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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나메나 Feb 14. 2018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를 읽고

  제목부터 끌려서 한동안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던 책이었다. 한동안 책 읽기도 그만두고 내 야구 게임의 선수 키우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요즘은 쳤다 하면 홈런이 되어서 재미가 없어졌던 와중에 다시 책을 잡고 읽기 시작했다. 왜 제목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일까 했던 궁금증은 소설 초반에 풀렸다. 이 책은 연하의 남자가 연상의, 그것도 꽤 연상의 여인을 사랑하는 첫사랑 스토리라고 대충 봐도 좋은데, 그녀에게 첫 연주회 데이트 신청을 하면서 하는 말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인 것이다. 서른 아홉을 살고 있는 그녀에게 이 질문은 상당히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작가는 서술한다. 현실과 타협하고 안주하며 자신과 미래 이외의 사유와 여러가지 인생의 즐길 거리를 놓친 그녀에게 취향을 물어보는 스무다섯살의 남자의 태도는 그녀에게 새로운 생각을 들게 했다. 그녀가 만나고 있는 지금 남자친구는 그렇게 낭만적이진 않다. 여자는 그에게 그것을 바라지도 않는다.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안정이었고, 그 남자친군 그것을 제공해 주고 있던 것이다. 그런 여자에게 이 청년이 다가온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말과 함께.


  책을 읽으며 내내 나의 첫사랑과 많이 겹쳐 보였다. 내가 워낙 자의식이 강해 소설의 인물과 사건들에 대해 이입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너무나 내 경험과 닮아 있었다. 내 첫사랑의 그녀가 나보다 꽤 연상이었던 것과 남자친구가 있었던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점. 나의 천진난만함에 그녀가 매력을 느끼고 결국엔 현실에 타협해 나를 떠나갔다는 점. 그리고 나의 그녀와 소설 속 그녀는 결국 다시 잘살아갈 것이지만 나는 평생의 아픔과 추억으로 기억할 것이라는 사실. 나를 저격하는 내용의 소설이었다.


  엄마와 같이 간 카페에서 책을 다 읽었다. 책을 덮고 엄마와 책 얘기를 했는데 엄마는 읽지 않았으니 내가 내용 설명을 하며 이 소설에 대한 나의 감상을 얘기했다. 내 첫사랑 얘기가 안나올 수 없었다. 엄마는 내 첫사랑의 그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본 적도 없지만, 결국 그녀와의 만남에서 비롯된 내 상처가 지금의 나에게 큰 악영향을 미쳤으니 엄마가 좋아할리가 없으리라. 그렇지만 벌써 6년이 지난 일이고, 어느정도 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가 있었다. 엄마와 첫사랑, 책 얘기를 이렇게 오래 한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나의 그녀를 변호했다.사랑은 타이밍이라고, 그냥 타이밍이 안맞았을 뿐, 내가 사랑했던 사람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주인공 여자 또한 나쁜 사람은 아니다. 그는 어린 청년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했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과 처신이 언젠가 그에게 상처를 줄 것이라 당연히 알 수 있었지만 그에게 끌리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사람은, 원래 자신을 잘 컨트롤 할 수 없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을 보며 “저 사람은 감정 컨트롤을 잘해” 라고 하지만 그 감정은 인생의 흐름, 이를테면 운명 같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 그 어린 청년과 그녀는 서로에게 운명이었다. 잔인한 운명의 장난이었다. 사람은 상처를 주고 받고, 사랑을 주고 받는다. 남자는 사랑을 주면서 끊임 없이 사랑을 갈구했지만 그녀는 사랑을 받으며 사랑 대신 상처를 주었다. 결국 남자는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이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에게 가해지는 불가항력적인 뭔가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 폭풍에 흔들리는 사람을 욕하는 것은 매정한 짓이다. 나는 내로남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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