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처음 서울에 터를 잡은 곳은 '강서구 화곡동'빌라 2층이었다. 회사에서 일을 마치고 화곡역에 내려 집에 가는 길이 어두워 종종걸음으로 다녔다. 허름한 아저씨가 길바닥에 비스듬히 누워있으면 내 다리를 확 잡을까봐 서둘러 걸었던 길이다. 큰 길로 가면 빙 돌아가야 했기에 피곤에 찌들어 있던 나는 무서워도 여차하면 뛸 준비를 하며 그 길을 택했다. 어느날 <SBS 긴급출동 SOS 24>피디님이 연락이 왔다. 피디님은 "야 임마, 니네 동네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제보를 해야지!"라고 하셨다. 알고 봤더니 그 허름한 아저씨는 사연이 있는 분이었다. 무서워서 피해다니기 바빴던 나에게 그분의 사연은 알길이 없었다. 빌라촌은 아파트 단지와 다르게 조금 더 어둑하고 섬뜩하다. 그래서 늦은 퇴근이 아닌 이상 밤엔 잘 나오지 않게 된다. 하지만 쉬는 낮엔 골목, 골목을 지나면 시장이 있어서 떡볶이와 만두를 사먹을 수 있는 곳이다. 평소엔 바로 앞 슈퍼마켓에서 초콜릿을 사서 밤새 대본을 썼고, 막내때 무너지듯 몸을 뉘인곳도 이곳이다.
추억의 화곡동 빌라를 탈출하고 이사간 곳은'양천구 신월동' 아파트였다. 지금은 모르겠으나 그때 당시 '강서구 화곡동'이나 '양천구 신월동'은 서울에서 집값이 싼 동네였다. 그래도 나는 이 동네가 좋았다. 어렸을 때 동두천이라는 곳에 살았는데 의정부 나가는 것도 마음먹고 나가야 하는 '섬'같은 곳이었던지라 양천구나 강서구는 그런 시골 촌동네에 비하면 ‘서울 한복판’이었다. 서울 어디든 버스타고 다닐 수 있는 곳이었고, 특히 방송국과 제작사가 있는 여의도, 목동을 편히 갈 수 있었다. (지금은 방송국이 상암동에 많이 몰려있다.) 신월동 아파트는 신축이어서 화곡동 빌라에 비해 깨끗하고 쾌적했다. 내 방 창문에서 밖을 보면 계절에 따라 나뭇잎 색이 변하는 걸 관찰할 수 있었고, 2층 빌라에 살다 아파트에 사니, 하늘이 정말 가까웠다.
하지만 이 신월동이라는 곳이 나를 미치게 하는 한가지가 있었는데, 내 방 침대에 누워서 창문을 보면 비행기가 내 방 창을 뚫고 들어오는 것 같았다. 시원하게 창문을 활짝 열고 원고를 쓰고 있으면 비행기 소음으로 인해 생각났던 것이 홀라당 까먹기 일쑤였다. 바로 내 머리위로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는데, 그땐 ‘저 비행기가 안 그래도 피곤한데 왜 이렇게 내 일을 방해하나’ 생각했다. 비행기도 스케줄이 빡빡했던지 엄청 자주 날아다녔다. 방송 선배나 피디들과 통화할때면 “너 지금 밖이야?”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저 지금 우리 집 내 방이에요!”라고 얘길하면 ‘비행기 소리가 왜 이렇게 크게 들리냐’며 모두 놀라곤 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간사해서 이 시끄러운 비행기도 근처 '서서울공원'에서 산책하며 만나면 반가웠다. 초록 나무들과 파란 하늘에 비행기가 한폭의 그림처럼 조화로웠다. 공원에서 멍때리며 하늘을 보는 것도 신월동에서 누렸던 소소한 행복 중 하나였다. 신월동 내방의 또다른 아쉬운 점은 책상이 없었다는 것이다. 침대, 화장대, 옷장이 전부였는데, 원고를 쓸 땐 상을 펴서 노트북을 올려놓고 글을 썼다. 몇 시간 앉아 있다 보면 어깨가 굽어 너무 아팠는데 그때 당시 부모님께 책상을 사고 싶다고 말하는 게 어려웠다. 책상을 사는 일은 엄청 큰 목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내 돈으로 살 생각도 못했다. 나는 큰 책장에 소설책도 가득 꽂아 두고, 멋있는 책상에 앉아 진짜 작가처럼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지금 大작가가 되지 못한 건 한창 시기에 책상이 없어서였다고 살며시 핑계를 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