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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Jan 16. 2020


생활계획표

 이 글의 해시태그는 오늘도 #불안 으로 하려 한다. 하지만 불안은 상당한 욕심쟁이라 다른 감정까지 먹어치우기 일쑤다. 나는 불안에게 어떤 먹잇감을 줘야 하나 고민을 한다. #불안 을 이을 다른 해시태그로 무엇이 있을까. 쉽게 떠오르는  #주색 은 내 홈그라운드지만 너무 내 글의 오래된 주제였다. 주색 말고 내가 쓸 말이 없나? #불안 이란 해시태그를 집어치우고 희망찬 사랑의 찬가를 쓸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쓸 기분이 아니다. 왜그럴까? 나는 요즘 잠을 많이 잔다. 의욕이 없다. 많은 것을 나름 성공적으로 마친 후에 나는 더욱 텅 빈 기분이 된다.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그런 공허. 여자친구가 해외여행을 간 상태라 물리적으로도 내 옆자리는 텅 비었다. 정신적으로는 더더욱 그렇다. #빈자리, 오늘의 내 해시태그다.


 내 가장 친한 친구는 나에게 연인에게 너무 의존하지 말라고 한다. 나는 무슨 말이냐 재차 묻는다. 나는 여자친구에게 힘들다는 말도 거의 안한다고. 나는 요즘 잘하고 있다고, 나름 홀로 우뚝 서고 있다고. 친구는 그냥 내가 연애를 할 때와 하지 않을 때가 너무 달라하는 말이라고 한다. 그리고 "너는 부정하겠지만, 미래는 모르는거야."라고 말한다. 옛날과 달리 나는 부정까지 하지는 않는다. 내 옆자리에 다정히 있는 사람은 나를 떠나갈 수도, 내가 그 사람을 떠나갈 수도 있다. 빈자리, 빈자리가 생길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은 누군가가 있어서 홀로 설 수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렇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대비해 맘을 다잡는 것은 조금 웃긴 짓이다. 나에게는 더 시급하게 당면한 문제가 있다. 그것은 내가 지금도 큰 공허를 느낀다는 것이다. 요즘은 특히 그래서, 침대에서 뒹굴거릴 때가 많다. 그래서 글을 쓰고 싶었다. 생활계획표를 작성하듯이, 글로나마 내 지금의 상태를 분석하고 다짐해야하지 않을까? 계획까지는 쓰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감성이 철철 넘쳐 흐르는 글을 쓰는데, 그 결에 계획은 맞지 않다. 다짐도 크게 맞지 않다. 감정을 폭발하고, 그 곳에 함몰되는 글을 나는 좋아한다. 어쨌든, 이불을 박차고 나와 커피를 한잔 내려 마시고 글을 쓴다.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한가. 공허한가.


 그것은 내가 빈자리를 보기 때문이다. 불안을 쳐다보고, 빈자리를 곱씹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쓸 때 "누구나 그렇겠지만,"이라는 문장을 자주 쓴다. 이런 문장이 나온다는 자체가 내가 자의식에 도취된 사람이라고 나는 본다. 혹시 누군가가 언제나 든든한 동반자, 마음 상태, 상황들을 가지고 있다면 나에게 알려달라. 나는 그에 대한 글을 쓰겠다. 정말 유니크한 그런 타입의 사람을 글로 쓰며 나는 많은 돈을 벌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누구나 그렇다. 누구나 공허하다. 그런데 나처럼 불행을 부르짖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러한 부르짖음이 나를 더욱 더 풍부한 사람으로, 재능 있는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바라는 것은 안온함이다. 굳이 내가 글을 잘쓸 필요가 있을까? 매력적인 사람일 필요가 있을까?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거래하지 않겠다. 과거의 나는 이 거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글을 쓴 바 있다.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느끼는 큰 빈자리를 그렇게 채우진 않겠다. 오히려 나는 이 빈자리를 가꾸려 한다. 공허를 통해 내 공허를 조금씩 지워나가겠다. 동력으로 삼겠다. 많은 위대한 자들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빈자리를 외면하지는 않지만, 매몰되지도 않을 것이다. 또한 내가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겠다. 내 옆에 소중한 것들,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위해 내가 잘해야한다.


 오늘 자기전까지 침대 위에 눕지 않겠다. 방을 치우고, 운동을 한 다음 목욕 재계를 하고 할 일들을 정리할 것이다.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영화도 봐야지. 내일도 마찬가지다. 충실해야지. 하루하루에 충실해야지. 물론 그렇게 하더라도 위에 썼던 대로 완벽히 불안을 지우는게 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채워 나갈 것이다. 계획을 써버렸다. 불안에 대한 글이 어쩌다 생활계획표가 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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