야 한다.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중요한 걸 뽑아서 방송으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KBS 과학카페>같은 프로그램은 교수님들에게 의지해 방송 한편에 방대한 자료를 찾아 읽으며 공부했다. 이해가 안간다고 그냥 넘어가면 후에 분명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이해가 안가면 다른 자료를 찾아 읽어보고, 논문을 읽고, 전문가에게 전화해서 묻고, 팩트 체크를 해가며 그 어느 때보다 공부에 열을 올린다. 공부의 끝판왕인 프로그램은 <KBS 퀴즈대한민국>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2013년에 막을 내린 퀴즈프로그램으로 최승돈 아나운서가 MC였던 100% 스튜디오물로 원고 자체가 퀴즈 문제였다. 문제 출제에 따라서 프로그램 질이 달라지므로 피디보다 작가의 영향력이 크고, 그만큼 작가 파워가 강력한 프로그램이었다.
최승돈 아나운서와 함께
작가는 총 다섯명으로 난이도별로 본인이 맡은 부분의 문제를 출제하고 검수하는 일을 반복했다. 우리는 국회 도서관, 서점, 인터넷, 신문기사 할 것 없이 참신하면서도 타당한 문제를 내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버리는 문제도 너무 많았다. 문제 10개를 내면 검수 과정 등에서 6개는 버려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 전문가에게 검수를 해보면 예외라는 것이 적용되었고, 학자마다 의견이 다른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검수도 전문가 한명이 아닌, 세, 네명에게 받았다. 정치적 또는 지역적으로 예민한 문제여서 또는 답이 딱 떨어지지 않는 것도 삭제 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고정 시청자들도 많아서 방송이 끝나면 다음날 사무실로 전화를 해 ‘몇 번 문제는 수준이 너무 낮고, 몇 번 문제는 말이 안되는 부분이 있다.’고 평가하는 분들이 있었다.빨리 다음 방송 문제를 만들어야 하는데 전화 응대에 너덜너덜해지기 일쑤였다. 차라리 우리 사무실로 전화를 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방송국으로 전화를 하거나 시청자 게시판에 올리면 사과문을 작성하거나 해명글을 또 써야했다. 정말 내가 문제를 잘못내서 연락이 오면 내 자신을 한심해하며 자책했다. 문제 출제 오류로 인한 방송사고만큼 괴로울때가 없었다. 방송 끝나고 나서도 ‘틀린 문제 없게 해주세요.’기도를 하며 일주일 동안 살얼음판을 걸었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방송 통틀어 가장 긴장을 많이 하며, 하루하루 수명이 단축되는 걸 느낀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그나마 재미를 찾으라고 하면 지방으로 예심을 다닌 것이다. 광주, 전주, 대전, 청주, 강릉으로 본선 진출자를 뽑기 위해 예심을 다녔다. 예심을 가서도 우린 밤마다 모텔방에 모여앉아 문제를 출제하고 서로 교환하며 지긋지긋한 문제의 늪에서 허우적댔다.함께 지방으로 원정 다니며 함께하니 작가들은 더 끈끈해졌다. 예심은 그 지역에 대학교 강당이나 KBS 지역방송국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전체적으로 필기시험을 본 후 대기실에서 바로 채점을 했고, 성적이 좋은 사람들은 그 다음 관문인 면접을 봤다. 면접은 직업, 개인기, 사연 등을 물어봤다. 이 프로그램의 출연자들 중에는 소위 엘리트라고 하는 공부 잘하고, 직업 좋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작가들 사이에 이런 말이 있었다. “출연자 만나면 대박, 피디 만나면 쪽박!” 나는 (이때 피디를 만나지는 않았지만) 쪽박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