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바닥 돌아가는 상황도 파악이 되고, 원고 쓰는 것도 익숙해지는 7년차 이상. 가장 어깨뽕이 올라오는 시기다. 이 시기에 나는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고, 팀장님에게도 대들며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났다.’거만해졌다. 이때 나의 별명은 ‘순백의 미친X’이였다.
일이 익숙해지니 여유가 생겨 작가들과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콧바람을 쐬러 공원 산책을 즐겼다. 후배들의 섭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리스트를 가지고 있었고 원고 피드백도 가능해졌으며 피디가 작가 후배에게 막말을 하면 나서서 싸웠다. 그 어렵던 부장님과도 자연스럽게 얘기를 하기 시작했고, 확신이 없던 내 구성안에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연차가 얼마 안됐을땐 사무실에 꼬박꼬박 출근해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했지만 연차가 쌓이면 녹화, 회의 때만 출근하고, 나머지 시간은 내가 알아서 일을 해도 됐다. 낮에 사무실로 출근을 안하고 도서관가서 일을 해도 되고, 카페에서 일해도 된다.
술을 못하는 나는 회식때마다 부장님의 타깃이 되어 억지로 술을 먹어야 했지만 이때는 '나를 막을자 아무도 없다.'는 자신감으로 "부장님이 소주를 한잔 할 때마다 나는 사이다를 한잔씩 하겠다"며 호기를 부려 몇 병의 사이다를 혼자 마시기도 했다. 막내 때는 자막 실수 하나에 기죽어 자책을 했지만 연차가 쌓이면서 실수도 줄어들지만 자책의 시간도 점점 줄어들어 마음이 평온했다. 이렇게 마음이 한없이 무너지고 치욕적이었던 방송 생활도 점점 내공이 쌓이고, 연차가 쌓이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게 된 것이다. 이 바닥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작가는 글을 잘 쓰는 작가가 아니다. 견디는 작가였다. 중간에 마음이 무너져 그만두면 그렇게 끝나는 것이고, 사람들의 '멍멍' 소리에 나는 흔들리지 않는것이 살아남는 방법이다. 사람들은 신기하게 마음이 여린 사람들을 더욱 할퀴었다. 그 사람들이 나를 할퀴게 하지 않는 방법은 내가 단단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연차가 쌓이면 알바도 가능해진다. 작가가 방송을 앞두고 도망가면 작가를 구할동안 대신 방송을 막아주는 '땜빵' 알바를 했는데 이때는 내 방송을 하며 급한 그들의 방송도 막아야 해서 의리로 해주는 경우가 많다. 알바 중에는 홍보 알바가 꽤 수입이 좋았다. 회사 홍보, 수자원공사 등 관공서, 학교 홍보 등이 있었다. 그들의 가이드라인은 정확했으므로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내용을 맞춰주기만 하면 된다. 다만 대기업일수록 수정사항이 많았다. 다 하고 털었다 싶으면 수정이 들어왔고, 많게는 4번 이상 수정이 걸린 적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학교 홍보가 재미있었는데, 대학교나 고등학교 홍보 영상 만드는 일이었다. 내용도 쉬웠고, 수정도 거의 없다. 홍보 알바외에 박물관 알바도 있다. 박물관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는 박물관 안에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어린이 박물관이면 체험형 콘텐츠와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 알바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어린이들의 관심을 끌 수 있고, 교육적인 효과가 있어야 하며 실현 가능한 걸 내야 한다. 박물관 알바는 공부도 많이 해야 한다. 농업 박물관을 한다고 하면 농업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해서 쌀이 만들어 지는 과정부터 해충, 농사법 등에 관한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서 인터넷 자료, 책, 영상, 시골에 사는 어른들에게도 물어보며 일을 했다. 방송과 홍보, 박물관 알바 셋다 모두 글쓰는 폼과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가지를 해보면 해볼 수록 후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커진다. 그래서 한창 활발히 일하는 이 시기에 '물들어 올 때 노젓는다.'는 마음으로 가리지 않고 열심히 했다.
가장 자신감 넘치던 이 시기에 낮아질 수 밖에 없는 일도 있다. 작가는 어쩔 수 없이 섭외를 하며 한없이 낮아진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걸 힘들어하는 나는 출연료를 주며 섭외를 해도 그 사람들의 바쁜 시간을 뺏고, 그들이 하는 일에 내 일을 얻어주는 것같아 미안했다. 그래서 항상 섭외하며 "죄송한데"를 입에 달고 살았고 이 습관은 지금도 남아 나는 가끔 쓸데없이 "죄송한데요."라고 운을 떼며 말을 한다. 작가는 글만 쓰면 되는 줄 알았던 막내 작가때, 나의 가장 큰 벽은 섭외였고, 섭외를 할 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종이에 미리 멘트를 써두고 전화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바로 전화해서 술술 말할 수 있게 되었는데, 평소 말을 잘 못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섭외도 연차에 비례해서 능력이 올라갔지만 그래도 섭외는 마음이 힘들다.
그리고 예민한 감수성은 나의 숙명인 듯, 가을만되면 울렁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점심을 먹고 작가들과 산책하며 “낙엽이 떨어지는 걸 보면 너무 우울해.”라고 얘기하면 후배 작가는 “작가님, 낙엽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각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우울한 거 보다는 낫잖아요.”라고 했다. 이후부터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우울하지 않고 그 후배의 말이 생각나서 혼자 피식 웃곤한다. 내가 ‘순백의 미친X’이듯, 방송바닥은 똘끼있는 사람들의 집합체다. 나는 낯을 가리다가도 친해지면 장난도 잘치고 일이 힘들어도 그 안에서 재미를 찾았는데, 주변에 대부분의 작가들이 똘끼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나의 똘끼를 받아주고 함께 똘아이짓을 해준 그녀들 덕분에 섭외가 엎어져도, 갑자기 아이템이 펑크나도 나는 방송 생활을 견딜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