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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Feb 26. 2016

과거를 이겨낸 영웅, 날아오르다

다크나이트 라이즈 (배트맨 시리즈 3)


<다크나이트 라이즈>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다. 비록, 이번에 나온 <다크나이트 라이즈>는 <다크나이트>에 비해 그 임팩트가 약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3부작이라는 면에서 보았을 때, 이 영화는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이 든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넣다 보니, 인과적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긴 하지만, 그것은 놀란의 문제라기 보다는 영화라는 매체의 한계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 영화에서 배인의 동기나 탈리아의 동기가 너무나 인위적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나름의 내포된 의미를 본다면, 내용적으로는 훌륭하다고 생각이 든다. 



There's a storm coming...


고담시는 <다크나이트>에서 조커로부터 표면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즉, 하비 덴트가 타락을 했지만, 그가 백의의 기사라는 상징성을 무너트리지 않게, 배트맨이 하비 덴트의 죄를 대신 뒤집어 쓰고, 8년동안 잠적을 하게 된다. 하비 덴트는 고담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상징은 그 내부에 이미 거짓이 있기 때문에 미봉책일 뿐이다. 즉, 진정한 정의가 아니라, 미봉책의 정의일 뿐이다. 미봉책의 정의 속에서 고담은 범죄가 크게 줄어들고, 눈으로 보기에 평안한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이 이룬 정의는 사회 속에 있는 불안 요소들을 덮은 것에 불과한 것이다. 사회의 불안 요소들이라면, 사회적인 빈부격차와 같은 것들이나, 구조 속의 부조리와 같은 것 들일 것이다. 이런 요소들은 사회 내부에 계속 남아 있는데, 거대 범죄 조직들의 수가 줄었다는 것은 고담시의 평화가 일시적이며, 언젠가 그 평화가 산산이 부서질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셀레나 카일(캣 우먼)이 브루스의 귀에 대고 폭풍이 오고 있다는 것은 이런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희망 없이는 진정한 절망도 없다. (한계상황)


이런 시기에 나타난 적이 있으니 바로 배인이었다. 배인은 용병으로 그 이름을 떨치고 고담시를 파괴하려는 공포의 존재였다. 배트맨은 그를 막기 위해 8년만에 나타난다. 하지만, 배트맨의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8년동안 배트맨의 체력적으로 약해진 면도 있을 테고, 정신적으로 평화 속에서 안일함 속에 살았기 때문이다. 배인은 배트맨의 허리를 꺾어 버리고 배인 자신의 고향인 절망의 감옥으로 넣어 버린다. 그곳에서, 배트맨에게 희망고문을 한다. 즉, 브루스 웨인은 허리를 다쳐 움직이지도 못면서, 배인이 파괴하는 고담시를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배인이 고담시와 배트맨을 파괴하는 장면을 보자면, 그는 사람들에게 한계상황을 부여 한다. 야스퍼스에 따르면 '한계상황이란, 인간의 현존재의 내면에 좌절과 절망을 야기시키는 근본적인 상황'이라고 한다. 배인은 사람들에게 한계상황을 주어, 그 상황 속에 무기력한 자신들을 보며, 그 상황을 초월할 수 없다는 것에 절망하여 죽어가는 것을 바란다. 이런 한계상황에는 죽음, 투쟁, 고통, 죄책감등이 있을 수 있고, 이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좌절을 한다.



Rise


이 영화에서 상승(Rise)라는 단어는 중요한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한계상황이 자신에게 다가왔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받으들이냐에 따라 상승이나 초월을 할 수 있다. 

