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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Feb 14. 2016

조커가 말하는 광기의 가속도

<다크나이트> (배트맨 시리즈 2)

배트맨 : 뭘 증명하고 싶었던 거야? 모두게 네처럼 추악하다는 것을?

조커 : 너란 놈은 날 절대 죽이지 못해. 태풍이 몰아쳐도 뿌리깊게 내린 나무는 안쓰러지는 법이지. 네놈을 타락시키는 것은 불가능해. 너는 나를 증오하지만 죽이질 못하잖아. 나도 널 안 죽일거야  너랑 싸우는게 너무 재밌거든. 우린 이렇게 평생 싸울 운명이야.

배트맨 : 고담시엔 아직도 선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조커 : 천만의 말씀. 오래 못가. 하비 덴트의 이중성을 목격하고, 그가 한 짓들을 보면... 내가 너하고 쌈질이나 하려고 이 고생을 하는 줄 알아? 천만에... 누구한테나 숨겨둔 비장의 무기가 있지. 나한텐 하비야.

 배트맨 : 그를 어쩐거야.

조커 : 고담시의 백의의 기사를 나랑 똑같은 놈으로 만들어 놓았지. 별로 안 어려웠어. 광기는 가속도랑 똑같에 한번 속도가 붙으면 점점 빨라 지거든...


언제나 빛의 옆에는 어둠이 있고...


베트맨과 조커는 선과 악을 보여준다. 배트맨을 절대선이라고 칭하지 않는 것은 배트맨이 조커를 죽이지는 않지만, 증오는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둘은, 선과 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언제나, 남을 살인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는 배트맨이나, 세상에 혼돈과 무질서를 주려는 조커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공감을 사지 못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저런 둘을 찾아 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들은 절대 선과 절대 악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선과 악이라는 것이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져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 간극을 절대로 매울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배트맨과 조커의 모습을 보면, 이들은 뭔가 닮아 있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관철시키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가면을 쓰거나 화장을 한다. 또한, 조커의 대사 중 배트맨에게 하는 말로 '너는 나를 완성시킨다.'라는 말을 했었다. 즉 조커의 존재 의미는,돈이나 명예 따위가 아니다. 바로 배트맨 한 명으로 자신의 존재가 완성된다고 말한다. 조커를 혼돈이라고 본다면, 배트맨은 일종의 도덕적 규율이라고 볼 수 있다. 혼돈과 규율, 어둠과 빛... 이 둘은 어떻게 보면 반대되지만, 서로 맞닿아 있는 면들이 있다. 그들은 서로를 인정하지만,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는 않는다.

투 페이스 하비


조커의 목적은 바로 하비 덴트를 악마로 만드는 것이었다. 하비 덴트는 고담의 백의의 기사였다. 범죄와의 싸움에서 지친 배트맨은 은퇴를 생각한다. 자신을 통해 나름 의식이 있는 경찰들도 생겼으며 하비 덴트가 앞장서서 고담시의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는 고담의 백의의 기사로 그 임무를 수행할 듯이 보였다. 하지만, 하얀 색에는 때가 쉽게 뭍기 마련이다. 조커의 눈에 하비 덴트는 너무나 순수한 존재였다. 그는 고담시의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일종의 기념비적인 인물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한 사람이 한 사회의 기념비적인 의미를 가진다는 것에 있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가 선의 징표라고 믿는 것을 악으로 끌어내리면, 그를 믿었던 사람들이 혼돈에 빠지고 절망에 빠지기 때문이다. 조커는 이것을 너무나 잘 알아 봤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하비 덴트를 악으로 끌어내리려고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조커는 성공했다. 하비 덴트를 악당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는 두가지를 의미하는데, 첫번째는 아무리 선한 사람들이라도 악인이 될 수 있고, 두번째는 한 사람이 고담시의 선을 의미하는 것의 위험성이었다. 조커는 그를 악으로 만들었지만, 배트맨은 이를 덮어 버린다. 자신이 대신 죄를 뒤집어 씀으로, 하비 덴트의 선의 상징은 그대로 이어진다. 어떻게 보면, 이번에도 배트맨이 조커를 이긴듯 하지만, 이 영화는 조커의 승리로 끝나는 것이다. 하비 덴트는 악으로 물들었고, 배트맨은 죄를 쓰게 되었고, 고담의 평화는 미봉책으로 가려진 것이었다. 이것은 고담의 평화가 언젠가는 깨질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우리 속에 숨쉬는 조커


세상을 살면서, 우리는 선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악을 외부에 투영시켜 우리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을 해버린다. 하지만, 악이라는 것은 외부에 존재하기도 하지만, 인간의 내부에도 존재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선을 지킬 것이라고 믿으며, 이성적인 방법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기존의 일상일 때만 통영되는 것이다. 조커는 악을 상징하지만 이와 더불어 혼돈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혼돈의 시기나, 우리가 예측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면, 우리는 비이성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아지면, 자신이 예상하던 자신이 행동방식이 혼돈 속에서 이행되지 않을 때, 우리는 절망을 한다. 우리는 이런 우리의 모습을 자각해야만 한다. 언제나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나 도덕적이고 윤리적일 수는 없다. 언제나 우리는 조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행동하면서 조커가 될 수 있기도 하지만, 행동을 하지 않아도 조커가 될 수 있다. 그 장면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후반부에 나온 죄수의 딜레마였다. 비록, 그 장면에서 두 배 모두 폭발하지 않고 살았지만, 만약, 한 배가 다른 배를 폭발시켰다면, 그것을 묵인한 그 배에 탄 시민들은 움직이지 않는 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조커라는 존재는 언제나 미친척을 하고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모르게 조용히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와 우리를 점점 잠식시킨다.


조커의 흉터


조커는 자신의 흉터에 대해 여러가지 설명을 한다. 첫번째는 아버지가 자신의 입에 상처를 냈다고 하고, 두번째는 레이첼을 붙잡고, 자신에게 아내가 하나가 있었는데, 도박에 빠져 사채를 쓰고 그것을 갚지 못해 지금의 조커와 같이 입에 상처가 났다고 한다. 그리하여 조커는 자신의 입에 똑같은 상처를 내고 그녀를 향해 항상 웃고 공감해준다는 의미를 보였지만, 아내는 도망을 쳤다고 한다. 조커의 과거는 알 수 없고 예측도 할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조커라는 인물이 조커가 된 것에는 과거의 흉터가 있었고 그 흉터가 점점 커져 혼돈의 조커가 되었다는 것이다. 배트맨과 조커의 딱 하나의 차이점이라면 그것은 바로 과거를 어떻게 승화했느냐는 것이다. 배트맨의 경우 자신의 아픈 기억과 트라우마를 좋은 쪽으로 승화시켰지만 어떤 사람의 경우 그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그 속에서 살다가 어느 순간 조커가 되어 버린 것이다. 우리에게도 매일 매일 슬픔이 있고 씻지 못할 과오가 있거나 상처가 있을 것이다. 조커의 대사처럼, 제일 사랑하는 사람들 가령 아버지나 아내에게 버림을 받았다는 것은 그의 상처를 누가 덮어주거나 사랑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하튼, 솔직히 이 문단은 나의 매우 주관적인 생각이니 그냥 읽고 넘기도록 ~


https://brunch.co.kr/@minsungdkim/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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