브루스 웨인의 경우, 그의 한계 상황은 죽음이었다. 그가 감옥을 탈출하기 위해서는 그 감옥을 뛰어 올라야 했고, 만약 실패를 한다면, 칠흑같은 어둠으로 떨어지는 것 밖에 남지 않는다. 브루스가 처음 시도할 때는 밧줄에 몸을 묶고, 뛰어오르지만, 실패한다. 실패한 부르스 옆에 있는 의사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다면, 절대로 이곳을 빠져 나갈 수 없다. 브루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다르게 말하면, 그는 죽음을 외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밧줄을 매지 않고 다시 감옥을 탈출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때 비로서, 브루스는 한계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처음에 절망했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상승한다. 그래서 그는 감옥을 탈출하게 되고, 고담을 구하러 가게 된다. 배인 또한 한계 상황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다. 그의 한계 상황은 고통이었다. 여기서 고통이라는 것은 다양한 것을 의미하지만, 배인에게 있어 고통이라는 것은 육체적인 고통을 의미한다. 그가 언제나 쓰고 다니는 마스크는 자신의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는 장치이다. 그는 고통을 이겨내지는 못한다. 다만, 고통을 약물이라는 것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배인과 배트맨이 절망 속에 살고 있지만, 배트맨은 자신의 한계상황을 직면하고 그것을 뛰어 넘었다. 배트맨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한계상황을 이겨낸 자신에게서 찾았지만, 배인은 그렇지 않다. 절망 속에서 자신이 살아있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탈리아 알굴로 찾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내부에서 절망을 이겨내지 못하고, 타자로부터 찾는 배인의 행동은  어쩌면 배트맨에게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을지도 모른다. 배인은 절망에서 태어나서, 절망 속에서 살아가지만, 자신의 존재를 어둠 속에서 나오게 하지는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셀리나 카일(캣우먼)에게 사회라는 것은 지금의 사회자체가 일종의 한계상황이었다. 그녀는 빈민가 출신으로,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저지르게 되고, 그 이후로, 범죄자가 된다. 그녀는 사회에 대해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마지막에 배트맨을 돕고 새로운 삶으로 도약했다. 그녀 또한 그녀의 상황을 초월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보다보면, 조금 씁쓸한 면이 있다. 사회라는 곳은 한번의 실수를 용서하지 않는다. 한번 범죄를 저지르면, 낙인이 찍혀 버려서, 더이상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자는 또다른 범죄를 저지른다. 셀리나는 고담시의 어두운 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초월


고담시의 시민들은 모두 한계상황 속에 빠져들게 된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한계상황에서 절망하여, 약탈자로 변하게 된다. 그들은 '현존재를 위한 폭력적 투쟁'으로 한계상황을 돌파하려 한다. 그것은 자신들의 의식주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고 사회로부터 승리를 거두기 위한 것이다. 배인의 꼬임에 넘어간 사람들은 투쟁을 하지만, 이 투쟁에는 한계가 있다. 바로, 눈에 보이는 승리에만 집착아여 투쟁 본연의 의미를 잃어 버릴 수 있다.

이런 폭동들에 대하여, 또다른 시민들과 경찰들이 일어선다. 이들의 투쟁의 목적은 다시 고담을 평화롭게 만들자는 의미이며, 우리의 사회를 지키자는 취지이다. 사회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이때 배트맨이 마음 속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즉, 더이상 배트맨과 같은 하나의 상징으로 사회가 이루어 질 수 없으며,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 속에 사회를 지켜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에 배트맨이 폭탄을 가지고 폭발하면서 사라지는 것은 더 이상 고담에는 배트맨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배트맨 없이도 이 사회는 정의를 구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모두가 구원을 받는다. 시민들은 이제 정의에 대해 생각하고 악과 맞서 싸울 힘이 생기고, 자신들의 본연의 모습을 찾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배트맨과 브루스 웨인이 사라진 고담시에서 블레이크가 로빈이 되는 것을 암시한다. 이것은 비록 사회가 정의롭고 문제가 해소되었지만, 사회가 못하는 것을 누군가는 해야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 로빈이 된 블레이크가 이런 일을 할 것이라 믿는다.


과거를 끝내다.


배인과 탈리아와의 싸움을 끝내고 브루스는 셀리나와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드디어, 브루스는 자신의 과거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고담시와 라즈 알굴은 그에게 있어서 족쇄와 같은 존재였다. 이 둘은 브루스 웨인을 어둠 속에서 계속 있게 만든 존재였다. <다크나이트 라이즈>가 완성도가 높다는 것은 브루스 웨인이 자신의 과거를 벗어나서 이겨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탈리아 알굴은 일종의 라즈 알굴의 현재의 모습과도 같았던 것이다. 즉, 브루스는 과거의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신의 삶을 살지 못했었다. 과거를 받아들이고, 과거를 컨트롤할 수있었지만, 그 과거로부터는 벗어날 수 없었다. 극것의 마침표를 찍은 것이 바로 탈리아 알굴의 죽음이다. 즉, 탈리아가 사라지면서, 이제 브루스는 과거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동안의 삶이 브루스의 삶이 아니었다면, 이제부터 브루스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다. 


더이상 브루스 웨인은 배트맨이 아니다. 브루스 웨인일 뿐이다.


https://brunch.co.kr/@minsungdkim/29


https://brunch.co.kr/@minsungdkim/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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